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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한국전쟁과 나주양민학살 - 보도연맹원의 성분Ⅱ
따라서 해방 후 좌편에서 활동하였다고 하더라도 1947년 하반기에 남로당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은 소수를 제외하고는 평가를 달리해야 한다. 또 남로당원이라고 하더라도 1949, 50년의 시점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은 거의 다 형무소에 들어가 있었거나 산
신광재 기자   2007-06-15
[기획/연재] 한국전쟁과 나주양민학살 - 보도연맹원의 성분
전쟁 직후 저질러진 보도연맹원의 집단학살은 제주도에서 4·3항쟁과 더불어 한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민간인 대량학살이었다. 놀라운 것은 이와 같이 엄청난 참극을 가져오게 한 국민보도연맹이라는 단체가 법에 근거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국민보도
신광재 기자   2007-06-08
[기획/연재] 한국전쟁과 나주양민학살-동수동 보도연맹 사건Ⅲ
6월 29일과 30일의 치안국통첩이 문제인데, 보도연맹원 학살지시와 같은 중대한 사항이 치안국장 손에서 나왔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가장 중요한 자료는 재미동포 이도영이 미 국립문서보관서에서 찾아낸 문서이다. 이 문서를 작성한 주한미대사관 육국무관 에드
신광재 기자   2007-06-01
[기획/연재] 한국전쟁과 나주양민학살-동수동 보도연맹 사건Ⅱ
인민군이 들어와 점령한 후 보도연맹원과 인민군의 관계는 여러 가지고 나타났다. 점령지역에서 보도연맹 간부직에 있었던 사람들은 임미군측에 의하여 처단의 대상이 되었고, 보도연맹에 가입한 전 남로당원들은 정(正)당원으로 등록되지 않았다. 그 반면 보도연맹
신광재 기자   2007-05-18
[기획/연재] 한국전쟁과 나주양민학살-동수동 국민보도연맹 사건
금강 방어선이 무너지자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나주경찰서에서도 국민보도연맹워을 소집하기 시작했다. 국민보도연맹 자수기가을 정하자 제 발로 경찰서를 찾아온 사람들이 많았다.소집에 응하지 않은 보도연맹원은 경찰이 다도, 봉황, 세지, 동강, 왕곡, 공산
신광재 기자   2007-05-11
[기획/연재] 한국전쟁과 나주양민학살 - 양민학살 증언
김영태(철야뒷산 생존자, 2001년 8월 인터뷰)1951년 2월 26일 새벽 4시경에 개들이 짖어대고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가 나더니 공포탄 소리가 4군데서 나더군. 총소리가 나고 정적이 흐르더니 방송을 해. “우리는 경찰에서 나왔다. 공비가 숨어들었으
신광재 기자   2007-05-04
[기획/연재] 한국전쟁과 나주양민학살 - 봉황양민학살Ⅳ
무고한 양민 죽였다는 주민들 항의에 경찰옷 벗어곧바로 경찰청 인사카드를 찾아보았더니 '공명의'라는 이름은 없었지만 '공명희'하는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1925년생인 공명희는 1949년, 그러니깐 25살에 경찰 특공대에 입대해 전쟁 중에 순경으로 임용
신광재 기자   2007-04-27
[기획/연재] 한국전쟁과 나주양민학살 - 봉황양민학살Ⅲ
학살 당일 저녁에 비가 내려 철야 뒷산 계곡이 피로 물들었다. 많은 비가 내려 시신을 수습하는 데 유족들이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유족들이 시신을 찾으려고 3일간이나 고생했었다.”(정학균)1951년 2월 27일과 3월 2일 「전남경찰청 1일 동향보고
신광재 기자   2007-04-22
[기획/연재] 한국전쟁과 나주양민학살 - 봉황양민학살Ⅰ
철야마을은 덕룡산과 가까워 빨치산 활동이 다른 지역에 비해 활발했었고, 마을 사람들은 자의든 타의든 입산자들에게 식량과 여타 필요한 물건들을 제공해 줘야 했다. 지형적 특성상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부역할 수밨에 없는 처지였던 것이다.
신광재 기자   2007-04-13
[기획/연재] 한국전쟁과 나주양민학살 - 봉황양민학살
봉황면 철천리는 면 소재지에서 남서쪽으로 약 2㎞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유촌과 등내, 수각마을이 맞붙어 있으며, 다시 동북쪽으로 옹굴재를 넘어가면 선동마을이 있다. 이들 마을의 뒤로는 봉황의 명산인 덕룡산이 있으며, 수각에서 덕룡산의 한치재
신광재 기자   2007-04-06
[기획/연재] 한국전쟁과 나주양민학살 - 방골마을 사건
『한국경찰대 일일보고서』‘나주편’에 문평면 일대 빨치산 토벌작전이 가장 많이 눈에 띈다. 1951년 2월 1일 문평면 동원리 일심마을에 침입했던 6명의 적을 발견한 경찰이 2명을 사살하고 칼 한 자루를 노획했다는 것을 시작으로 같은 날 120명의 적이
신광재 기자   2007-03-23
[기획/연재] 한국전쟁과 나주양민학살 - 문평면 양민학살
옆집 아주머니가 해붕이 손을 잡고 저수지 아래 주막집으로 데려다 주었다. 주막집 주인은 양씨로 해붕이와 먼 친척지간이었다. 형이 밭에 있다는 것을 깜박 잊어버린 해붕이는 주막집에서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마을입구에 갔더니 사람들이
신광재 기자   2007-03-16
[기획/연재] 한국전쟁과 나주양민학살 - 문평면 극동리 동막골
1951년 윤 5월 20일 마을에 들어온 경찰특공대의 잔인한 집단학살로 인해 아버지, 어머니, 누나, 형, 동생을 잃어 일순간에 전쟁고아가 되어버린 11살짜리 꼬마가 20년 후 문평면 극동리 동막골을 찾았다. 1971년 30살이 갓 넘은 양해봉은 20
신광재 기자   2007-03-09
[기획/연재] 한국전쟁과 나주양민학살 - 양민학살 증언Ⅱ
최선진(구국연맹회원, 세지면, 1999년 1월 인터뷰)영산포 엄동 골목에서 피난을 하고 있었다. 그때 영산포 구국연맹 지소에서 나와 “국군이 세지면으로 진주하러 가니까 피난 나온 사람들은 전부 같이 들어가자”는 권장이 있어서 피난하는 세지 사람들 상당
신광재 기자   2007-03-02
[기획/연재] 한국전쟁과 나주양민학살 - 세지동창 양민학살 증언
남영규씨 증언(현장목격자, 당시 31-2세, 순천시 연향동, 1998년 12월 비디오 촬영)그때 나이가 31~32세 가량이었고 섬말에서 농사를 짓고 살았다. 그날 사랑방에 있었는데 군인들이 온 동네를 포위한 뒤 총대로 창호지를 찌르고 문을 열더니 “동
신광재 기자   2007-02-23
[기획/연재] 한국전쟁과 나주양민학살 - 세지동창 양민학살Ⅶ
5중대 중대장 권준옥 대위는 만주 연길에서 태어나 충청남도 서산에 살았다. 1950년 1월 5일 중위계급으로 5중대장에 임명되었으며, 1950년 10월 24일 대위로 승진하였다. 1951년 1월 23일 세지 동창교 양민학살을 저지르고 3일 뒤, 무슨
신광재 기자   2007-02-09
[기획/연재] 한국전쟁과 나주양민학살 - 세지동창 양민학살Ⅵ
국군은 동창 주민을 왜 학살했을까? 동창양민학살추진위원회와 유족회, 그리고 이곳 주민들은 지금까지도 정확한 학살동기를 알지 못하고 있다. 진실과 화해 과거사진상조사위원회에서도 이 사건을 한창 조사하고 있지만 정확한 학살동기를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당
신광재 기자   2007-02-02
[기획/연재] 한국전쟁과 나주양민학살 - 세지동창 양민학살Ⅴ
2-3줄로 열을 세우고 뒤를 돌아보게 한 5중대는 도망치지 못하게 주민들을 빙 둘러쌓다. 그리고 곧바로 권준옥 중대장은 주민들을 향해 사격 명령을 내렸다. “놈들은 공산도배들이니 전부 사살하라.” 처음 사격이 가해졌을 때 1/3정도 밖에 죽지 않았다.
신광재 기자   2007-01-26
[기획/연재] 한국전쟁과 나주양민학살 - 세지동창 양민학살Ⅳ
마을 입구에서 몇 발의 공포탄을 쏘며 5중대가 들어왔다. 함께 따라온 지역유지와 경찰, 주민들은 동창 입구에서 민간인을 이유 없이 죽이는 광경을 지켜본 뒤라 벌벌 떨고 있었다. 순진한 동창 주민들은 마을로 국군이 들어오자 먹을 음식을 가지고 면사무소
신광재 기자   2007-01-19
[기획/연재] 한국전쟁과 나주양민학살 - 세지동창 양민학살Ⅲ
동창소재지에 도착하기 전에서부터 민간인 학살이 시작되었다. 군인들은 영산포에서 세지로 가는 도중에 월대마을 길거리에서 만난 민간인을 이유없이 죽이기 시작하였다. “동창소재지에서 1km 못된 지점인 월대 마을에서 지나가는 민간인 1명을 사살하고 나서 5
신광재 기자   2007-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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