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 시인/화가

여행은 늘상 생의 첫날 같은 설렘이 있다. 확실히 여행은 춤과 노래와 이야기의 장면 장면을 주름주름 펼쳐서 생의 시간들을 굽이굽이 심우尋牛하는 일, 날아가든 헤엄쳐가든 호기심 가득 품고 있던 인간세상을 흘러가는 강물 같은 이야기이겠다.

눈길 주어야 표정 지으며 다가오는 게 사물이다.

사물들은 길을 거쳐서 비로소 소통할 수 있다. 길 위에 집이 있고 사람이 있고 사건이 있다. 문전옥답을 둘러보듯 길을 떠나면 산천초목만큼 많은 생각과 풍경들을 만나게 하는 것도 여행이다. 여행은 그래서 언제든 무엇이든 그 모두를 가능하게 한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면 태평양의 오지랖은 심호흡 한 번으로도 충분할 만큼 작은 연못처럼 느껴진다. 저처럼 조브장한 물면이 크나큰 대륙을 빠뜨리고도 남을만한 거대 심연이라니!

세상은 다문화로 바뀌는 판

목적지 호주(濠洲)는 Origin 시간보다 1시간 앞선, 그리 멀지 않은 이웃 같았다. 그런데도 10시간의 탑승타임을 생글거리며 시중드는 승무원과는 달리 우리에게는 섰다, 앉다를 반복하며 엉덩이에는 뿔이 돋고 육탈할 만큼 고통스러운 수도정진의 기나긴 시간이었다.

지도상으로도 호주는 녹색의 땅이었다. 만난 적이 없어서 늘상 제주도만큼의 섬일 거라는 상상만 되풀이하다가 생면부지의 땅, 호주의 다문화를 살피자고 막무가내로 달려가는 중이다.

다문화란 지구촌 270여 국가와 소수민족을 포함하여 313개의 언어를 대상으로 펼치는 생활 문화적 하모니다. 그리고 우리가 달려가는 호주는 이미 '다문화'로 성공한 대표적인 나라이다.

빛바랜 세월이지만 우리에게도 16개 나라의 깃발들이 하늘 가득 휘날리던 때가 있었다. 6·25를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유엔동맹국의 지원을 받았고, 결과 대운동회 날이 되면 그 나라들의 국기를 걸어놓고 가을 하늘을 아름답게 수놓곤 하였다.

그러던 것이 반세기가 지난 오늘에는 다문화의 깃발로 세상이 바뀌었다. 제3국 아가씨들이 우리나라 총각과 결혼한 부부만도 이제는 100만 쌍을 넘었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의 외갓집 나라 국기들이 하늘 위에 '다문화'란 이름으로 펄럭이게 되었다.

아침 7시 40분. 어디선가 '아! 지루해' 소리가 들릴 무렵 비행기가 시드니공항에 날개를 접었다. 전용차량으로 옮겨 타면서 Phm Power Museum→ Applied Arts and Design Museum에 파견된 현지 가이더 이상훈씨와 부스스한 얼굴로 미팅을 하였다. 그리고 곧바로 1시간 4.50분쯤 달려야 하는 「블루마운틴 국립공원」코스를 앞두고 대륙 호주를 배우는 학습 일정이 시작되었다. 우리를 싣고 물을 건넌 비행기도 오랜 시간 많이 지치고 힘들었겠다. 우리 또한 좀 춥게 느껴지는 흐린 하늘 아래서 '다져넣기와 강행군'이라는 생각으로 가이더의 설명에 귀를 열었다. 순전한 미지의 대륙에 대한 설렘 덕분이다.

한국보다 78배나 되는 땅덩어리인데 인구는 고작 2200만이라니 이리 널널할 수가 있나? 부럽다는 생각뿐이다. 영국의 식민지에서 1901년 1월 1일에 정식 국가로 독립한 호주는 '사스'라는 괴질로 지구촌이 떠들썩해도 철저한 방역 덕분에 한국과 함께 안전할 수 있었던 유이(唯二)한 나라다. 이 나라가 한국 발효문화의 우수성을 초대하여 '김치박람회'를 열었다.

까다로울 만큼 '질서와 제도' 두 개의 바퀴로 굴러가는 나라 호주. 그러고 보니 우리가 오른 버스의 입구 천정의 “NO Smoke, NO Food, NO Drink, NO Stand"란 글귀가 한 눈에 들어왔다. 100% 사회보장 제도에 한국과는 모든 것이 거꾸로라는 이상하면서도 아이러니한 나라, 우리가 봄에서 여름이라면 이들은 여름에서 가을로 간다. 그러니까 우리의 초여름에 왔으니 이 나라의 현재는 계절적으로 초가을이 진행 중이었다.

 좌측 차선에다 오른쪽 운전대, 우리는 올리는데 내려야 켜지는 전등스위치, 상체가 큰 역삼각형의 체형, 지구의 자전방향 탓에 수돗물이 시계반대방향으로 돌아가고 남향보다는 북향을 선호하고 앞마당은 비좁지만 뒷마당이 너른 나라, 그리 보니 남북의 기온차도 거꾸로 여서 호주의 남쪽은 침엽수림의 한대였고 북쪽은 활엽수립의 아열대였다. 문화의 차이라지만 이쯤 되면 우리와는 반대로만 돌아가는 '거꾸로' 나라가 틀림없었다. -호주여행기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