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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아진다는 것
전숙  |  ss829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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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6호] 승인 2015.11.28  23: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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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크대 맨 아래서랍을 여니 닳아진 놋숟가락이 가부좌를 틀고 있다. 지금 무슨 화두로 수행 중이신가? 
쓸모없어졌다고 뒷방에 치워둔 어머니를 불러내어 추억처럼 감자를 벗긴다. 감자 깎는 기구로 벗길 때는 한 움큼씩 떨어져나가던 감자속살이 숟가락으로 벗겨내니 표피만 얇게 벗어진다.

“오냐오냐, 그렇게 살살 다루어야지. 감자가 키워낸 아까운 살 몽땅 깎아내면 안 되느니라.”어머니 잔소리 들린다.

‘닳아졌다’는 말
날선 촉수들이 하나씩 잘려나갈 때마다 가슴살도 푹 파이며 겪을 것 안 겪을 것, 볼꼴 못 볼꼴 다 살아내어서 돌팍에 넘어져도 눈물 몇 방울 찔끔거리지도 않고 하늘 한 번 쳐다보고 훌훌 털고 일어나는 저 풀꽃처럼 짓밟히고 짓밟혀서 닳아진 생들.

닳고 닳아 시멘트바닥 같던 외할머니의 거친 손바닥이 한 번 지나가면 가렵던 등짝이 바람 잔 것처럼 시원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닳고 닳은 삽만이 상처 없이 캐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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