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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가슴 후련한 청량감을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닉네임 : 전두환  2021-11-24 21:07:43   조회: 37   
1987.6.29.



[ .... '민의를 충심으로 수렴한 구국의 대결단이다.' .......


..... 온 국민은 가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찬사와 환영의 말들을 아끼지 않았다. ........ ]



1987.6.29. 경향신문


'구국충정'에 박수와 환호


민족사에 길이 빛날 새 지평


최고의 낭보 ... 주가껑충 증권가
'화합의 계기' 밝은 표정 종교가 학원가
일손 놓고 웃음 활짝 직장



노 민정대표 6.29선언 각계표정


'민의를 충심으로 수렴한 구국의 대결단이다.'

월요일 아침 노태우 민정당 대표위원의 충격적인 구상이 전해지자 온 국민은 가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찬사와 환영의 말들을 아끼지 않았다.

'온 국민이 그토록 갈구했던 민주화가 이루어지는 순간입니다.'

지난주말까지도 최루가스 자욱한 거리를 암울하게 지켜 보았던 직당인 상인 등 대부분의 서울시민이 입을 모았다.

'어제까지 적대시했던 여야 대학생 전경을 포함, 모든 국민이 함께 승리한 것입니다.'



방학중이지만 하오에 예정된 교내집회를 위해 학교에 나와 있던 대학생들도 이 결단을 흔쾌히 받아 들였다. 민권의 승리요, 패자가 없는 결과이어서 국민대화합의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전국에서 기도회와 농성 등으로 밤잠을 설친 종교인들도 밝고 감사하는 표정들이었다. 이날의 대결단은 경제계와 증권가에도 최고의 낭보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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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대중 ... '인간에 대한 신뢰감 같은 것이 번뜩 떠올랐다'며 감회어린 표정을 .......


..... 김영삼 ... 야권의 주장이 1백 20% 수용됐다 .... 눈시울을 적시면서 ....... ]




1987.6.30. 매일경제


노대표 특별선언의 파장 기자방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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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감 떠 올랐다.


- 김대중 민추협 공동의장은 TV를 지켜 본 뒤 '인간에 대한 신뢰감 같은 것이 번뜩 떠올랐다'며 감회어린 표정을 짓기도 했지요.


김영삼 민주당 총재는 야권의 주장이 1백 20% 수용됐다면서 '이렇게 온국민이 기뻐하는 일을 왜 이제서야 하느냐'며 눈시울을 적시면서 기자들에게 말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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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바람" 토론도 열기


대학 거리 유흥업소 등 웃음꽃 만발

'오늘은 기쁜 날' 차값 무료 서비스도



민정당 노태우 대표위원의 시국수습방안이 발표된 29일 하오부터 전국 거리의 표정이 달라졌다.

대학가는 예정됐던 10개 대학의 교내집회가 취소돼 6.10 대회 이후 19일만에 시위 없는 평온한 분위기를 되찾았다.


거리 곳곳에서는 도심풍경의 한부분이 됐던 전경들의 모습도 사라졌고 일부 건물밖에는 '결단을 환영한다'는 플래카드가 내걸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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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창동에서 3년동안 포장마차를 해왔다는 유만규씨...는 '평소에는 밤 10시가 돼야 하나둘씩 술집에 나타나곤 했으나 오늘은 퇴근시간 무렵부터 평소보다 2-3배나 많은 손님들로 북적인다'며 즐거운 표정이었다.


서울 중구 태평로 2가 33 플라자 호텔 뒷골목 가화 코피숍...에는 이날 하오 2시부터 입구옆 유리창에 '오늘은 기쁜 날 차값은 무료입니다'라고 써 붙인 뒤 차를 무료로 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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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6.30. 경향신문






[ ..... '오늘 커피값은 무료' ......

..... '대한민국 만세 오늘 소주 무료' ....... ]



1987.6.30.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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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시내 일부 다방에서는 '오늘 커피값은 무료'라는 포스터를 내 건채 커피를 무료로 제공했으며 여의도 종합상가 일명 '먹자 빌딩' 2층의 한 술집은 '대한민국 만세 오늘 소주 무료'라는 벽보를 대로변 창에 붙여 놓아 눈길을 끌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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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9 선언 뒤의 대학가

'이것은 한국판 민주장전 ...' 환호



시국 대자보 말끔히... " '민주맥주' 마시러 가자"
달라진 얼굴들 .... '과격의 눈빛' 대신 '낭만의 숨결' 충만




29일 상오 11시 연세대 도서관 앞. 50여명의 학생들이 대자보판에 나붙은 신문호외를 읽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한 학생이 믿어지지 않는다는듯 대자보판앞으로 한발 다가섰다.
'뒤에서는 보이지 않으니 앞 사람이 큰 소리로 읽읍시다'
'첫째로 여야 합의 아래 조속히 대통령직선개헌을 하고 ... 모든 시국사범도 석방되어야 ... 언론자유의 창달을 위해 관련제도와 관행을 획기적으로 개선 ...'


선언문을 읽어 내려가는 소리와 함께 학생들 사이에서는 탄성이 쏟아졌다.


'이것은 한국판 민주장전입니다. 자욱한 최루가스 속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민주화'를 외쳤던 시민 학생의 승리이며 국민의 뜻을 전폭적으로 수용한 정부의 승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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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날 하오 2시 고려대 정경관 3층 서진영 교수(정외과) 연구실에는 최장집 교수 최상룔 교수 등이 모여 '대학자율화'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으며 대학원생들과 학부생들도 환한 표정으로 이야기 꽃을 피웠다.


평소 20여개 이상의 대자보가 목소리를 드높이던 서울대는 이날 '6.26 대행진'과 관련된 대자보만이 3-4개 붙어 있었고 하오부터 소식을 듣고 학교로 모여든 학생들은 도서관,학생회관,잔디밭 등에서 시국에 대한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학생운동을 이끌어 온 각대학총학생회도 "방학중의 투쟁방향'의 준비를 서두르다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라며 갑자기 분주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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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일부 '민민투' 계열의 '제헌의회 소집파'에서는 '독재타도투쟁의 열기가 고양되어 가는 마당에 서울지역대학생대표자협의회에서 직선제투쟁으로 이끈것은 판단미스'라며 '개량주의자들과의 타협적자세를 버리고 혁명으로 민중민주주의공화국을 이룩하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지만 눈앞에 닥친 '민주의 새벽'을 축하하기 위해 대학가주점으로 모여 들어 '민주맥주'와 '민주골뱅이'를 찾는 대학생들의 모습에는 '혁명의 불꽃' 보다는 '낭만의 숨결'이 더욱 넓게 번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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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6.30. 경향신문







1987.6.29. 경향신문 사설



헌정사에 '큰획' 긋다

- 국민대화합을 위한 노대표의 대결단 -




한 민족의 위대성은 위난의 시기에 이를 어떻게 극복,해결하고 새 모습을 보여 주느냐에 있다. 개헌문제를 둘러싸고 국민 여론의 분열과 정파간의 싸움을 빚었던 난국은 노태우 민정당 대표의 단안에 따라 이제 사실상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되었다. 노대표는 29일 발표를 통해 대통령직선제를 수용, 88년 2월 평화적 정부이양을 단행하고 언기법을 폐지 또는 개편하여 자유언론을 구현시키며 사면복권을 단행하여 정치적 평화를 구축시키는 한편 일체의 간섭적인 정치제도를 개폐시킨다는 집권여당의 대구상을 국민앞에 내놓았다.


이제 갈등의 시대는 끝나고 국민대화합을 바탕으로 한 대도가 우리앞에 열리게 되었으며 한국민의 저력을 다시 한번 과시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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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야말로 대전환이요, 대타협의 시발 .......


..... 이 나라를 짓눌러온 정치적하중을 한꺼번에 벗어던지는 그런 대담한 조치 ....... ]



1987.6.29. 동아일보 사설



민주화를 향한 대결단


- 노태우 구상을 대타협의 결정적계기로 삼아야 -




드디어 민주화의 문을 여는 대결단이 내려졌다. 그것은 집권당 스스로가 역사와 국민앞에 '대화합과 위대한 국가로의 전진'을 다짐하면서 내린 결단인 것이다.

그야말로 대전환이요, 대타협의 시발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80년 이래 이 나라를 짓눌러온 정치적하중을 한꺼번에 벗어던지는 그런 대담한 조치라는 말이다.

6.10 사태 이후 진통을 거듭해온 시국이 이 날을 고비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 들었다. 집권당이 드디어 민의의 흐름과 요구에 겸허하게 화답으로써 이 나라가 민주발전의 길로 갈 수 있는 대방략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사실 29일 발표된 노태우 민정당 대표의 특별선언은 의외로 대담하고 광범위한 내용을 담고 있다. 집권당의 차기대통령후보이기도 한 그는 '조속히 대통령직선제개헌을 하고 새 헌법에 의한 대통령선거를 통해 88년 2월 평화적 정부이양을 실현하겠다'고 다짐했다. 그가 간선제의 미련을 버리고 대통령 직선제를 받아 들인 것은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한 것임을 간파하고 나라의 주인인 국민의 뜻에 따르기로 한 때문이라고 한다.



이 특별선언은 국민적화해와 대단결을 위해 김대중씨가 사면복권되어야 하며 모든 시국관련사범도 석방되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혔다. 또 노태우씨는 이 선언에서 국민의 기본권신장을 위해 구속적부심을 전면확대하며 언론자유를 위해 언기법폐지 등을 다짐, '정부는 언론을 장악하려고 시도해서도 안되며 국가안보를 저해하지 않는 한 언론은 제약받아서는 안된다'고 선언했다.

이밖에 사회 각부분의 자치와 자율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지방자치의 실시와 대학의 자율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지적하는 등 국정전반에 걸친 쇄신방안도 아울러 제시했다.



우리는 대통령이 빠른 시일안에 '노 구상'을 수용하고 본격협상의 정지작업을 보태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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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노대표의 이번 구상은 이 나라를 어둡게 했고 국민의 가슴에 응어리를 남겼던 먹구름을 걷히게 하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본다.


한결같이 민주화를 위한 결단을 촉구해 온 민주당 등 야당과 재야세력도 이 결단을 바탕으로 대타협의 현실적방안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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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들은 아마도 1987년 6월 29일의 그 가슴 후련한 청량감을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


..... 정치가 국민을 이토록 즐겁고 신나게 만들어 주는 때도 다 있다니 눈물이 날 지경이다. ........


..... 얼마나 신바람이 났으면 술집마다 축배드는 시민들로 넘쳐 흐르고 커피값 택시값까지 안받았을까. ........ ]



1987.6.30. 동아일보 사설



출발선에 다시 서서


- 우리모두 제2건국의 아버지가 되자 -




파국 직전의 극적인 대전환이라 충격은 더욱 신선했다. 사람들은 아마도 1987년 6월 29일의 그 가슴 후련한 청량감을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한국 정치의 모든 비정상을 한꺼번에 정상으로 되돌려 놓으려는 듯한 노태우 민정당 대표위원의 '6.29 특별선언'은 당장 거리 모습부터 거짓말처럼 바꿔 놓았다. 하고 한 날 쏘고 던지는 최루가스와 돌멩이로 영일이 없던 그 거리에는 핏발선 시위대와 '을지문덕' 군상들 대신 희망과 활기로 넘쳐 흐른다.


우리는 지난해 가을 '아시아' 경기대회 때 정치에도 스포츠처럼 신나는 일이 없겠는가고 본란을 통해 간절히 소망해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지금 뜻밖에도 그 꿈이 현실화 되고 있지 않는가. 도저히 가망이라고는 없어 보이던 우리의 정치가 국민을 이토록 즐겁고 신나게 만들어 주는 때도 다 있다니 눈물이 날 지경이다.


이 나라 국민들은 또 얼마나 순수한가. 또 얼마나 위대한가. 대단한 국민들이 아닌가. 얼마나 신바람이 났으면 술집마다 축배드는 시민들로 넘쳐 흐르고 커피값 택시값까지 안받았을까. 이토록 모두가 즐거워 하는 일이 왜 이제야 찾아 오는지 모르겠다.


해외로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찬사도 듣기에 나쁘지 않다. 세계의 언론들이 다투어 놀라움을 표시하고, 미국의 '슐츠' 국무장관은 한국에 경제기적처럼 정치기적도 이룩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젠 얼굴을 들고 살게 되었다'는 해외동포의 말에서도 우리는 더이상 국제적인 웃음거리의 대상이 아님을 확인한다. 참으로 살맛나는 오늘이 아닌가.


이제는 선거도 있고 올림픽도 있게 되지 않았는가. 아무도 더 이상 불행해지지 않고 모두가 명예롭게 승리자가 될 수 있는, 그럼으로써 한단계 성숙을 향해 비약하는 그런 국민적대화합의 일대전기는 이제 일단 그리고 분명히 마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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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요일 아침의 충격' '어려운 결단' ... '고독한 선택' '폭탄선언' '대화합의 길' '이 시대의 가장 희망찬 발표' '비장한 결심' '모든 것 걸고 모든 것 풀었다' ....... ]


[ ..... 대통령도 거의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 ]




1987.6.30. 동아일보



민의 실은 정치만개

6.29 '노대표선언' ... 숨가쁜 정국



정치부기자 좌담



- 민정당 노태우 대표위원의 29일 특별선언은 나라 안팍을 뒤흔든 '빅뉴스'였읍니다. 여에도 야에도 엄청난 충격이었고 심지어 '정치혁명'이라는 얘기들이 서슴 없이 나오기도 했지요.


- 신문들도 '월요일 아침의 충격' '어려운 결단' '훌륭한 결정' '고독한 선택' '폭탄선언' '대화합의 길' '이 시대의 가장 희망찬 발표' '비장한 결심' '모든 것 걸고 모든 것 풀었다'는 큰 제목들로 찬사를 아끼지 않았읍니다.


- 그도 그럴것이 우리 정치사상 집권세력의 제2인자인 위치에서 그만큼 과감한 민주화의지를 그처럼 극적인 방법으로 밝힌 일은 일찌기 없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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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고 노 대표가 전 대통령의 '감'을 전혀 도외시할 수는 없었지 않겠읍니까.


- 물론이지요. 노대표 자신은 이 문제에 대해 29일 낮 현충사에서 '최근 대통령을 만나 본 측근 인사들을 나도 많이 만나 보았다. 그 과정에서 대통령도 거의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하더군요.


- 실제로 어느 여권의 고위인사는 '6.10' 사태후 대통령으로부터 '직선제도 한번 해 볼만 한 것 아니냐'는 얘기를 들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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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6.30. 김영삼 민주당 총재



[ ..... 보복 없는 정치와 피와 눈물이 없는 민주화를 ......


..... 전두환 대통령과 노태우 대표위원 및 김대중 씨와 나를 포함한 4자회담에서나 또는 재야대표도 ....... ]



1987.6.30. 동아일보



민주화 공동선언을 통해 '국민 화해의 날' 마련하자


김영삼 총재 촉구




민주당의 김영삼 총재는 30일 '민주화 공동선언을 통해 온 국민이 화해할 수 있는 '국민화해의 날'을 조속히 마련하자'고 정부여당에 촉구했다.


김총재는 '민주화를 공동으로 선언, 보복 없는 정치와 피와 눈물이 없는 민주화를 이룩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 이 선언은 전두환 대통령과 노태우 대표위원 및 김대중 씨와 나를 포함한 4자회담에서나 또는 재야대표도 참석하는 자리가 좋을 것'이라고 말해 민정 민주당간의 4자회담의 의사를 시사했다.








1987.7.1. 경향



국민감격 또 한번

대통령 담화에 시민 환영 박수



노태우 대표의 민주화제의로 감격과 흥분을 맛 보았던 시민들은 1일 상오 전두환 대통령의 담화가 나오자 민주화가 현실화 했다는 안도감과 함께 환영일색의 분위기였다.


이날 상오 각직장과 관공서 상가 등에서는 예고된 10시가 되자 일제히 일손을 놓고 TV에 모여 있다가 대통령의 담화를 들으면서 박수로 환영의 뜻을 표했다.


서울 세운상가에서 전파상을 하는 김종석 씨(39)는 일띠 감치 TV를 길가에 내놓고 행인들이 보도록 한 후 '이제는 한가닥의 의심이나 불안감도 없이 민주화가 이루어지게 됐다'며 TV 앞에 모여 있던 행인들과 함께 손뼉을 치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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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7.1.


[ ..... 사람들이 갑자기 시인이 되고 경건해졌다. ....... ]



[ ..... 발표를 듣는 순간 '인간에 대한 신뢰랄까 하는 게 번뜩 떠 올랐고 .... 김대중 씨 ......

..... 감격에 눈시울을 적신 김영삼 씨 ....... ]



[ ..... 정치모범국으로 세계사에 부각되는 또 하나의 신화를 창조해 갑시다 ....... ]



1987.7.1. 동아일보



정치기적은 신뢰가 만든다


김진현 칼럼




서로 얼굴 붉히고 적대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시인이 되고 경건해졌다.


꼭 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서 반쯤 따온듯 한 말. '하늘을 쳐다보고 부끄러움 없는 정치를 해야 한다는 소신'에서 만들었다는 노태우 선언이 나라 안팎을 덮었다. 사실은 하느님을 믿기보다 인간을 믿는 것이 얼마나 더 힘이 있는 것인가를 느끼게 만드는 화답이 나왔다. 그 발표를 듣는 순간 '인간에 대한 신뢰랄까 하는 게 번뜩 떠 올랐고 독재를 하고 억압 조치를 한 사람들도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데 대해 '신선한 느낌'이 들었다는 김대중 씨의 인간적인 깊은 긍정, 제1야당 총재로서 너무 극적인 태도일 수 있는 감격에 눈시울을 적신 김영삼 씨의 발가벗은 첫 반응.


'그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시작이 이루어졌고 이를 살려 나가고 있다. 인간사에는 간만이 있으니 호기를 타라는 셰익스피어의 말을 알고 있을 것이다'라고 남의 나라 일에 기분 좋게 흥분한 , 4일전에 서울을 다녀간 '워싱턴'의 '개스턴 시거'의 만족.


그리고 1987년 7월 1일 '노태우 구상'을 전면 수용하고 '이제 우리 모두 우리나라가 단순한 경제모범국이 아니라 정치모범국으로 세계사에 부각되는 또 하나의 신화를 창조해 갑시다' 하는 전 대통령의 웅변.


6월 10일에서 26일까지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기적, 85년 8월 학원안정법파동 이후로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기적, 어쩌면 유신 이후 관성이 돼버린 그런 사고로서는 믿기지 않는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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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7.1. 동아일보 사설



[ ...... 그의 단임의지가 결코 과소평가 되어서는 안된다 ........

...... 오늘날 민주화의 계기를 마련한 것도 그의 단임정신에 바탕을 ......... ]



[ ...... '단임과 민주화'라는 두개의 벅찬 정치적과제를 일시에 해결하려 한다면 더 바랄 게 무엇이겠는가. ........ ]




1987.7.1. 동아일보


사설


민주화의 출발점에 서서

- 광주사태의 응어리를 풀어 대화해의 길로 -



1


우리는 지금 대전환을 앞둔 과도기에 살고 있다. 국민과 정부를 다함께 신음케 했던 고통의 늪에서 벗어나 정의로운 민주사회의 건설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 딛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29일에 발표된 노태우 민정당 대표의 특별담화는 이제 이 나라가 민주화의 길로 들어섰음을 실감시켜 주기에 충분하다.



노 대표의 극적인 선언이 있은지 사흘만에 발표된 전 대통령의 특별담화는 한 마디로 '6.29 구상'의 전폭적인 수용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전 대통령은 1일 담화에서 '노 대표가 밝힌 그 내용이 본인의 생각과 전적으로 합치될 뿐만 아니라 국민간에 대타협과 대화합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대통령은 이어 '민주주의는 이성과 자제를 통한 점진적인 개혁의 과정이지 일시에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변칙이나 혁명이 아니다'고 강조하고 자신은 7개월 후 청와대를 떠나 초야로 돌아가게 될 것임을 상기시키면서 '내 뒤에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진짜 민주주의를 꽃 피우고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 이 국력과 국민적 저력을 바탕으로 통일성업을 성취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전 대통령의 이 같은 결의에 찬 담화 내용을 들으면서 우리는 그의 단임의지가 결코 과소평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느낀다. 따지고 보면 오늘날 민주화의 계기를 마련한 것도 그의 단임정신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믿어지기 때문이다.



사실 민주화란 '쟁취'와 '허여'의 측면이 있으며 이 양자가 적절하게 조화될 때 앞 당겨질 수 있다. 민주화라는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밤새 천둥이 울고 가으내 무서리가 그리 내린 것인지도 모른다. 그 동안 수 많은 학생과 시민 등 민주인사의 희생과 용기 있는 투쟁의 힘이 한 데 뭉쳐 여기까지 밀고 온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또 민의의 흐름을 겸허하게 받아 들여 민주화를 '허여'키로 한 집권층의 결단도 결코 가볍게 보아 넘길 수는 없다.



다만 지금까지 전 대통령의 단임정신이 응분의 평가를 못 받은 것은 '민주화는 외면하고 단임만 실천'하려는게 아닌지 의구심을 떨쳐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 잔여임기를 7개월 앞 두고 '단임과 민주화'라는 두개의 벅찬 정치적과제를 일시에 해결하려 한다면 더 바랄 게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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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9 선언


저자: 노태우


위키백과 문서

1987년 6월 항쟁 직후인 6월 29일, 민주정의당 대표이자 대통령 후보자인 노태우가 직선제 개헌 요구를 받아들여 발표한 특별 선언.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오늘 저는 각계각층이 서로 사랑하고 화합하여 이 나라의 국민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정부 역시 국민들로부터 슬기와 용기와 진정한 힘을 얻을 수 있는 위대한 조국을 건설하기 위해 비장한 각오로 역사와 국민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저의 구상을 주저없이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구상은 대통령각하께 건의를 드릴 작정이며, 당원동지, 그리고 국민여러분의 뜨거운 뒷받침을 받아 구체적으로 실현시킬 결심입니다.



첫째, 여야 합의하에 조속히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하고 새 헌법에 의한 대통령선거를 통해 88년 2월 평화적 정부이양을 실현토록 해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이 시점에서 저는, 사회적 혼란을 극복하고, 국민적 화해를 이룩하기 위하여서는, 대통령직선제를 택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국민은 나라의 주인이며, 국민의 뜻은 모든 것에 우선하는 것입니다.


둘째, 직선제 개헌이라는 제도의 변경 뿐만 아니라, 이의 민주적 실천을 위하여는 자유로운 출마와 공정한 경쟁이 보장되어 국민의 올바른 심판을 받을 수 있는 내용으로 대통령선거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또한 새로운 법에 따라, 선거운동 투개표과정 등에 있어서 최대한의 공명정대한 선거관리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세째, 우리 정치권은 물론 모든 분야에 있어서의 반목과 대결이 과감히 제거되어 국민적 화해와 단결을 도모하여야 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저는 그 과거가 어떠하였든 간에 김대중씨도 사면복권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우리와 우리들 자손의 존립기반인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를 부인한 반국가사범이나 살상 방화파괴 등으로 국기를 흔들었던 극소수를 제외한 모든 시국관련 사범들도 석방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들도 민주시민사회의 일원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넷째, 인간의 존엄성은 더욱 존중되어야 하며 국민 개개인의 기본적 인권은 최대한 신장되어야 합니다. 이번의 개헌에는 민정당이 주장한 구속적부심 전면확대 등 기본권 강화조항이 모두 포함되기를 기대합니다. 또한 정부는 인권침해사례가 없도록 특별히 유의하여야 하며, 민정당은 변호사회 등 인권단체와의 정기적 회합을 통하여 인권침해 사례의 즉각적 시정과 제도적 개선을 촉구하는 등 실질적 효과거양에 주력하여야 할 것입니다.


다섯째, 언론자유의 창달을 위해 관련제도와 관행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합니다. 아무리 그 의도가 좋더라도, 언론인 대부분의 비판의 표적이 되어온 언론기본법은 시급히 대폭 개정되거나 폐지하여 다른 법률로 대체되어야 할 것입니다. 지방주재 기자를 부활시키고 프레스카드 제도를 폐지하며 지면의 증면 등 언론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여야 합니다. 정부는 언론을 장악할 수도 없고 장악하려고 시도하여서도 아니됩니다. 국가안전보장을 저해하지 않는 한 언론은 제약받아서는 아니됩니다. 언론을 심판할 수 있는 것은 독립된 사법부와 개개인의 국민임을 다시 한번 상기합니다.


여섯째, 사회 각 부문의 자치와 자율은 최대한 보장되어야 합니다. 각 부문별로 자치와 자율의 확대는 다양하고 균형있는 사회발전을 이룩하여 국가발전을 이룩하여 국가발전의 원동력이 된다고 믿습니다. 개헌절차에도 불구하고 지방의회 구성은 예정대로 순조롭게 진행되어야 하고 시 도 단위 지방의회 구성도 곧이어 구체적으로 검토, 추진하여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학문의 전당인 대학의 자율화와 교육자치도 조속히 실현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대학의 인사,예산,행정에 대한 자율성을 보장하고 입시,졸업제도도 그와 같은 방향으로 개선해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우수한 많은 학생들이 학비조달에 큰 어려움이 없도록 관련제도를 보완하고 예산에 반영하여야 할 것입니다.


일곱째, 정당의 건전한 활동이 보장되는 가운데 대화와 타협의 정치풍토가 조속히 마련되어야 합니다. 정당은 국리민복을 위하여 책임있는 주장이나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형성하고 결집하는 민주적 조직체이어야 합니다. 정당이 이러한 목적에 위배되지 않는 건전한 활동을 하는 한, 국가는 이를 보호하고 육성하는 데 진력하여야 할 것입니다.


여덟째, 밝고 맑은 사회건설을 위하여 과감한 사회정화 조치를 강구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모든 시민이 안심하고 행복한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폭력배를 소탕하고 강도절도 사범을 철저히 단속하는 등 민생활 침해사범을 척결하고 우리사회에 잔존하는 고질적인 비리와 모순을 과감히 시정해 나가야 합니다. 근거 없는 유언비어가 추방되고 「지역감정」이나 「흑백논리」와 같은 단어들이 영원히 사라져 서로 신뢰하고 사랑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온 국민이 안정된 사회환경 속에 안심하면서 자부심을 가지고 활기찬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사항들이 오늘의 난국을 타개하고 위대한 국가로의 전진을 위한 시급한 당면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국민 여러분!


역사의 단절이 아니라 지속적 발전을 바라는 여러분의 기대를 등에 업고 역사와 국민을 두려워하는 겸허한 마음으로 오늘 저는 이 제안을 감히 하는 바입니다.


저는 우국충정에서 나온 이 구상이 대통령 각하와 민주정의당 전 당원은 물론이고 국민 모두의 성원으로 꽃피울 수 있게 되리라 확신합니다. 저의 이 기본구상이 받아들여진 경우에는 앞으로 이에 따라 세부 추가사항들이 추진될 것입니다.


만의 일이라도 위의 제안이 관철되지 아니할 경우, 저는 민정당 대통령후보와 당대표 위원직을 포함한 모든 공직에서 사퇴할 것임을 아울러 분명히 밝혀두는 바입니다.


https://ko.wikisource.org/wiki/6%C2%B729_%EC%84%A0%EC%96%B8







1987.7.1.



전두환대통령 특별담화 발표, 노태우 대표 시국수습안 전폭 수용


앵커: 강성구 기사입력 1987-07-01





- 전두환 대통령 특별담화


[전두환 대통령 특별담화 발표,노태우 대표 시국수습안 전폭수용]



● 앵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참으로 혼란스러웠던 괴로움의 긴 터널 속에서 갈피를 못 잡았던 6월의 달력 장을 미련 없이 쭉 찢어버리고 밝고 뜨겁고 건강한 태양의 달 7월로 들어섰습니다.

7월의 정직한 태양은 그동안 굳게 닫혀졌던 모든 창을 활짝 열게 하고 익어가는 청포도의 싱그러움처럼 이쪽저쪽 모두의 뜨거운 희망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1987년 07월 01일 수요일 MBC뉴스데스크 지금부터 진행해 드리겠습니다.


전두환 대통령은 오늘 오전 시국수습에 관한 특별담화를 통해서 노태우 민정당대표위원이 건의한 시국수습방안을 전폭적으로 수용해서 여야가 직선제 개헌안에 합의하는 새 헌법에 따라서 임기 중에 대통령 선거를 실시하고 대폭적인 사면복권과 구속자 석방을 단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먼저 전두환 대통령의 특별담화내용을 직접 들어보시도록 하겠습니다.



● 전두환 대통령 :



국민 여러분


본인은 오늘 그동안 국민 여러분께서 크게 걱정해 오신 작금의 시국상황에 대해 깊은 책임을 느끼면서 역사적 전환기에서 우리 모두가 나라의 앞날을 새롭게 개척해 나갈 길을 밝히고자 합니다.


근자의 계속된 시위 사태과 헌법문제를 둘러싼 갈등으로 사회의 안정과 국민의 화합이 흐트러져서 국민 여러분께서는 큰 불편과 불안을 겪었었고 이대로 가다가는 큰 파탄이 오지 않겠는가, 그렇게 되면 나라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우려도 하셨을 것입니다.


본인은 그러한 상황에서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나라와 민족의 오늘과 내일을 위해 올바른 길인가를 두고 잠을 설쳐가며 심사숙고 해 왔습니다.


지금이야 말로 우리역사의 방향을 갈음하는 실로 중차대한 시국이며 일체의 개인적 이해관계와 당리당략의 차원을 떠나 국가와 민족의 차원에서 나라의 오늘과 내일을 생각해야 할 시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본인은 최근 전직 대통령을 비롯한 국가원로와 정당의 대표 그리고 종교계와 언론계 등 각계 지도자들을 만나 기탄 없는 의견교환을 통해서 광범위하게 국민의 뜻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러던 차에 여러분께서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어제 민주정의당에 노태우 대표위원으로부터 시국수습에 관한 건의를 받았습니다.


본인은 노태우 대표위원의 제안에 담긴 굳은 의지와 나라와 겨레를 생각하는 그 깊은 충정을 절감하면서 그 내용이 본인의 생각과 전적으로 합치될 뿐 아니라 국민 간에 대타협과 대화합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에 본인은 노태우 민정당대표위원이 건의한 내용을 전폭적으로 수용해서 획기적인 민주발전국민화합조치를 취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본인은 여야가 조속한 시일 내에 대통령직선제에 합의해서 개헌이 확정되면 임기 중에 새로운 헌법에 따라서 제13대 대통령선거를 실시하고 88년 6월 25일 후임대통령에게 평화적으로 정부를 이양할 것을 천명 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국민간의 반목과 대립을 해소하고 국민적 화해와 단합을 위해서 대폭적인 사면복권을 단행하고 시국과 관련되어 구속된 사람들은 소수 극렬사범을 제외하고는 전원 석방할 것입니다.


본인은 이밖에 노태우 민정당대표위원의 모든 건의내용을 포함하여 민주발전과 국민화합 그리고 농민과 근로자를 포함한 모든 국민생활의 안정에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내각에 지시하였음을 밝히는 바입니다.



국민 여러분


누차 강조해온 바와 같이 우리나라 민주발전의 핵심은 대통령이 헌법에 명시된 임기 만료일에 후임자에게 평화적으로 정부를 이양하고 국민의 축복 속에서 물러가는 전통을 세우는 데에 있습니다.


본인은 우리나라 40년 정치사의 비원인 이 평화적 정부이양의 전통을 본인의 수범을 통해서 이 땅에 확립하려는 결심을 시종일관 견지해 왔으며 또 항상 그러한 차원에서 모든 국정을 운영해 왔습니다.


돌이켜 보면, 나의 이 간절한 소망과 국민 여러분의 염원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최근에 시국이 보여준 바와 같이 적지 않은 갈등과 진통을 겪어온 것도 사실입니다.


지난 4월 13일 본인이 소모적인 개혁논의를 일단 멈추고 현행헌법에 따른 평화적 정부이양추진을 밝힌 것에 대해서 원래의 의도와 다른 오해와 반대가 많았음을 본인은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시 임기가 10개월 정도밖에 남아있지 않은 시점에서 여야 간의 합의개헌의 노력이 전혀 진전이 없고 타결의 가망도 없는 상황이었으므로 본인의 갈림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빨리 그 준비 작업을 진행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그러한 조치를 취했던 것입니다.



지난번 국정연설에서도 밝힌 바 있습니다마는 헌법의 권력구조문제나 대통령의 선출방식이 바로 민주주의의 내용을 결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본인이 그동안 대통령직선제를 선뜻 받아드릴 수 없었던 것은 이 제도의 수반될지도 모를 각종 폐해에 대한 걱정이 앞섰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결코 어느 제도가 특정정파에 유리하고 불리하다는 당파적인 입장이 아니라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 과연 어느 것이 소망스러우냐 하는 진지한 고려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지난 날 우리가 겪었던 대통령 직선제는 일인 장기집권으로 이어졌고 선거과정에서 지역감정을 조장해서 지역간 국민간의 심각한 대립과 사회적 혼란을 가져왔으며 과열선거와 선동정치 그리고 그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파행의 악순환을 빚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제도의 장단점이 어떠하다는 것에 앞서 여야를 떠나 대통령을 내손으로 뽑아야겠다는 국민들의 열망이 매우 크다는 점을 나는 직시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국민이 원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비록 걱정스러운 점이 있는 제도라도 국민이 원하면 일단 받아들여 잘 되도록 하는 것이 정치의 대도라고 본인은 확신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특히 야당으로부터 한 치의 양보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진정한 민주발전과 국민화합을 위해서는 역사를 책임지고 있는 여당이 구국차원에서 포용적 자세를 실천해서 우리정치에 큰 매듭을 풀어야 한다고 본인은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국민 여러분


우리가 함께 생각해야 할 것은 그동안 이룩된 성장의 결실이 너무나 크고 우리가 크고 있는 발전의 전기가 너무나 소중하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지속적인 경제발전과 평화적인 정부이양 그리고 민족번영의 호기가 되는 88 서울올림픽만큼은 기필코 성공적으로 수행해서 나라를 선진국의 궤도에 올려놓아야겠다는 것이 나만이 아닌 온 국민들의 한결같은 소망일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지난날의 정치사를 기억하는 국민 여러분 가운데는 과연 이 대통령직선제가 큰 탈 없이 잘 돼 나갈까 하는 불안감을 가지신 분도 많이 계실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께서 그와 같은 걱정과 우려를 가지고 정치인들을 채찍질해 나간다면 여러분과 본인의 이 걱정은 기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확신합니다.


민주주의는 이성과 자제를 통한 점진적인 개혁의 과정이지 일시에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변칙이나 혁명이 아닙니다.

민주주의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이며 법과 질서를 지키고 대화와 타협을 그 유일한 수단으로 삼아야 하는 이치도 이제는 더 이상 외면될 수 없습니다.

이제 어떤 명분으로든지 불법과 폭력으로 사회의 혼란을 유발한다면 그것은 바로 자유민주주의체제를 무너뜨리려는 것으로 이에 대해서는 국민 여러분이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정치는 국리민복의 바탕 위에서 화합 속의 경쟁으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본인은 오늘의 이 결단과 더불어 민주발전의 새 시대 그리고 성숙한 정치의 출발을 국민 여러분과 함께 기대하는 바입니다.

우리의 정치도 이제 경제발전에 걸맞지 않는 초라한 모습을 탈피하고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민주선진국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하겠습니다.

지난 40년간 반복되어 온 불신과 반목 그리고 일방 독주와 극한 대결의 유산을 강물로 흘려 보내고 호양과 타협 그리고 신뢰와 화합의 새로운 모습으로 사회발전을 오히려 선도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선진 정치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국민 여러분께서는 성숙한 민주시민으로서 현명한 심판자가 되어주셔야 할 뿐만 아니라 안정과 화합, 대화와 공정을 해치는 반민주적 행위에 대해서는 엄히 경계하고 질책해 주셔야 하겠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 우리나라가 단순한 경제 모범국이 아니라 정치 모범국으로 세계사에 부각되는 또 하나의 신화를 창조해 나갑시다.

우리는 지난날의 모든 오해와 불신 그리고 서로 간의 미움을 버리고 같은 겨레, 같은 나라, 같은 민주시민으로서 신뢰와 화합을 넓혀 나가야하겠습니다.


오늘의 이 조치를 계기로 우리사회의 비리와 모순이 청산되고 각 분야에서 참신한 기풍과 끊임없는 신진대사가 이루어져서 밝고 활력 있는 사회를 만드는데 우리 모두 새로운 각오로 나서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후진과 빈곤을 극복하고 기적과도 같은 발전을 이룩해온 위대한 국민으로서 위대한 나라를 건설하고 온 국민이 함께 승리하는 감격을 맞보게 될 것입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본인은 평화적 정부이양을 수범하고 민주주의 기반을 튼튼하게 다짐으로써 우리 역사에 참된 민주주의의 새 시대를 연 개척자로 후세에 평가받게 되기를 바라는 것 이외에 진실로 아무런 사심이 없습니다.


본인의 소망은 본인이 국정을 책임진 이 80년대에 갈등과 혼란 그리고 원한과 보복의 악순환의 종지부를 찍고 포용과 화합에 민주주의가 뿌리내리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오늘의 이 결단이 그러한 신념을 실천하려는 충정에 바탕을 둔 것임을 국민 여러분께서는 이해하시리라고 믿습니다.


본인은 남은 임기동안 초연한 입장에서 국정을 공정하게 수행하고 자유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 법과 질서를 추호의 흔들림 없이 지켜나갈 것입니다.

이제 7개월 후면 본인은 청와대를 떠나 초야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내 뒤에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진짜 민주주의를 꽃 피우고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 부강한 나라를 건설하며 이 국력과 국민적 저력을 바탕으로 통일성업을 성취해 주기를 간곡한 마음으로 소원할 뿐입니다.


그동안 시위에 참가한 학생이나 그것을 막느라고 고생한 경찰관이나 그리고 최루탄 연기 속에서 괴로움을 겪은 시민이나 모두 민주주의의 터전을 지키고 발전시키려는 뜻에서는 차이가 없다고 본인은 믿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태로 일상생활에 큰 불편을 겪으신 국민 여러분께서도 나라를 걱정하시고 잘되게 하려는 열의는 다 똑같은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께서 민주발전을 열망하는 그 정성으로 앞으로 정치의 신화를 창조할 수 있도록 본인을 계속 믿어주시고 성원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야의 모든 정치인들도 이제 다시는 국민을 애달프게 하고 국민의 생활을 불편하게 하는 그러한 사태가 없도록 다 함께 노력해 주시기 바랍니다.

조국의 안정과 민족의 번영을 위한 우리의 노력은 결코 중단될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 이 역사의 분수령에 있어서 우리의 위대한 저력을 발휘해서 이 호기를 기필코 살려 나갑시다.

그동안 숱한 위기를 극복하고 민족사에 빛나는 성장과 성취를 이룩해온 국민 여러분의 경험과 저력이 있고 민주발전과 번영을 위한 국민 여러분의 의지가 있는 한 우리는 아무 것도 두려워 할 것이 없습니다.

이 고비에서 새로운 화합과 단결로 전진해 나가면 우리는 반드시 민주와 선진 그리고 번영과 통일의 위대한 조국을 창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새로운 희망을 가지고 민주 새 시대를 향해 나아갑시다.

그리하여 국민 대화합의 시대, 참된 민주발전의 시대 그리고 평화통일의 시대를 우리 모두 활짝 열어 나갑시다.

감사합니다.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87/1792376_19322.html







1990.1.



[ ..... 노태우 대통령이 나를 불러 사퇴를 간곡히 요청했습니다. .......

..... 다음 대권은 정호용이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




독점 인터뷰


5·6공 주역, 정호용 전 국방장관

“나는 친구 노태우에게 배신당했다”



허만섭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2005-10-24

2005년 11월 호


5·6공 주역, 정호용 전 국방장관


● “YS, 全·盧 친구인 내가 대통령 될까봐 내 의원직 사퇴를 3당 합당 조건으로 걸어”

● “고건, 5·17 계엄 반대해 사표 냈다면서 계엄기간 중 장관으로 복귀”

● “드라마 ‘제5공화국’, 내가 등장한 21개 장면은 모두 허위”

● “하늘에 맹세코 5·18 발포명령 안 했다… 재심 청구할 것”


5·6공 주역, 정호용 전 국방장관


10월14일 오전 서울 역삼동 사무실에서 정호용(鄭鎬溶·73) 전 국방부 장관을 만났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과 육사 11기 동기, 하나회 멤버로 절친한 사이였던 그는 “언론 인터뷰는 10여 년 만에 처음”이라고 했다.


그에게서 1990년 1월 3당(黨) 합당 직전 의원직을 사퇴한 까닭부터 들었다. 1989년 12월31일 백담사에 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은 국회 5공청문회에 출석해 ‘광주 민주화운동’ 등에 대해 증언했다. 그 며칠 후인 1990년 1월8일 정호용 당시 민정당 국회의원은 의원직을 사퇴했다. 이어 14일 뒤인 1월22일 민정당 총재인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민주당 총재, 김종필 공화당 총재는 3당 합당을 선언했다.



-1990년 1월8일 ‘국가 안정’을 내걸고 의원직을 사퇴했는데….


“당시 야당은 5·18의 책임을 물어 나를 의원직에서 사퇴시키라고 민정당을 거세게 압박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나는 5·18에 대해 내게 법적·정치적 책임을 묻는 것은 매우 부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5·18의 책임을 지고 의원직을 사퇴하는 것은 도저히 수용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국가안정을 명분으로 사퇴한 것입니다.”


당시 언론은 “13대 총선으로 형성된 여소야대(與小野大) 정국에서 민정당 김윤환 총무(작고)와 제1야당인 평화민주당 김원기(현 국회의장) 총무의 막전 막후 줄다리기를 통해 정호용 의원의 의원직 사퇴가 이뤄졌다”고 보도했다. “정 의원의 사퇴는 여야 총무의 뛰어난 협상력의 결과”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사자인 정 전 장관에 따르면 이 같은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 그의 사퇴는 ‘원내총무선’에서 다뤄진 사안이 아니었다.



전두환, 노태우, 그 다음은 정호용



- 5·18에 책임이 없다면서도 야당의 요구에 응해 사퇴한 이유가 뭡니까.


“당 일각에서 내게 의원직 사퇴를 권유했습니다. 나는 거부했죠. 야당이 아무리 거세게 압박한다 해도 응할 이유가 없었어요. 그런데 노태우 대통령이 나를 불러 사퇴를 간곡히 요청했습니다. 국가와 당을 위해 그렇게 해달라면서 친구인 자신을 꼭 한 번만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번에 의원직 사퇴를 하면 석 달 뒤 대구 서구갑 보궐선거에 공천을 해주겠다’고 약속하더군요.”


-의원직 사퇴가 노 대통령에게 왜 그토록 절실했습니까.


“노 대통령과 YS(김영삼 당시 민주당 총재), JP(김종필 당시 공화당 총재) 사이에 은밀하게 3당 합당이 추진되고 있을 때였습니다. 나를 퇴진시키라는 것이 YS, JP가 내건 3당 합당의 전제조건이었습니다.


그건 3당 합당 이후의 후계구도를 염두에 둔 것이었죠. YS는 ‘전두환·노태우·정호용은 육사 11기 동기인 절친한 친구들로 5·6공화국을 세운 주역이다. 전두환·노태우가 대통령을 했으니 다음 대권은 정호용이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이야 육사의 같은 기수에서 대통령이 세 명이나 나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땐 그렇지 않았나 봅니다(실제로 전두환 전 대통령은 정 전 장관을 내무부 장관, 국방부 장관에 임명해 행정 경험을 쌓게 했다). 당시 노 대통령에게 3당 합당은 절체절명의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내가 의원직을 사퇴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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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shindonga.donga.com/3/all/13/1048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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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1.



[ ..... 合意改憲과 大統領直選에도 불구하고 운동권은 ... 진정한 민주화는 불가능하다고 .......

...... 의회민주주의 입장은 한마디로 「改良主義」로 매도 ....... ]



1989.1.25.

時評, 抵抗과 順應의 病理


새벽 등산로에 어디선가 날아든 붉은색 전단들이 있었다.

「우여곡절과 수난의 악순환을 거듭하는 형극의 나날에 마침내 사회변혁운동의 지도이념으로 맞이한 주체사상을 신봉하고, 그 기치 하에 투쟁하는 것이야말로 정의에 살고 애국에 불타는 모든 민중의 숭고한 책무이고 본질이다.」

「주체사상을 수용하여 반미자주화와 반파쇼 민주화운동을 더욱 가속화하자!」

이 선전문구 옆으로는 김일성 저작집과 단파라디오가 그려져 있다.


사실 合意改憲과 大統領直選에도 불구하고 운동권은 현 체제하에서 자주통일과 민중생존권이 보장되는 진정한 민주화는 불가능하다고 인식하고 사회변혁운동이라는 이름아래 혁명투쟁을 기본노선으로 삼은지 이미 모래다. 의회민주주의 입장은 한마디로 「改良主義」로 매도된다.



政治세력화한 在野


바로 그날 오후 80년대 在野 운동권의 지도적 인물들을 중심으로 전국 각 부문에서 모인 1천 1백 명의 대의원 등 드높은 열기와 관심 속에서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이 결성되었다. 이로써 운동권 세력이 하나의 實在, 하나의 엄연한 정치세력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런데 결성대회장 전면에는 붉은색으로「반미자주화 반파쇼민주화투쟁 만세!」라는 대형구호가 걸려 있었다.

결성선언문은 외세의 新植民主意的지배와 軍事獨裁가 이 땅에 집요하게 지속되고 있다고 하면서 앞으로 反外勢「 자주화운동, 반독재 민주화운동 및 조국통일운동에 매진할 것을 내외에 천명하고 있다.


우리는 물론 全民聯사람들이 해 온 독재에 대한 헌신적 투쟁과 민중에 대한 열정을 잘 알고있다.
그러나 그 결성선언문에서 南韓의 현상에 대해서는, 예컨대 美國이 그 군대와 자본으로 이 땅의 민중생존과 번영을 가로막고 있고 군사독재와 독점재벌은 분단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얻고 있고 단정적인 비난을 가하면서, 北韓의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자유통제와 획일주의에 따른 관료 억압과 亭諦에 대해서는 철저히 침묵하는 편파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화운동을 말하면서 인간의 존엄과 자유의 가치에 대해서는 명백히 언급치 않고 있는 사실을 유감스럽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적지 않은 사람들이 全民聯의 노선에 대해, 혹 자유민주주의체제 전복세력이 아닌지, 北韓의 對南戰略에 동조하는 것이나 아닌지 경계와 의심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해 독재 권력의 容共造作수법이니, 冷戰이데올로기적 발상이니 하는 반박만을 할 뿐 납득할만한 설명을 해주지 않고 있다.


스스로 밝히지 않는다면 굳이 해명을 요구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당연한 의문이 풀리지 않는 한 믿어주기 어렵게 된다. 물론 代案의 제시가 없는 비판과 비타협적 투쟁도 역사적 기능을 가지기는 한다. 그러나 편파적으로 치우침으로써 자칫 스스로의 황폐와 이웃에 대해 피해를 주는 결과를 가져오지나 않을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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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1989-01-25

http://www.futurekorea.co.kr/FKQT/calarticle/article_frame.asp?go=content§ion=%C4%AE%B7%B3&id=70






(상) 화염병에 그을린 학생운동


[중앙일보] 입력 1989.05.06



대학가의 과격·폭력시위가 끝내 죽음까지 몰고 왔다.
이번 동의대사태는 그 동안 대다수 국민들이 크게 우려했던 대학가시위의 양상을 극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첫 사용 84년 3백개…올핸 이미 30만개 | 10여명씩 조 짜서 「파도식 투척」|총학장실은 아예 농성장 변모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 어떠한 형태의 폭력이든 더 이상 방치하거나 용서할 수 없으며 특히 이번 사태는 계기로 폭력·과격시위는 영원히 추방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그 어느 때 보다도 높다.


동의대사태와 관련, 학생운동권을 향해 국민들의 우려와 질책이 가해지는 것은 무엇보다 그 동안 시위양상이 화염병투척·분신·투신자살, 교수들에 대한 폭력행사와 삭발, 총장실 점거와 기물파괴 등 사회통념과 윤리적으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작태가 만연되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순수한 주장과 요구가 폭력·과격시위라는 수단과 이해할 수 없는 방법 때문에 변질되고 있는데 대한 애정 어린 걱정인 것이다.


<각목도 필수용품>


「폭력시위는 차제에 그만두어야 한다」는 국민들의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대학가 일각에서 일고있는 자숙·자제분위기는 일시적이 아니라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이 국민들의 강력한 요구다.


학생시위가 과격·폭력성을 띠기 시작한 것은 5공중간 때인 84년 학원자율화 조치이후부터다. 이때부터 시위 현장에는 으레 화염병·각목·쇠파이프 등이 필수시위용품으로 빠짐없이 등장했다.


화염병은 이제 학생·근로자시위 현장의 단골손님이 돼버렸다..

치안본부에 따르면 84년 총1천4백여 회의 시위 중 화염병이 사용된 시위가 77회, 화염병 수 는 3백여 개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87년에는 2천1백70회의 화염병시위에 7만여 개의 화염병이 사용됐다. 88년에는 화염병 시위가 1천7백여 회로 줄어든 반면 화염병은 35만8천 여 개로 늘어났다.


올해에는 지난달 20일까지 6백34회의 화염병시위에 29만9천여 개의 화염병이 사용됐다.


더욱이 시위학생들의 화염병투척은 조직적이다. 학생들이 10여명씩 조를 짜 『1조 앞으로, 2조 앞으로』하는 방식으로 전투를 방불케 하고 있다.



이와 함께 점거 농성 때는 으레 기물파괴·폭행 등이 뒤따른다.

서울교대생들은 47일간 기성회비 동결 등을 요구하면서 농성 중 유리창·사무실집기·연구실 기물·보도블록파손 등 7천여 만원의 재산피해를 냈다. 학생들은 기성회비 7%, 1인당 2만원씩 4천여 만원의 동결을 요구한데 비해 오히려 2배의 피해를 내는 결과를 빚었다.



<교권 땅에 떨어져>


지난해 6월 서울대생들은 농촌봉사활동 경비지원을 학교측에 요구하다 거절당하자 총장실 등 대학본관을 점거, 교기를 끌어내리는 등, 난동을 부렸으며 이를 말리던 교수들에게 학생으로서는 입에 담지 못할 폭언을 퍼부어 주동학생 11명이 학사 제명되기도 했다.


또 지난해 8월 충남대생 40여명은 8·15남북학생회담 참가 경비 및 차량지원을 요구하다 받아들여지지 않자 총장실에 난입, 책상·전화기·TV 등 집기를 쇠파이프로 부수는 소란을 피우기도 했다. 목원대생들은 심지어 교수들에게 삭발을 강요하는 등 교권자체를 뿌리째 부정할 정도였다.
공안 합수부에 따르면 4월 한달 동안 전국 각 대학에서 일어난 교수폭행·감금·기물파괴·방화 등 과격·폭력시위는 2백여 건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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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총학장실이 농성장으로 사용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문교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1학기에 54개 대학에서 1백32회에 걸쳐 총학장실이 점거됐고, 2학기에는 41개교에서 71차례 총 학장 실 점거농성이 발생했다.

또 2학기에 시위는 76개교에서 3백18회가 발생, 학생 7만4천7백8명이 가담했고, 농성은 85개교에서 7백23차례나 일어나 9만5천1백32명이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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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협 자제 선언>


방학중인 1월에는 각종시위가 21개 대에서 58회, 2월에는 27개 대에서 54회 일어났다.
또 3월 개학이후 하루평균 40여 개 대학에서 시위·농성·불법집회가 계속됐다.

6일 현재 21개 대학에서 총 학장선출 참여, 등록금동결, 재단퇴진, 교수사퇴, 대학이전, 예·결산공개, 부정입학 진상규명, 학과 명칭변경 등을 요구하며 총 학장 실·이사장실 등 을 점거, 계속농성중이다.



서울교대와 동의대에는 휴교령이 내려졌고 고대는 22일째, 한림대는 53일째 임시휴업중 이다. 올 들어 시위는 지난달 20일까지 모두 1천5백12건(치안본부 집계)이 발생했으며 이 가운데 화염병·각목·쇠파이프 등이 동원된 과격시위는 8백21건에 이른다.


과격·폭력시위는 충동적인 분신·투신자살의 양상으로 상승작용을 일으키기도 한다. 서울교대 남태현군이 단순한 기성회비 동결을 요구하는 학내분규중 분신한 것이 그 예다.


60년대 후반 기승을 떨치던 일본 극좌파도 동의대 사태처럼 경찰관을 방화살상하지는 않았다. 69년 일본대학 점거농성 진압과정에서 경찰관 1명이 돌에 맞아 사망한 사건이 고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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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joins.com/article/2328566







[ ....... 과격한 변혁을 요구하고 그것을 혁명적으로 쟁취하려는 이 민중논리의 타파대상은 누구인가.

기성체제를 옹호하는 수구세력, 점진적 개선을 주장하는 개량주의자들, ....... ]



깨어있는 중산층이라야 산다.


[중앙일보] 입력 1989.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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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9선언이후 2년여의 곡절 많은 세월속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의 양상으로 지적될 이 민중문화운동·민중변혁운동을 어떻게 설명할것이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이땅에 성조기 나부끼는 한 통일아니다/핵무기 숨겨두고 평화통일 아니다/반외세 자주화 반독재 민주화 투쟁속에/이 강산 긴 어둠뚫고/한라와 백두에서 불끈 솟은 불기둥으로/민중이 세워야 할 깃발…』 (집단 창작단 진군나팔 『피어린 산하』 에서)

전대협산하 수만의 대학생을 남으로 오라 북으로 가자 그 외치게한 대학생들의 집체창작시 한 귀절이다.



변혁을 위한 현실참여, 그리고 투쟁의 무기로서 복무하는 민중문화가 노사분규의 현장속에서, 통일염원 시위속에서 생성되고 다시 그운동을 고취하고 있다. 시위군중속에 나부끼는 깃발과 거대한 걸개그림, 노동자의 피를 끓게하는 노동시를 단순히 문예이론적 비판의 대상으로 삼기엔 사태가 위중하다.


이들이 결속하고 연대하는 운동의 구심점인 민중논리가 오랜 독재와 억압체제 밑에서 몸으로 부딪쳐 단련된 「견결한」 논리이고 그 논리가 노사분규 현장에서, 대학생들의 시위속에서, 그리고 전교조 사태의 회오리속에서 확산되고 증폭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경각심을 갖고 중시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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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체제의 과격한 변혁을 요구하고 그것을 혁명적으로 쟁취하려는 이 민중논리의 타파대상은 누구인가.


기성체제를 옹호하는 수구세력, 점진적 개선을 주장하는 개량주의자들, 많이 가진 사람과 덜 가진 사람을 포함한 중산층이상의 계층들이다. 급진적 변혁을 두려워하고 무언가 지킬것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변혁의 걸림돌이 되고 변혁을 위해선 그 걸림돌을 제거해야 한다고 민중세력은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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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와 민주화의 두 수레바퀴를 온전하게 굴려가는 이 사회의 중심계층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깨어있는 중산층이 되어야만 한다.
버릴것은 버리고 지킬것은 지킬줄 아는 단호한 의지와 논리의 단련이 어느때보다 절실하게 중산층에게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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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joins.com/article/2352057






[ ...... 1990년대에 진행된 이른바 ‘포스트맑스주의’ 논쟁 ......

..... 프롤레타리아독재의 폐기... 동의 할 경우 ‘전향’이라는 딱지가 예사로 붙여졌다 ....... ]




2015.10



맑스주의에서 독재와 민주주의


김정한(고려대)



1. 들어가며


맑스주의가 ‘더 나은 민주주의’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인지는 일반적인 예상보다 자명 하지 않다. 무엇보다 맑스와 엥겔스 같은 그 창시자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들을 쏟아 냈고, 진정한 민주주의의 실현이라는 공산주의로의 이행기를 프롤레타리아독재라는 이름 으로 표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자본주의를 지양하는 공산주의가 어떤 사회관계를 구성하는 것인지는 매우 모호하며, 그에 도달하는 필연적인 혁명적 경로라는 프롤레타리아독재 또한 어떤 비판도 견뎌내지 못하는 허약한 개념으로 전락해 있다. 맑스주의의 핵심적인 명제 가운데 하나로 프롤레타리아독재를 상정하고, 이를 폐기하느냐 고수하느냐 를 준거로 삼아 맑스주의와 탈맑스주의를 구별했던 지난한 논쟁사를 상기하자면 이는 역설적이지 않을 수 없다. 예컨대 한국사회에서 1990년대에 진행된 이른바 ‘포스트맑스주의’ 논쟁의 핵심적인 쟁점 가운데 하나도 프롤레타리아독재의 폐기 여부였으며, 그에 동의 할 경우 ‘전향’이라는 딱지가 예사로 붙여졌다. 그렇다면 오늘날 프롤레타리아독재에 대한 침묵은 어떤 이론적 사유의 부재를 드러내는 증상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맑스주의와 민주주의를 연결하는 잃어버린 매개 개념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프롤레타리아독재를 변호하려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은 아니다. 마치 맑스주의에서는 어떤 형태의 ‘독재’도 지향했던 바가 없던 것처럼 침묵하는 것은, 현실 민주주의에 대한 사유에서 어떤 망실을 초래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 이 글의 출발점이다. 프롤레타리아독재 개념에 대한 비판적인 재검토를 통해 맑스주의가 ‘더 나은 민주주의’와 맺을 수 있는 문제설정을 재정립하고 오늘날 민주화의 주요 과제가 무엇인지 확인하는 데 보탬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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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 ...... 80년대는 '변혁과 개량'이라고 하는 자기정체성을 강조하는 배제의 논리 속에서 운동을 전개하였다 ........ ]




[ ...... 기존의 기동전 중심의 운동구조에서 ...... 진지전적 성격이 보다 강화되어야 ........ ]




[ ...... 장외진보운동의 역량을 가능한한---다양한 사회영역에서---제도역량으로 전화하여 장기전에 대비하여야 ........


..... 민중적,계급적,변혁적 시각을 포기하는 경향(청산주의적 경향)에 대한 비판이 요구 ........ ]




[정책강좌] 김영삼정권의 성격과 대응


글쓴이 전국연합
작성일 1993년 11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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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 이 자료는 지난 상반기 대구경북연합에서 진행되었던 정책강좌의 발제문 및 토론자료입니다. 자료양이 많아 몇차례에 나누어 게재합니다.



1. <발제문> 김영삼정권의 성격과 대응방안(조희연:성공회신학대학 교수)

<약정토론> 현정권의 성격과 우리의 대응 (손호만: 대구노동교육협회 대표)


2. <발제문> 노동운동의 현황과 과제 (김승호:전국노운협 지도위원)

<약정토론> 한국노동운동의 현단계와 전망(김형기: 경북대교수 경제학)
<약정토론> 노동운동의 현황과 과제(정우달:대구지역노동조합연합 의장)


3. <발제문> 새로운 정치조직 건설의 일보 전진을 위하여
(김근태 : 전 국민회의 집행위원장)

<약정토론> 민족민주운동의 발전과 정치적 영향력 확대를 위하여
(황인성 : 전국연합 상임집행위원장)

4. <발제문> 현재의 시민사회의 논의에 관하여 (최장집:고려대 교수, 정치학)

5. <발제문> 통일운동의 현황과 과제(정대화)

6. <발제문> 지방자치제와 그 운동적 의의 (김용석 :인천노동문제상담소 이사)

7. <발제문> 대구.경북 민족민주 운동의 과제
(민주주의 민족통일 대구경북연합 정책강좌준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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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문> 김영삼정권의 성격과 대응방안


조희연 (성공회신학대학 교수.사회학)



1. 김영삼정권의 구조적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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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현시기 전선변화의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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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신정권 하에서의 한국사회의 변화 전망과 민주진보진영의 진로



(1) 한국사회의 변화의 측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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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대선 이후 민주진보진영의 진로(참고문헌7)


(1) 진로 모색의 전제적 인식


1) 기존의 기동전 중심의 운동구조에서 민주주의적 진지를 다양하게 확보한 바탕 위에서 이루어지는 진지전적 성격이 보다 강화되어야 한다.


2) 역량의 단순집중 구조에서 분화 속의 집중이 요구된다.사회진보의 역량들을 담는 다양한 형식이 요구되고 그것들의 기초 위에서 '분화적 통일'을 모색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3) 민주 대 반민주 구도가 해체되고,보수세력/자본세력과 반대세력 간의 대립으로---우리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변화되고 가고 있으므로,기존의 민주화운동의 동력을 새로운 진보운동의 동력으로 최대한 전화하는 노력이 요구된다.


4) 80년대 민주진보운동이 쌓아온 장외진보운동의 역량을 가능한한---다양한 사회영역에서---제도역량으로 전화하여 장기전에 대비하여야 한다. 제도 자체 속에서 운동의 입지를 확보하는 것의 중요성


5) 80년대 정파적 대립을 넘어서는 새로운 문제중심의 '大同小異'구도를 창출하여야 한다. 80년대의 민중적,변혁적,계급적 세계관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80년대적인 정파적 대립의 구도를 뛰어넘으려는 자세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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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와 함께 혁신과 계승의 변증법적 통일의 관점을 가질 것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현실변화에 눈을 감는 경직된 경향(사수론적 경향),현실변화에 대한 감응력(sensitivity)을 가지면서도 80년대 우리가 획득하였던 민중적,계급적,변혁적 시각을 포기하는 경향(청산주의적 경향)에 대한 비판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이러한 양편향을 극복하면서 변화하는 현실에 창조적이고 개방적으로 대응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5) 80년대는 '변혁과 개량'이라고 하는 자기정체성을 강조하는 배제의 논리 속에서 운동을 전개하였다고 할 수 있는데, 90년대에는 변혁적,진보적 관점의 견지를 가지면서도,편협한 헤게모니관에 사로잡히지 않으면서 다양한 진보적 잠재력을 갖는 집단들과 겸허하게 연대할 수 있는 자세를 갖추는 것이 요구되다고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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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러한 세력들과 국면국면에 따라 합종연횡하면서 진보세력의 대중적 입지를 강화하는 방식이 요구된다고 하는 점이다.



(2) 3영역 복합대응론


*재야민중운동으로 혼합되어 있던 여러 측면의 분화


1) 합법정치영역에서의 제도정치활동(정당운동)
2) 기본대중조직운동(계급적 대중운동)
3) 시민적 제영역에서의 사회운동(시민운동)



1) 합법정치영역에 독자적 진입하는 문제와,제도정치영역 자체에 대한 국민적
무관심화(정치에 대한 관심 자체의 실종)의 저지하면서 反민자당의 '전국적인
개혁적(혁신적인) 정치적 구심'을 형성하는 문제가 동시에 주어짐.
국가/정치사회/시민사회---시민사회적 영역에서의 진보운동의 힘에도 불구하
고 그것이 정치사회적 영역에서의 역량으로 전화되어 있지 못함.이것을 어떤 형
태로든 시행하여야 할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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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법정치적 실천과 관련하여 제시될 수 있는 쟁점은, 1)어떻게 하면 운동과
정치의 올바른 결합을 통하여 정치 자체에 대한 국민적 무관심화를 저지할 것인
가하는 점,


2) 어떻게 하면 민중운동의 정치세력이 독자적인 실체로서 제도정치에 개입하여
갈 것인가 하는 점,
.............................................

4) 어떻게 하면 진보세력이 제도정치영역에 위력적으로 진입할 것인가하는 점 등
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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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간 전국연합 등으로 표상되는 재야민중운동 조직 내부에 혼재되어 있는 대중운동과 정치운동으로서의 성격이 분화될 필요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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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계급적 대중운동과 일정하게 차별화되는 시민적 대중운동의 개척과 활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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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필자는 경실련이 '선점'하고 '독무대'로서 활동하고 있는 시민적 활동의 영역에 민중적 입장을 갖는 진보적 시민기구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진보적 시민기구는 1)경실련과 차별화되는 정책적 대안들과 개혁프로젝트를 제시하고,2)가투(街鬪)적 방식이 아닌 다양한 시민적 방식으로 활동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경실련이 민중운동과---부분적으로---대립하는 시민운동의 성격이 존재한다고 한다면,'민중운동과 함께 가는 시민운동'이 될 것이다.


이러한 진보적 시민운동기구가 존재할 때 경실련 등 시민운동과 계급적,정치적 입장이 다른 민중운동이 시민운동과 정당하게 연대할 수 있는 매개를 갖게 될 것이라과 생각한다.이러한 진보적 시민운동기구는 경실련 등 기존의 '체제 내적인' 시민운동과 연대하고 동시에 '체제변혁적인' 민중운동과 연대하는 기구가 되어야 할 것이다.필자는 본래적인 시민운동의 제영역들,변형된 정치운동의 성
격을 띈 시민운동의 영역,지자제 혁신운동 등에 과감하게 우리의 역량이 분산배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그리고 이러한 분산분화의 기초 위에서 운동의 더 높은 통일을 고민하는 것이 올바른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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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go.jinbo.net/webbs/view.php?board=nadrk-6&id=6&page=28






[ ..... NL진영은 ... 핵심적인 진영은 - 자신의 전위조직을 '한국민족민주전선'(KNDF)으로 상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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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1980년대 중반 이후 변혁운동진영이 크게 NL진영과 반(!)NL진영으로 양분화되어 있는바, NL진영은 -모두가 다 그러한 것은 아니나 핵심적인 진영은- 자신의 전위조직을 '한국민족민주전선'(KNDF)으로 상정하고 있기 때문에 비합법 전위조직을 별도로 구성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


반면에 반NL진영 혹은 비(`)NL진영은 한국사회의 독자적인 정치적 지도조직 혹은 전위조직을 건설하여야 하기 때문에, 이러한 전위조직 건설-그것을 구체적으로 시도하건 아니면 전망으로서 제시하건 간에- 문제를 대단히 중시하고 있으며 그러한 구체적인 시도가 몇몇 사건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제헌의회 그룹으로부터 이어지는 일련의 조직들은 바로 이러한 시도들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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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맹, 비합법 전위조직에 대한 조직사회학적 분석

저작자 조희연
출처정보 <역사비평>, 1992. 가을, 역사비평사, 서울
2021-11-24 21: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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