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숙

모래든 열매든 태초에는
바위처럼 단단한 고집과 화려한 꽃시절이 있는 법이다

그녀도 처음에는 미인대회에 나가기 위해 치장에 몰두했으리라
화무십일홍이라고 말리는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았으리라
그러다가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목마른 사람 곁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으리라
수수만의 발품이 찾아낸
작은 옹달샘이 한 방울도 새지 않도록
연인들의 키스처럼 두 손을 찰싹 붙여서
손바닥바가지를 만들었으리라
타들어가는 혀끝에 정성 한 방울씩 적시며
화려한 고집을 내려놓았을 것이다

길이 멀어질수록 더 많은 목 타는 이들을 만났으리라
그녀의 몸이 손바닥바가지에서 옹달샘이 되기까지
직선의 몸이 동그랗게 말아져서
기어이 제 온몸이 남실거리게 되기까지
육천매듭이 우두둑 물러나고
하늘이 찢기고 땅이 입을 벌리는
변태의 고통을 수억 겁 견디었으리라
그 무량한 눈물이 그녀의 단심에 고여서
세상에서 가장 달고 붉은 옹달샘이 되었으리라

모든 목숨들의 삼복갈증을 해갈시킬
옹달샘이 된 그녀를 마시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녀의 단심을 혀끝에 올려놓고
젖 빨아먹던 흡인력으로 우주의 끝까지 날려 보내는 일
답답하고 목마른 땅에 남실남실 뿌리를 내려 
명치끝이 타들어가는 또 다른 어둠을 적실
붉은 별이 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