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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목사이야기 43 - 부임목사 입사성분(入仕成分)조선전기 문과출신 대부분, 후기로 갈수록 음과 증가
신광재 기자  |  sjs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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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호] 승인 2006.10.2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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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적인 지방 통치자인 수령은 문․무․음과(文․武․蔭科)로 입사 성분에 구분을 두었고 또한 품계에도 차별을 두어 임명하였다.

그리하여 관찰사를 제외한 지방관들의 품계는 부윤(府尹)이 종(從)2품, 대도호부사 정3품, 목사 정3품, 도호부사 종3품, 지군사 종4품, 현령 종5품, 현감 종6품으로 구별되었다. 입사 성분 역시 문과, 무과, 음과, 문무교차, 문음교차, 문음무교차 등 여섯 유형으로 구분된다 임호민, 앞의 글, 

나주는 《경국대전》외관직조에 나주목사는 정3품의 관리를 임명하게 되어 있다. 이는 『여지도서』 『여지도서』下, 국사편찬위원회, 1979. 관직조(官職條), 『금성읍지』 금성읍지는 1897년에 발간된 사찬읍지로 3권 2책으로 되어 있는 목판 활자본이다.

관원조(官員條)에 ‘牧使 正三品文蔭倂同’ (목사 정삼품문음병동)라 기록된 바에서도 입증된다. 이처럼 나주목에는 정3품의 목사가 파견되어 다스려졌으며, 나주목사는 문과합격자나 음서출신자로 임명되었다. 이러한 규정은 실제에 있어서 이루어지고 있는지 〈선생안〉을 통해 살펴보자.

나주와 같은 문음교차 지역은 주로 삼남지역의 내지(內地)에 분포하고 있다. 선생안도 많이 남아 있으나 문․음(文․蔭) 표시가 제대로 갖춰진 것은 몇 되지 않는다. 대개 문과 출신자만 표기하고 음관(蔭官)은 표시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것 같다 구완회, 앞의글, 1982

나주 또한 선생안에 문음(文蔭)표시가 되어 있지 않다. 이에 입사성분을 보기 위해 『문과방목』을 통해 문과 출신자들의 명단을 전․후기로 나누어 확인하였다. 확인해 본 결과 조선전기(1592년 이전)에 나주목에 부임한 92명의 목사 가운데 72명(78%)이 문과출신 목사였다.

나머지 20명의 목사는 확인되지 않지만 음서출신의 목사가 부임했을 것으로 본다. 이는 다음 사료를 보고 유추할 수 있겠다.

「조선 정부는 원래 무관(武官)들의 내지(內地) 수령으로 임용하지 않았는데 중종 중년(中宗 中年) 이후 간사한 무리들이 정권을 잡고 그들과 친한 무과출신들을 내지 수령으로 임용하였으니 무과 출신의 내지 수령 임용은 고사(故事)가 아니라는 것이다 《燃藜室記述》別集 8, 官職典考, 守宰條,(이동희, 앞의 글, 1989, p.213 재인용)
.」

이처럼 중종 중반까지는 내지(內地)에 무과출신자들의 수령으로 임용된 일이 없었다고 한 것을 통해 나주목도 전반까지는 문․음과 수령만이 목사에 부임했던 것으로 보인다.  

수령의 임용은 조선후기로 갈수록 문과출신 수령이 점차 감소하고 있는 반면 무과출신과 음관 수령이 증가하고 있다. 구완회, 앞의 글, 1982

이러한 현상은 나주목에서도 나타난다. 조선후기(1897년까지) 나주목에 부임한 204명의 목사(牧使) 가운데 96명(47%)의 문과출신자들이 확인되었다. 조선전기에 비하면 문과 출신자들의 수령이 많이 감소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특히 18~19세기에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118명의 목사 중 29名(25%)만이 문과출신자로 확인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대체로 18세기 문․무․음 수령의 분포상황을 반영하고 있는『여지도서』와 19세기 전반의 그것을 반영하고 있는 《청운보(靑雲譜)》를 통해 볼수 있다 . 그러나 《靑雲譜》에서 보이는 음과(蔭科) 수령은 나주목 〈선생안〉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단지 문과출신자가 전기에 비해 많이 감소하고 있고, 입사성분이 밝혀지지 않은 牧使가 많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나주목에는 『여지도서』,『금성읍지』에 나타나 있듯이 문음(文蔭)출신의 목사들이 많이 부임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조선전기에는 문과출신자들이 음과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비율을 가지고 있었던 반면에 후기로 갈수록 많이 감소하는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대체적으로 이런 양상을 띠고 있었다.

 목사 평균 재임기간(在任其間) 13개월
 
 조선시대의 지방관은 일정한 임기가 정해져 있었는데, 조선조의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에는 다음과 같은 규정이 있다.

「 관찰사 ․도사(觀察使 ․都事)는 근무일수 360이 차고, 수령은 근무일수 1,800이 차고, 당상관(堂上官) 및 가족을 데리고 가지 않는 수령과 훈도(訓導)는 근무일수 900이 차면 바로 전임시킨다. 임지(任地)가 옮겨진 수령(守令)은 前의 근무일수를 통산하여 전임시킨다.  『경국대전』권1 吏典 外官職

당상관 수령 및 가족을 데리고 가지 않은 수령은 900일, 당하관수령 1,800일을 임기(任期)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는 세종 5년에 제정된 육기법(六期法,1,800일)에 영향을 받은 경국대전의 규정이고 선초에는 흔히 삼기법(三期法,900일) 이는 30개월을 단위로 그동안의 근무성적에 따라 黜陟이 행해지는 제도였다. 이는 태조 즉위 교서에서 수령선임의 지침을 통해 볼 수 있다.

「수령은 백성을 가까이하는 직책이니 중시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을 도평의사사․대간․육조로 하여금 자기 아는 바를 천거하게 하여 공정하고 청렴하며 재주 있는 자를 얻었는데 힘써 그 직책을 맡기되 30개월이 차거든 치적이 현저하게 나타난 사람은 발탁 등용시키고, 천거된 사람이 적임자가 아니면 천거한 사람에게 죄가 미치게 할 것이다. 『태조실록』권 1, 태조 1년 7월 28일 정미조

수령의 임기가 30개월(900일)이었던 것이 세종 때부터 수령의 임기가 60개월(1800일)로 변화되었음을 볼 수 있다. 

이들의 평균 재임일수는 약 16개월(약 480일) 정도였다. 그러나 세종 때 육기법을 기준으로 前에는 평균 재임기간이 약 13개월(390일)로 900일에 비교하면 약 43%정도 비율을 차지하고 있고, 後에는 약 16개월로 1,800일에 비하면 약 26%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전체 평균임기로도 26%에 불과하다.  

이는 나주목에 부임한 목사들이 법정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자주 교체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는 수령 제수자들 중에는 수령 진출을 중앙관직에 진출하기 위한 기회로 여겼기 때문에 부임 후 개인적인 사유로 빈번히 사체(辭遞)하는 임호민, 앞의 글, 1994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이렇듯 수령의 임기가 단명하였기 때문에 이들은 도임한 이후에도 민생을 살필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충분하지 못하여 목민관(牧民官)으로서 정치적 소신을 발휘하는데는 일정한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또한, 이들 수령은 재임기간이 짧은 동안에도 통치의 특권을 내세워 일반 民에 대한 수탈을 자행할 소지가 다분히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김석희, 앞의글, 1990 이는 후술할 교체실태를 통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수령의 재임기간을 볼 때 수령의 잦은 교체 현상이 보이는 가운데 전임수령과 후임수령의 교체될 때 공석기간이 발생한다. 짧게는 며칠에서 길게는 2년 정도까지 공석기간이 보인다. 나주목의 공석기간은 평균 3개월 정도로 잡을 수 있다.

며칠 정도의 공석기간은 임기를 완료하고 바뀐 수령의 경우이고, 1개월 정도는 정부에서 임명받고 나주까지 걸리는 기간이라 생각된다. 2년의 공석기간이 보이는 시기는 그때까지 목사가 부임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선생안 작성 시 누락된 것이 아닌가 한다.

왜냐하면 선조 때 호남이 걱정스럽고 나주가 긴요한 곳이니 목사를 대체(代遞)할 때 먼저 적임자를 얻은 후에 조처하여야 하고 목사로 적합한 자를 천거하라고『선조실록』권71, 선조29년 1월 17일 갑신 하여 나주 목사의 임용에 대해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2년여 동안 나주목의 목사자리를 공석으로 놓아둘 리가 없었을 것이다. 

이렇듯 공석기간이 발생한 이유는 앞에서 언급한 나주목의 평균 재임기간이 낮다는 것을 통해 일정기간에 많은 사람이 부임을 하여야 했고, 전임수령의 갑작스런 교체로 인해 후임수령에 대체를 하지 못한 상황과 나주로 내려오는데 걸리는 기간으로 인해 공석기간이 생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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