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연재 | 시가 있는 월요일
절개지
전숙  |  ss829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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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8호] 승인 2015.03.29  22: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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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절단 났습니다
뇌출혈로 막힌 뇌혈관에 길을 내려고
산을 자르듯 덥석 뇌를 잘랐다는데
생의 지반이 붕괴된 엄니는
한평생 이끌어온 길의 발가락이 떨어져나가고 말았습니다
한참 절룩거리다 돌아오십니다
노루가 사라져버린 길을 찾듯
홀연한 길의 발가락을 찾다가
장판바닥만 쓸어보고 한동안 망연하십니다
주섬주섬 밤새워 꿰맨 기억의 가닥이 흩어져버렸습니다
주인에게서 멀어진 발가락의 열린 상처에
토사에 뒤덮인 절개지처럼 망각구름이 쌓입니다
산사태처럼 작은 기억들이 무너져 내리자
반듯한 가르마 같던 엄니 길 전체가 흔들립니다
씽크홀*처럼 엄니의 길들이 돌연사하고 있습니다
어떤 추억도 뿌리내리지 못하는 절개지는
먼 길 찾아온 사촌바람에게도
손잡고 울먹이는 풀씨친구에게도
밥 안준다고 타박입니다
길을 잃은 산짐승이 사라지듯
엄니의 아름답던 꽃잎도 낙화유수입니다
때 아닌 갱년기처럼 변덕스런
기억의 가닥을 엄니는 아예 싹둑 가위질입니다
핏물 어룽진 노을이 산허리에 업혀서
저물어가는 꽃잎에 침을 탁. 탁. 뱉습니다.

*씽크홀: 땅이 갑자기 꺼지는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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