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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목사이야기 47 - 나주목사 부임Ⅱ (완결)
신광재 기자  |  sjs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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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9호] 승인 2006.12.0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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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단(新迎)
 
도임 과정에서 가장 주목되는 의례는 신영이다. 신영은 새로운 수령이 도임하기 이전에 부임할 고을에서 이속(吏屬)들을 보내어 맞이한 뒤 고을까지 모시고 가는 의례를 말한다.
 
<목민심서(牧民心書)>에는 서울에서 사조를 마치고 해당 고을에 저보를 보내어 자신을 맞으러 오라는 뜻을 전하여, 해당 고을로부터 신임 사또의 신행을 맞이하는 의식으로 기록하고 있다.

목민심서에 의한 신영행차를 구성하는 신영 적정인원은 총 11명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대개 신영행차는 이보다 2-3배 가까운 인원으로 구성된다.

유일하게 남아있는 목천관아의 신영행차 구성인원을 살펴보면 관리들은 이방, 공방, 통인, 급창노(及唱奴), 사령(使令), 후부사령(後部使令), 후병종, 방자노(房子奴), 문안사령(問安使令) 등 20명에 가까운 사람들로 짜여있다.

목천보다 읍세가 못한 지역에서도 신영단이 20여 명에 가까워 목사 신영단의 규모를 짐작해 볼 만하다.
 
신영행차는 수령부임을 과시하는 역할을 하였다. 따라서 목사 신영행차는 최소 30명 이상으로 구성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신영행차는 크고 화려할수록 부임자의 위세를 떨치는 것은 현실이었다.

신영의식
 
신영사들은 수령을 처음 맞는 자리에서 폐백에 해당하는 신영지장(新迎支裝)과 목천관아의 중요한 장부들을 바치는 의식을 치렀다.

신영지장을 바치는 것은 신영의례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었다. 신영의례에서 지장은 일종의 폐백과 같은 역할을 하였다.

제자가 스승을 처음 뵐 때의 폐백을 바치거나 신부가 신랑에게 폐백을 드리는 것처럼 지장은 예물을 통하여 수령을 존대하는 것이었다.
 
이외에도 신영사들은 관청문서를 바쳤다. 명록단자(名錄單子)와 중기(重記) 1권, 그리고 이례삼반관안(吏隷三班官案) 1권이었다.

명록단자는 현재 온 신영 행렬에 참여한 이속들의 이름이 적힌 문서로 보인다. 중기는 관청에서 사용하는 비품의 종류 등을 포함한 고을의 재정관계를 총괄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내용이 실려있다.

이례삼반관안(吏隷三班官案)은 향사(鄕吏), 군교(軍校), 관노(官奴) 등에 관한 관원 명이 등재된 것이다.
 
관안을 올리면서 관원들의 이름 가운데 신임 수령의 이름에 대하여 피휘(避諱)하는 사례도 있었다.

이것은 수령이 수령권을 확립해 가는 과정에서 부임지의 향촌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해 가는 중요한 단계를 내딛기 시작하였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피휘는 정치과정에서 왕의 권위를 높이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익히 알려져 있지만, 한 고을의 관아에서도 수령의 이름을 피휘하여 수령의 권위를 높이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피휘를 생략하는 경우가 많았다.
 
폐백과 관아 문서의 헌정, 그리고 피휘 등을 요청하는 일련의 의식들은 관아의 이속들이 수령에게 공식적으로 귀속하는 면모를 보여준다.

신영의식은 신임수령이 부임지를 가기 전에  첫 번째 실행된 의례로서 부임 중에 관속들을 장악한다는 상징성이 있다.

부임지로 도임
 
부임지로 들어서면서부터 신영행차는 백성들에 대한 신임수령의 권위형성과 관련이 있으므로 신임수령에게 몹시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었다.
 
정3품이었던 목사는 도임 할 때 독교(獨轎)를 타는 것이 통례였다. 쌍교(雙轎)는 관찰사(觀察使)와 종2품 이상의 관원에게 한정되었던 가마였다.

그러나 수령들이 이 규례를 어기고 고을에 들어갈 때 지체와 위엄을 고려해 쌍교를 타고 가는 경우도 빈번하였다.
 
부임하는 고을의 경계에서 수령을 맞이하는 의례도 부임절차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경계에 도착하였을 때 급창과 통인, 관노, 장교 등이 모두 알현하고는 다반(茶飯)을 올리는 예식을 행하였다.

다반으로는 술과 마른안주 외에 다른 음식은 사용하지 않았으며, 신임수령 가족에게 건넬 종이와 비단을 준비하였다.

이 때 각 지역의 향리들과 이속들이 모두 나와 다반을 올리는 예식을 치르는 동안 신임 수령을 알현하였다.
 
수령행차는 경내에 들어선 이후, 고을 백성들이 항상 따라다님으로써 온 고을이 잔치가 벌어졌다.

경내에 들어오면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전패(殿牌)가 봉안된 곳인 객사를 찾아간다. 나주의 경우 금성관을 찾아가 전패에 4배를 하고 세 번 향을 올렸다.

4배를 올리는 것은 국왕을 알현하는 것과 동일한 의례를 치르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여기서 국왕으로부터 정사를 행사할 수 있는 세속적 권력을 인계받는다는 상징성이 있다. 다음으로 가는 곳은 향교이다. 향교의 대성전에 모셔진 공자 위패에 대해 예를 올린다.
 
객사의 전패로 나아갈 때 차려입는 의복은 오모(烏帽), 포단령(布團領), 오대(烏帶)의 차림이었으며, 대성전에서는 오모(烏帽), 흑단령(黑團領), 은대(銀帶)를 차려입어 객사보다 격상된 품격의 옷차림으로 바꿔 입었다.

이를 미루어 볼 때 문성왕을 모신 대성전의 위패를 객사의 전패보다는 더 높이 평가하였다는 반증할 수 있다.
  
상관(上官)의식

향교에서 예를 치른 뒤 수령은 마침내 수령권 행사의 공식적인 장인 동헌(東軒)으로 들어선다. 당상(堂上)에 올라 의자에 앉고 인부(印符)를 건네 받았다.

인부는 관인과 병부를 말한다. 관인은 그 고을문서 행정의 결재권을 상징하고 병부는 병권의 상징이다.

이것은 정사를 집행할 실질적인 행정권을 상징한다. 따라서 인부를 넘겨받는다는 것은 실질적 권력이 수령에게 이양되었음을 공표하는 의미가 있다.
 
관인과 병부는 실질적인 권력의 상징이기 때문에 한시라도 소홀히 취급될 수 없었다. 수령이 부임하기까지 관인은 겸임하고 있는 이웃고을의 수령이 보관하고 병부의 경우는 병권을 가지고 있는 절도사가 보관하고 있었던 것이 당시 통례였다.

이는 조선전기에 수령의 유고시에 호장이 관인을 사용하여 공사를 대행하였던 것과는 대비된다.

이러한 의식을 거치고 난 뒤 유향소, 읍사, 통인, 장교, 사령, 노비, 면임, 도배인(徒配人)들이 그를 향해 모두 배알하였다.

이 과정은 왕이 즉위한 이후 문무백관이 모두 배알하는 행사에 비견될 만한 것이었다.

-지금까지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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