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검정 백옥 같은 달빛에 호연지기를 씻던 장사꾼이
그 달빛의 고적함에 아득히 취해서
돌연히 고향과 그리움을 노래하는 시인이 되기까지
생의 골짜기는 아흔아홉 골 금성산처럼
단 한 번도 쉽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깎아지른 벼랑과 사막과 망망대해를
눈물과 피땀으로 건널 때마다
욱신거리는 쪽으로 어깨가 휘영청 휘곤 했다는데

바람처럼 자유로웠던 영혼은
아무리 멀리 달아나도 그를 잡아당기는
세상에서 가장 질긴 끈이 있다는 걸 몰랐다
고향이라는 무명의 끈에 잡아 채여서
여린 달빛마다 그리움의 실핏줄이 터져
가슴엔 그리움이라는 피멍이 내려앉더니
기어이 망부석 같은 달이 되었다

서울역에 도착한 호남선기차 칸마다
쏟아지는 고향말을 향기처럼 맡고 다니던 달은
구름처럼 흘러가는 기러기가족만 스쳐도
어깨가 고향 쪽으로 탄식처럼 휘었다
가난한 나그네고학생으로 쪽잠도 얻어 자고
끼니도 신세진 눈물겨운 인심에
보은의 고개 쪽으로 또 어깨가 활처럼 휘어
마음까지 둥그렇게 휜 달

설움 중에 배고픈 설움이 제일 컸다는 달은
결식아동재단을 만들기 위해
이제 나눔이라는 꽃송이로 어깨가 꽃대궁처럼 휘고 있다

무언가에 골똘하면 어깨가 휘는 달은
그가 넘어온 설움의 고개들을
지금 그리움의 달빛으로 녹이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