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숙

겨울 은행나무
빈 가지에 비닐봉지 펄럭인다
어쩌자고 나무는
저 민망한 비닐봉지를 붙잡고 있는 것인가
바람을 따라가겠다고 우우 목 놓아 우는
비닐봉지
나무는 여린 손에 더욱 힘을 준다

 작년 가을 13층 베란다에서 몸을 던진, 철이의 몸을 엉겁결에 받아 안은 나무는 무심코 손을 뿌리치고 말았다. 떨어져 내리는 바닥 깊은 철이의 눈동자와 마주친 나무는 밤새 오한이 들었다. 삽시간에 나무의 잎이 모두 떨어져버렸다. 다른 나무들이 황금의상으로 가을을 향유할 때 나무는 벌거벗은 몸으로 수치를 견뎠다. 아무리 날카로운 비웃음도 철이의 마지막 눈빛보다 아프지 않았다.

그렇듯 아픈 계절이 지난 후로
나무는 손에 잡은 것은
무엇이든 차마 놓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