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연재 | 소설 표해록
청산 윤영근의영산강이야기27-대동계가 지켜온 호남명촌(하)-400여년간 향약정신 명맥 이어 풍수지리 대가 도선국사
신광재 기자  |  sjs22@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227호] 승인 2006.09.01  00:00:00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그림을 껴안듯 보듬으면서 양쪽으로 기어 내려간 낮은 능선은 내룡의 머리로, 바다 속에서 고개를 들어올린 모습이다. 오늘날에야 막힌 바닷물대신 기름진 갯벌은 옥답으로 변한 지 오래되었다. 서구림리에서 양장리 신기동까지 5㎞에 걸쳐 기어가고 있는 듯한 좌청룡은 도갑천의 맑은 물이 들판 가운데서 토해 낸다. 민물과 조수가 부딪치는 곳은 여러 종류의 물고기들이 모여들어 사람이 살기에 가장 좋은 곳이다.

1540년께 쌓은 지남제방 안쪽에 생긴 지남 들녘을 지나면 도갑리 신등에서 동호리 동변까지 4㎞에 걸쳐 우백호 격인 낮은 구릉이 좌청룡과 나란히 누워있다. 그러니까 평행한 쌍룡이 구림 골을 보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구림은 풍수지리의 교과서와 같은 모습의 명당 터라 일컬어 온 것이다. 구림의 옛 중심지였던 서호정과 남송정 고산, 동계마을은 법수굴 뒷녘에서 상대 야산으로 이어지는 긴 언덕이 북쪽의 찬 바람을 막아준다.

매봉(63m)에서 지와목을 지나 구림공고 뒷산인 활메산능 건너 돌정고개와 붓뭇등 구릉이 남쪽에 있어서 마파람을 막아주는 안산 구실을 해준다. 그래서 구림은 포근한 둥지 속 같은 마을로 모든 이들의 부러움을 받아온 명촌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영산강변에 있는 모든 마을 중 가장 살기 좋은 마을이 구림이다.

 

도선국사의 고향‘구림마을’

도선국사(827∼898)는 풍수지리의 대가인데 그가 태어난 곳이 구림이다. 도선은 신라 흥덕왕 2년에 영암 땅 구림리 성기동에서 태어났다. 도선 국사가 태어난 설화는 이 마을의 이름을 구림으로 부르게 된 동기가 흥미와 함께 신비감을 불러일으킨다.

구림 성기동에 사는 한 농부의 딸(최씨)이 봄 날씨가 화창한 어느 날 빨래를 하던 중 산골짜기에서 흘러오는 물에 둥둥 떠내려 오는 파란 참외를 먹고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처녀가 아들을 낳았는데 아비 없는 아이를 낳고 보니 부끄럽기도 하려니와 가문의 수치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주변의 냉소와 손가락질에 겁을 먹은 처녀와 그의 어머니는 어두운 밤을 틈타서 아무도 모르게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숲 속의 바위 위에다 아이를 버렸다. 그렇지만 아이를 버린 처녀는 뜨거운 모정을 버릴 수가 없어서 며칠이 지난 후 그곳을 다시 찾아가 보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버린 아이를 중심으로 수많은 비둘기들이 모여들어 먹이를 물어와 아기에게 먹이며 키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를 본 처녀는 아이가 보통이 아닌 범상한 사람임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리고 다시 집으로 데려와 키우기 시작했다. 아이를 비둘기 떼가 보호했다고 해서 마을이름을 구림이라했고 아이를 버렸던 바위는 국사암이라 하는데 죽을 뻔한 아이가 자라 고승이자 국사가 되었으므로 국사암으로 불렀던 것이다.

결국 영산강변의 명촌 구림은 누가 뭐래도 도선의 마을이라 해도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구림촌의 기원은 풍수지리의 대가 도선 국사의 설화가 말해주듯 구림천 골짜기 어귀였다고 보여 진다.

산골짜기는 평온한 아름다움과 깨끗한 경치가 있고 물길을 돌려 경작하는 이로움이 따르기 때문에 도선 같은 인물이 태어났다고 보여 진다. 바닷가의 삶은 강가에서 사는 것만 못하고 강가의 삶은 시냇가에 사는 것보다 못하다고 했다. 유명한 지리학자들도 큰 강 주변보다는 계곡 경사지가 하늘에서 내려준 시냇물만으로도 벼농사를 지을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대동계 집회장 ‘회사정’여전

옛날의 도갑사 입구 길이었던 자리, 즉 지금의 도로 옆 죽정리에는 정조대왕의 능에 피우는 향을 생산해 오던 곳으로 일반인의 출입을 엄격하게 제한했다는 국장생이 평범한 돌이지만 무서운 모습으로 권위를 지키며 서 있었다.

국장생(지방 민속자료 제18호)은 도갑사로 오르는 옛 길가에 세워져 있는 것으로 보아 사찰의 경계를 표시하는 표석이다. 낮은 키의 돌에 국장생이라고 음각한 글씨위에는 칸을 친 줄이 반듯하게 그어졌다. 귀중한 역사적 자료라고 한다. 일체의 출입 금지를 알리는 경계 표시로 입구에 세운 국장생은 한국 장생연구의 단초가 되는 열쇠로서 소중히 다루어야 할 것이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명촌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라 하겠다. 우리나라 땅모양에서 바위산으로 변한 월출산은 잔구성 산지이다. 경사가 급한 배후 산지에서 들판으로 나서는 곳은 완만한 구릉이 이어졌다. 구림의 경우 하늬바람을 막아주는 이버덩에 자리 잡고 있다. 둔덕의 푸서리 땅에 시냇물을 대서 논을 일구고 낮은 산에 올라가 땔감을 얻어 추위를 견디어낸다. 냇가에 굴러온 조약돌로 집을 지었다. 갯돌로 만든 콩떡 담과 집들이 구림마을에는 많은 편이다.

주지봉 남동쪽에서 발원한 도갑천(군서천)은 구림의 풍수지리 그림에서 중심을 이루며 구림의 젖줄이다. 도갑천을 중심으로 양쪽에 두 마리의 용에 안겨있는 듯 보인다. 호남의 명촌은 그렇게 탄생된 것이다. 마을에는 수백 년은 됨직한 아름드리 소나무가 구림천을 사이에 두고 푸른 기운을 발산한다. 전통한옥 사이로 얕은 돌담이 고풍스런 모습이다. 이곳은 선사시대인 2200년 전부터 만들어진 마을로 한반도 최고의 역사 깊은 마을이다. 구림사거리에서 조금 더 가면 길옆에 서있는 고죽 기념관이 있다.

여기서 태어난 최경창(1539∼1583)은 호가 고죽으로 그의 글 솜씨는 당대에 최고였다. 고죽이 쓴 시의 조격과 정서가 당나라의 시와 방불하다 해서 당풍시인으로 부르기도 한다.

지난 400여 년간 맥맥이 이어져 내려온 구림대동계 집회장으로 썼던 사방이 터진 회사정 마루에는 이화여대에서 마련한 설치 미술품이 전시중이다. 회사정은 솔밭 속에 자리한 정자로서 조선중기에 영암구림에서 성행했던 대동계의 결사장소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어서 깊은 뿌리의 역사를 들추어 본 듯하다.

대동계결성으로 향약정신을 구현해서 이상향의 마을을 건설하려한 구림은 오늘날 구림을 중심으로 영암읍과 독천까지 가는 819번 지방도로는 벚나무 가로수가 역사의 맥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꽃이 터널을 이루며 아름다운 꽃길로 유명하지만 아쉽게도 지나버린 계절로 인해 꽃은 볼 수 없었다. 도로를 확장하면서도 가로수 벚나무를 살려낸 영암 인들의 굳은 의지가 도선의 후예답고 자연에 가깝게 다가서는 생명존중의 속뜻이 영암 인들의 자부심인 것이다.

역사가 살아 숨쉬는 구림마을은 중국과 일본으로 뻗어나가는 국제 교역로로서 국제항구의 구실을 해왔다. 쉼 없이 흐르는 물길을 끼고 완만한 구릉이 새둥지처럼 감싸 안은 역사마을 구림의 끝자락에 폐교된 학교를 다시 살려 영암도기문화센터로 리모델링했다.

수려한 월출산을 배경으로 풍수지리의 대스타 도선 국사의 자취가 베어있는 구림은 전통이 이어오는 풍수마을로 이름이 높다. 수많은 문화유적이 살아 숨쉬며 조선시대 유학을 정착시켜 강직한 선비정신을 지켜온 대동계정자, 서호사, 죽정서원과 간죽정, 쌍취정 등 아름다운 정자들이 푸른 대숲과 함께 붉은 빛을 띠는 늙은 노송이 어울려 운치 있는 한국적 풍광을 이루고 있다.

 

국제항구였던 상대포 뱃길 끊긴지 오래

한국도자사의 진정한 주인공인 도기, 옹기의 역사와 예술성을 몸으로 느끼게 해주는 영암도기문화센터를 돌아 구림공고 쪽으로 가면 낮은 언덕바지에 구림도기 가마터 유적(사적338호)이 있다. 1200년 전에 이곳에서 대규모로 도기를 제작한 가마는 언덕의 경사도에 맞춰 길게 늘어선 모습이 황토 담처럼 이어져 있다.

국제 항구였던 상대포는 끊어진 물길 때문에 드나드는 배가 사라진지 오래다. 신라시대에는 최치원이 당나라로 유학길을 떠났던 곳이기도 하며 백제의 왕인이 일본으로 뱃길을 열어 찾아갔던 곳도 여기다. 상대포(전남기념물 20호)는 예로부터 해상교통의 요지로서 멀리 중국이나 일본과 연결되는 국제항구로 중요한 교통중심지였다.

지금은 바다를 막고 강의 한가운데에 둑을 쌓아 농토를 만들어 흔적만 남았다. 담수로 변해버린 상대포 저수지에는 거대한 비단잉어가 헤엄치며 노니는 모습이 이미 지나가버린 세월을 되돌아보게 할 뿐이다.

저수지 둑에는 한국전통 돛단배가 올려져 있었다. 배는 물위에 떠 있어야 배이지 땅위에서 다니는 배는 없는 것이다. 상대포 정자 옆으로 떠다니게 한다면 한층 고풍스런 맛이 살아날 것으로 믿는다. 상대포 정자에 올라섰다. 시원한 바람이 들판에서 불어온다.

푸른 소나무 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는 규칙적으로 들려온다. 명촌중의 명촌인 상대포 정자에 앉아 세월의 뒤편에서 들려오는 북소리를 듣는 맛도 제법이다. 그윽한 향취가 옛것과 버물려 정겹게 들려왔다.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 옛것도 역시 좋은 것이여!

나주 중앙초등학교 교사

신광재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1)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월인당
기사 내용 중 잘못된 정보가 있어서 이렇게 감히 댓글을 답니다.
구림마을의 정자들 중 하나로 소개되어 있는 쌍취정은 구림이 아니라 군서면 모정마을에 있었던 정자입니다. 450년 전 석천 임억령 선생의 형제가 지었던 정자이지요.
모정마을에 있는 호수 곁에 있었습니다. 지금도 동네 사람들은 쌍취정이 있었던 터를 쌍취정이라고 부릅니다. 담헌 이하곤 선생의 기행문인 "남유록"에 보면 만 주의 버드나무가 있는 큰 연못가에 세워져있는 정자라고 나옵니다. 구림마을에는 만 주의 버드나무가 있을 정도로 큰 호수가 없습니다. 구림10경 중에 "쌍와촌"이라는 이름이 나오는데, 이 쌍와정을 쌍취정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모정마을에서는 이 쌍취정을 복원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호수가에 버드나무도 심고, 연도 식재해서 수변생태 공원을 만들 계획이지요. 현재도 쌍취정이 있던 바로 곁에 원풍정이라고 하는 멋진 정자가 있습니다.

혹시 모정마을 원풍정에 오실 계획이 있으시면 저에게 연락주십시요. 제가 자세히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제 홈페이지는 월인당 www.moonprint.co.kr 입니다.

(2009-06-18 20:34:02)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1)
최근인기기사
1
특정나주시장후보 박근혜 정부 부역논란
2
나주지역 특정 조합장 아들 '아빠 찬스' 논란 가중
3
이게 공정을 담보한 나주시장 선거냐?
4
나주시 인사발령 2022. 1. 7.자
5
2022년 나주투데이 이철웅 편집국장 신년사
6
나주시의회 인사권 독립, 올해부터 본격 시행
7
성북동 쌈지공원 웬 율정정?
8
분란 끝나지 않은 나주배원협
9
나주시, 29일 청사 건물 임시 폐쇄…청내 직원 코로나 확진
10
‘입시 돌풍’ 한국에너지공대⋯정시 경쟁률 95.3대 1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이메일무단수집거부청소년보호정책
전남 나주시 예향로 3803 (이창동) 2층 나주투데이  |  대표전화 : 061)334-1102~3  |  팩스 : 061)334-1104
등록번호 : 전남 다00334   |  발행인 : 윤창화  |  편집인 : 이철웅  |  e-mail : njt2001@hanmail.net
Copyright © 2013 나주투데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