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스(SARS :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에 감염된 뒤 항생제 치료를 거부하다 끝내 숨을 거둔 홍콩의 한 30대 어머니 이야기가 가슴을 아프게 했다. 항생제를 복용하면 26주 된 뱃속의 아기가 기형아가 될까 봐 치료를 거부했는데, 산모가 위독해지는 바람에 결국 제왕절개 수술로 세상에 나온 아기는 이미 사스에 감염되어 있던 것으로 알려져 홍콩 사람들을 더욱 슬프게 했다.

그런데 이 소식을 전한 한 신문은 「사스 임산부의 母情(모정)」이라는 제목을 다는 등 우리 신문 대부분이 이 어머니를 '임산부'라 표현해 아쉬웠다. '임산부'는 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임부와 산부'를 한꺼번에 이르는 말이기 때문이다. 임부(姙婦)는 '아이를 밴 부인'이니 '임신부'라는 뜻이고, 산부(産婦)는 산모와 같은 말.

그러니 '한 임산부'는 '임부'와 '산부', 최소 두 사람에다가 태아까지 합치면 '적어도 세 명'이 되는 것이다. 굳이 따지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임신부는 한 명, 임산부는 최소 세 명. 숫자로 기억하자. 그래서 무서운 영화에 곧잘 나오던 자화자찬성 광고 '노약자나 임산부는 조심하시라'의 '임산부' 역시 '임신부'가 옳다. 사실 '산모'들이야 영화가 아니라 무엇이든 세상에 무서울 게 있겠는가.

이처럼 아울러 쓰는 바람에 되레 헷갈리는 경우로는 '교직원'이 더 있다. '교직원'은 '교원'과 '직원'을 함께 지칭하는데, 유치원 교사나 대학교 교수가 모두 교원에 해당한다. 그러니 '부산대가 국립대 총장선거 사상 처음으로 교직원에게도 투표권을 주기로 했다'는 기사에서 '교직원'은 '직원'이라야 옳다. '교원'인 '교수'들은 이미 총장선거 투표권이 있기 때문이다.

(이진원의 '우리말에 대한 예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