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 시인/화가

넵스키문은 레닌 혁명 당시에는 사형 집행장의 통로로 쓰였던 죽음의 문이다. 1752년부터 1975년까지 100년 동안 적게는 3-40년에 한차례씩 큰 홍수가 터져 그때마다 죄수들이 방면되기도 하였다.
 빼째르부르그는 러시아 예술의 중심지다. 이 도시가 배출한 노벨 문학상 수상자만도 7명에 이른다. 한국 유학생이 가장 많다는 국립음악원도 빼째르부르그에 있다.

'해가 귀한 나라라 해만 보면 벗어제낀다'는 우스갯소리를 들으며 '거리의 악사'들을 만났다. 이들은 관광객의 국적을 귀신같이 맞춰내고 그 나라 노래를 연주하여 팁을 받는다. 이것도 직업이라면 그럴 만도 하겠다. 검정색 정장차림의 남자들은 중국인, 키가 작고 한국·중국 중간쯤의 샌님 스타일은 일본인, 이에 반해 분홍, 초록, 연두 등 골프웨어 차림은 100% 한국인이라는 것. 아웃도어는 한국 사람의 국제공인용인가. 한국인은 팁이 많아 선구자, 애국가, 아리랑 등 곡목도 다량 준비되어 있다.

빼째르부르그엔 태풍이나 황사는 없으나 대신 십자가가 떨어질 정도의 '돌풍'이 간간이 지나간다. 스먼리 성당의 대형 십자가도 돌풍에 떨어진 일이 있었다 한다.

저녁식사를 돼지삼겹살에 보드카를 곁들였다.

예정대로 러시아 정통발레 〈지젤〉를 보기 위해 마린스키극장에 착석한 시간은 정확히 저녁 7시 30분. 여유가 생겨 공연장의 이모저모를 살폈다. 무대 세팅은 사실주의적 그림으로 채워져 있었다. 중앙에 쌍두 독수리가 위엄 있게 위치해 있고 좌우 벽면에는 아름드리 대리석 기둥을 세워 혹은 여의주를 혹은 수금 켜는 비너스 상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뮤즈를 부르는 연주단의 음보정리가 요란했다. 15명의 관혁악단과 28명의 취주악단이 공연공간을 달구면서 지휘자가 수석 연주자와 악수를 교환하고 막이 열렸다.

하인리히의 시를 테오필 고티에르가 재구성한 〈지젤〉은 아돌프 아당이 작곡하였다. 전 2막으로 구성된 지젤은 초연부터 흥행과 명성을 동시에 얻은 작품으로 현재까지도 낭만 발레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이 작품은 발레리나에게 무용가로써의 기량과 배우로써의 연기력을 함께 요구하기 때문에 흔히 발레의 햄릿으로 불리기도 한다. 초연 때의 안무본이 어땠는지는 남아있지 않아 알 수 없다.

허나 1막에서는 사랑에 빠진 순진한 처녀가 배신당한 아픔에다 죽음까지의 감정변화를 표현해야하는 인간적인 모습과 죽은 성령(윌리)으로 나타나 사랑하는 이를 끝까지 지킨다는 완전히 반전된 분위기를 요구하는 2막의 구성은 어느 발레단에서나 변함없이 공연되는 내용이다.

1막-라인지방의 맑은 숲

과부 베르트의 딸 지젤은 같은 마을 청년 로이스를 사랑하고 있다. 로이스의 진짜 신분은 실레지아 가문에 백작인 알브레히트. 지젤에게 반해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시골청년으로 변장해 지젤을 만나고 있다.

로이스는 시종 윌프리드를 데리고 마을에 나타나 지젤을 만나기 위해 변장을 하는 중에 산지기인 힐라리온에게 들키고 만다. 힐라리온은 남몰래 지젤을 사랑하고 있지만 로이스 때문에 자신의 뜻대로 되기 않아 로이스를 시기하고 있던 차였다. 이에 힐라리온은 로이스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한편 지젤은 사랑하는 로이스와 마을사람들과 함께 즐겁게 춤을 추고 있다.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 자리를 뜨고 지젤도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자 힐라리온은 근처에 로이스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증거를 찾기 위해 로이스의 집으로 들어간다.

이때 사냥꾼들의 나팔소리와 함께 쿨란트공과 그의 딸이자 알브레히트의 약혼녀인 바틸드가 등장한다. 대공의 일행은 지젤의 집 앞에서 우유와 과일을 대접받는다. 바틸드는 지젤에게 호감을 느끼고 혼약을 했는지를 묻고는 목걸이를 축하선물로 준다.

이어지는 포도축제. 마을의 여왕으로 뽑힌 지젤이 무대에 오르자 축제는 절정에 이른다. 이때 힐라리온이 나타나 로이스 앞에 실레지아 가문의 증거물로 망토와 검을 들이대며 로이스의 정체를 밝힌다. 또한 바틸드가 돌아와서 알브레히트가 자신의 약혼자임을 선언하자, 지젤은 자신이 배신당했다고 여기고 괴로워하다가 베르트의 팔에 안겨서 숨을 거둔다. 
 
2막-지젤의 무덤

측백나무 아래로 지젤의 이름이 새겨진 하얀 십자가가 서 있다. 무덤에는 포도축제 때 지젤이 썼던 포도잎관이 걸려 있다. 풀섶이 열리고 윌리의 여왕 미르타가 나타난다. 미르타는 로즈마로 여러 윌리를 불러들인 후 그들만의 의식을 치르고 지젤을 무덤으로부터 불러들인다.

이때 알브레히트가 지젤의 무덤을 위한 꽃을 가지고 등장하지만 그는 지젤의 환영幻影으로부터 시달리게 된다. 더불어 힐라리온이 윌리의 무리에 둘러싸여 춤을 추다 죽자, 알브레히트는 더욱 두려움에 싸이게 된다. 미르타는 그에게도 힐라리온처럼 죽을 때까지 춤을 추게 하는 주문을 건다. 지젤은 알브레히트를 살려달라고 애원하지만 윌리의 여왕은 듣지 않는다.

지젤은 알브레히트를 구하기 위해 성스러운 십자가에서 떨어지지 말라고 하나 여왕은 지젤로 하여금 유혹의 춤을 추게 하여 십자가로부터 알브레히트를 떨어뜨리고 주문에 걸린 그는 죽음에 임박하게 된다. 새벽이 되어 날이 밝아오자 주문은 풀리게 되고 윌리들 역시 모두 사라진다. 지젤 또한 슬픔에 잠긴 알브레히트를 홀로 남겨두고 서서히 사라져 간다.

무대를 종횡으로 누비는 여자 주인공은 체구는 작지만 무대를 가지고 놀듯 자유자재로 춤사위를 만들어낸다. 타고난 몸매에 유연한 연기력, 갈등과 대결이 조였다 풀리기를 여러 차례, 튕겨날 듯한 격렬한 음악과 춤동작이 끝없는 방황과 환상을 만들고 만들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