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5월.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했던 나주지역 동학군이 전주성 점령이후 나주로 돌아왔다. 이들은 나주 북쪽, 지금의 노안면 금안리 일대를 장악하고 6월 중순에 집강소를 설치하고 폐정을 개혁하려 하였다. 그러나 민종렬 나주목사의 반발에 부딪혀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고, 11월말까지 민종렬이 이끄는 수성군과 대립하면서 싸움을 계속해야 했다.

 6월 25일. 태인, 정읍 동학군 수천명을 이끌고 최경선 대접주가 나주로 내려와 7월 5일 대공세를 펼쳤으나, 굳건히 닫힌 나주성을 함락하지 못했다. 전라도에서 유일하게 집강소가 나주에 설치되지 않자 8월 13일 전봉준이 손수 나주로 내려왔다.

 5-6차례 공세가 수포로 돌아가자 동학군은 전라감사 김학진으로 하여금 민종렬 목사를 파직시키는 초강수를 두었지만 지역민의 반발로 이 계획도 성공하지 못했다.

 나주를 점령하지 못한 동학군은 최경선이 이끄는 동학군을 나주에 주둔시켜야 했으며, 10월에는 손화중 대접주 휘하의 동학군까지 투입하는 바람에 북상계획에 차질을 가져오게 하였다.

 전봉준은 나주성에 동학군을 재투입할 생각도 했지만 일본군을 몰아내는데 지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해 다른 방법을 찾았다. 전라감사 김학진을 시켜 나주목사를 바꾸도록 조정에 장계를 올리도록 한 것이다. 당시 조정에서도 일분군이 물러나기를 원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라감사의 계청을 신중하게 다루었다.

7월 19일 마침내 조정에서 김학진의 계청을 받아들여 박세병을 나주목사로 제수하였다. 이로써 사태가 수습되는 듯 했다. 그러나 이원우 영장과 나주읍민들이 반발하여 민종렬를 떠나지 못하도록 잡았다.

결국 평화적인 해결방법이 수포로 돌아갔고 김홍집 내각이 충청도 이남지역에서 발발한 동학군을 토벌해 달라고 일본군에게 요청하면서 오히려 민종렬은 동학군을 공격할 준비를 갖추었다.

 조정은 8월에 이르자 동학을 본격적으로 소탕하는 쪽으로 정책을 선회했다. 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가자 전봉준은 민종렬을 직접 만나 담판을 지으려고 나주로 내려왔다.

 관찰사와 비장(裨將)의 서찰을 들고 관원과 수하 등 10여 명을 데리고 8월 8일에 전주를 떠났다. 전봉준은 나주 북면에 들러 최경선과 오권선 대접주를 만나 전후 대책을 의논한 다음 통로를 봉쇄하고 있던 동학군을 20～30리 후방으로 물러나게 하고 8월 13일에 나주성으로 들어갔다.

오지영의 <동학사>에는 전봉준이 나주성으로 들어간 뒤 민 목사와 오고간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전봉준은 최경선에게 통지하여 곧 군대를 거두어 돌아오게 하고 전봉준 스스로 종자 수인을 데리고 나주 읍에 이르렀다. 방금 우리나라는 왜구가 독수를 내밀어 침략을 꾀하고 국정은 나날이 말이 아니어서 나라 존망이 목전에 있으니 그대는 아는가 모르는가. 어서 바삐 꿈을 깨라.
목사가 전 대장의 기품을 보고 언사를 들으매 간담이 서늘하여 말문이 막히어 감히 한마디도 항변할 수 없었으며 오직 머리를 숙이며 전후사유를 듣기를 청할뿐이라.

전 대장이 다시 천하대세며 홍계훈과 강화하던 말이며 각 군에 집강소를 설치하고 서로 국사를 의논하는 등 전후 수말(首末)을 낱낱이 말하니 사리가 그럴듯하고 위풍이 또한 늠름한지라 목사는 다만 한마디로 유유(唯唯)할 따름으로 이 날로부터 집강소를 설치하여 정사를 보게 하였다.“

 전봉준과 민종렬 단판

 <금성정의록>에는 <동학사>와는 반대로 전봉준을 비하하는 내용을 싣고 있다. 기회를 보아 처단하려 하였으나, 전봉준이 꾀를 써서 겨우 사지로부터 벗어났다고 기록하고 있다.

“8월 13일 거괴 전봉준이 도당 십여 인을 거느리고 손에는 한치의 무기도 휴대하지 않은 채 본주 서성문에 와서 수문 별장에게 청했다. 나는 순영문의 문첩과 비장(裨將)의 사통을 갖고 왔으니 문을 열라하자 별장은 민태수에게 전하면서 이 적을 도살함이 어떻겠는가하고 물었다. 민태수는 그가 단신으로 왔으니 감영의 지휘로 온 것이다.

싸움에 임해 적을 죽이는 것은 당연하나 걸련(乞憐)의 내청자를 죽이는 것은 무사답지 않으니 너희들은 의심치 말고 불러오라고 했다. 봉준은 인사를 나눈 다음 우리들(동학도)은 근년에 탐관오리의 학정을 감당키 어려워 집을 떠나 머리를 모아 행동을 같이하여 병든 세상을 바로잡으려 했다. 다른 뜻이 아니라 공은 특별히 이해해 주기 바란다고 했다.

민 공은 본래 너희들은 전라 좌도에서 이미 세상을 어지럽힌 무리들이며 감히 고을을 지키는 관을 모해하고 순찰사를 쫓아냈으며 경군과 싸워 위로는 군주의 정사에 근심을 끼쳤고 아래로는 만백성들을 처참하게 핍박했다.

개를 기르는 것은 도적을 보고 짓게 하자는 것이오 울타리를 치는 것은 도둑을 막자는 데 있다. 오두막도 그러하거늘 항차 나라의 중요한 진성을 지키지 않을 수 있겠는가. 봉준은 낙담하여 입을 다문 채 얼른 일어나 객사에서 자고 이튿날 떠나려 했다.”

금성정의록에는 마치 민종렬 목사가 동학란을 일으킨 전봉준에게 훈계하는 것처럼 기록하고 있다.

동학사는 전봉준 입장에서 금성정의록은 민종렬 입장에서 기술하여 어떤 기록이 정확한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당시 조정에서는 전봉준의 동학농민군을 다독거리기 위해 전라감사로 하여금 나주목사 민종렬을 파직하게 하였다.

때문에 전봉준이 전라감사와 비장의 서찰을 들고 관원과 함께 단신으로 나주성에 입성할 수 있었다. 목이 두개라면 모를까 전봉준이 나주성에 들어가 민 목사와 단판을 지을 수 있었던 데는 믿을만한 구석이 이었기 때문이다. 

 이날 두 사람의 만남에 있어서 가장 큰 성과는 나주에 집강소 설치가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7월 민 목사가 집강소 설치를 거부하자 동학군은 3천여명과 나주의 동학접주 오권선 군대가 합세하여 총공격을 단행했으나 집강소 설치는 실패하였다. 이처럼 두 사람이 나주에 집강소를 설치하기로 합의한 대목은 동학농민군에게는 가장 큰 성과이기도 했다.

 <금성정의록>에 ‘전봉준이 객사에 자고 다음날 떠났다’는 대목은 민 목사가 그를 조정에서 보낸 사신과 같은 대우로 맞이한 것으로 봐야한다. 조정에서 사신이 내려 올 경우 나주목에서는 정3품이상에 한에 객사에서 숙식할 수 있게 했다. 이 점을 미뤄 금성정의록의 기록처럼 민 목사가 전봉준을 깔아뭉게며 큰소리를 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당시 동학군의 위세가 하늘을 찌르고 조정과 협상에서도 주도권을 잡은 전봉준에게 민 목사는 최대한 예우로 그를 맞이하면서 그의 의견을 들어주었을 것이다. 이날 두 사람의 합의에 따라 나주에 집강소가 설치됐고, 최경선이 집강소를 담당하여 행정을 감독하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군이 들어오면서 집강소는 폐지되었다.

 동학농민군이 집강소를 설치한 것은 폐정을 자신들의 힘으로 개혁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이 제시한 폐정개혁 요구에는 봉건적인 신분제도의 철폐를 비롯한 정치·경제 제도의 개혁 등 반봉건적인 요구와, 일본세력의 배격, 미곡의 밀무역금지 등 반침략적 요구가 결합되어 있었다.

농민군은 집강소를 설치한 후 탐관오리와 탐학한 부호들을 색출해 징계하고, 양인과 천민의 신분해방을 위해 투쟁했다. 또한 삼정을 개혁하고 고리채를 무효화했으며, 지주의 소작료를 압수하는 등 지주제도 개혁을 지향했다.

 한편 방곡령을 실시하고 일본으로의 미곡 유출을 엄격히 금지하는 등 반외세적인 활동도 했다. 집강소 질서하에서의 농민군의 폐정개혁은 봉건제도를 근본적으로 변혁시켰던 것은 아니지만, 이를 통해 봉건적 신분제도를 전면적으로 해체시켰고 정치·경제 면에서의 봉건적 폐단도 개량·개혁할 수 있었다.

 집강소가 농민군의 자치적 행정기관으로 확립됨에 따라 농민군은 지역적 차원이지만 자신의 힘으로 자신들의 사회적·경제적 생활질서를 변화시켜나갔는데, 이는 농민군의 비약적 성장이자 조선사회의 역사적 전진이라고 할 수 있다

나주성 토벌군의 총본산

 8월로 접어들면서 동학군과 협상을 고려했던 조정에서 일본군의 도움을 받아 강경 진압으로 선회하고 나선다. 전라감사를 통해 나주목사직을 파직시켰던 조정에서는 다시 민 목사에게 나주를 맡기게 하였다.

 10월 28일 호남초토사로 임명된 민종렬은 일본군과 관군이 내려온다는 소식을 듣고 초토영을 설치하는 한편 병력을 보강하기 위해 수성별초 박봉년 등을 시켜 향교에 통문을 보내어 의병을 모집하도록 하였다.

민종렬은 노안지역 동학군의 움직임을 탐지하고 11월 10일 병력을 출동시켜 선제 공격을 감행한다. 동학군이 만일 나주성에 접근하면 방어전을 펴기가 어렵다고 판단하여 선제 공격에 나선 것이다.

 한편 동학군은 수성군이 도착하자 선암 전투에서 얻은 경험을 살려 들판보다 산악전이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이날 새벽 용진산(송정리 어등산 인근)으로 들어가 진을 쳤다. 수성군이 산 중턱까지 올라갔으나 동학군이 험준한 산에서 공격해 오자 일단 후퇴한 뒤 구원병을 기다렸다.

용진산에 포진한 동학군은 강추위와 식량확보에 어려움을 겪게되고 다음날 새벽 결국 장성쪽으로 철수하였다.

 11월 22일 동학군의 나주성 최후 공격이 벌어졌다. 손화중, 최경선, 오권선이 이끄는 동학군은 노안면 금안리와 남산리 일대로 진출하였다. 남산리를 출발한 동학군은 나주 북문 밖 함박산(咸朴山)까지 진격하였다. 그러나 강추위가 몰려 와 손발을 움직일 수 없게되자 또 다시 공격을 포기하고 동학군은 남산촌으로 돌아가야 했다.

오히려 다음날 11월 24일 오후 1시경 수성군이 동학군이 주둔한 남산촌으로 기습해 왔다. 민종렬은 도위장 손상문에게 포군과 천보대를 인솔해 적과 싸우게 하고, 초관(哨官) 박성로에게 우측통로를, 별장 전학권에게는 우측통로를 차단하게 한 뒤 이른바 세곳에서 기습하였다. 퇴로가 막혀 결국 최후 전투에서 패전한 동학군은 광주로 후퇴하였다.

 당시 동학군은 주력병력인 전봉준과 김개남이 공주 우금티와 청주전투에서 각각 패해 남쪽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11월 25일 금구 원평에서 전병준과 손병희가 일본군과 관관을 맞아 싸우다가 패전하여 동학군의 사기는 완전히 무너졌다.

 나주성을 지켜낸 민종렬은 초토사 지위로 전국 53개 군현에 동학 잔당을 잡아들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뒤이어 일본군도 나주로 들어와 본영을 두고 동학군 토벌을 지휘하였으며, 관군도 그뒤를 이어 들어와 나주성은 이른바 토벌군의 총본산이 되었다.

일본군은 다음해 1월 5일 나주성에 임시로 본부를 설치하고 군수물자를 공급하였고 동학군 토벌을 위한 병력을 지휘하였다. 토벌을 마친 일본군은 나주에 모여 각지에서 체포된 동학군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임시재판소와 비슷한 기관을 두고 등급을 매긴 다음 대부분 학살하였다.

 <김남철 역사>에 의하면 부안에서 체포된 김낙철 대접주는 나주로 끌려와 엄청난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기술하였다.

“31명이 잡혀왔는데 나주에 도착하자 몽둥이와 철편으로 2시간씩 구타를 당해 어깨가 부서지고 갈비뼈가 부러지는 고초를 당하고 다시 수성군에 의해 한 차례 더 구타당하였다. 토굴 감옥에 들어가니 많은 동학군들이 삼단같이 쓰러져 있었으며, 31명 중 27명이 총살당했다.”

 지금의 나주초등학교 자리가 나주영문 토굴 감옥이 있었다. 나라를 바로잡고자 침략자 일본군을 몰아내고 죽창을 들고 일어섰던 많은 동학군의 최후를 여기 나주에서 맞았던 것이다.

 민종렬은 나주목사로 오기전 상주목사로 5년동안 재직하면서 오랫동안 체납된 조세를 찾아내 완납시켰으며, 흉년이 들때 창고 양식을 모두 털어 내고 여기에 자기의 녹봉까지 내놨다.

이뿐 아니라 학교를 세우고 농사에 힘쓰도록 독려하는가 하면, 소란을 피우는 무뢰배 무리를 제거하기도 했다. 이처럼 온갖 일에 정열을 받친 민 목사의 임기 만료가 가까워지자 성주 백성들이 유임운동에 나서 유임됐다.

 나주목사로 시절 동학농민군과 대치하면서 민 목사는 소모사와 초토사의 임무를 겸임했으며, 1895년 담양군수로 자리를 옮긴 뒤 그해 11월 군수직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참고문헌> 금성정의록, 동학사, 승정원 일기, 전봉준과 동학농민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