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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기지노선(民主基地路線)
 닉네임 : 백년반역타도구국  2020-10-25 18:45:12   조회: 41   
1945.10.10.


민주기지노선(民主基地路線)



북한개념용어


해방 이후 북한지역의 공산당이 전 한반도의 공산화혁명을 꾀하려고 제창한 정치노선.


북한의 『대중정치용어사전』에 따르면 “민주기지란 혁명이 진행되는 나라에서 다른 지역보다 먼저 혁명이 승리하고 개혁이 실시되어 앞으로 전국적 혁명과업을 수행하기 위한 근거지가 되는 지역을 말한다. 공화국 북반부는 전국적 범위의 반제반봉건민주혁명을 수행하기 위한 민주기지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원래 민주기지란 소련의 세계공산화정책에서 유래되는데, 북한은 민주기지를 ‘민주주의 혁명 발전의 책원지’라 정의하고 있다. 1945년 10월 10일에 열린 ‘조선공산당 북조선 5도 당 책임자 및 열성자대회’에서 제기되었으며, 남한지역의 공산화를 위해서는 먼저 북한지역을 기지로서 강화하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본래 공산주의자들은 전지역의 공산화가 어려울 때는 가능한 지역부터 공산화시키는 전략을 사용하는 것이다. 북한공산주의자들도 이 전략의 실현을 위하여 이듬해부터는 ‘민주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각종 개혁을 실시하였다.


토지개혁을 실시하고, 노동자와 사무원의 노동 내용을 규정한 법률을 만들고, 남녀평등권을 내세우며 중요 산업체를 국유화하는 한편 학교교육체계를 새로 세웠다. 이러한 조치들은 북한지역을 근거지로 하여 민주혁명을 이루겠다는 의도였다.



참고문헌

『대중정치용어사전』(사회과학원력사연구소 편,조선로동당출판사,1964)



집필 (1996년)박웅희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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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해방 직후 김일성 주석은 당면 과제로 건당(建黨), 건국(建國), 건군(建軍)을 제시하였다. 이에 따라 먼저 1945년 10월 10일 혁명의 참모부인 당이 건설되었고, 1946년 2월에는 인민정권인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위원장 김일성)가 조직되어 일제잔재의 청산, 국내 반동세력과의 투쟁, 중요산업의 국유화와 개인 상공업 장려, 무상몰수 무상분배 원칙에 따른 토지개혁의 실시, 8시간 노동제 확립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20개 정강을 발표하였다.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는 “북조선에서 반제반봉건적 민주혁명을 완수하고 인민민주주의 제도를 확립함으로써 북조선을 강력한 혁명적 민주기지로 전변”시키기 위한 민주개혁을 단행하였다.


해방 직후 이 같은 민주개혁을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대중적인 조직기반의 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였다. 이에 따라 1945년 11월부터 1946년 초반 각급 근로단체들이 결성되기에 이르렀다. 1945년 11월 북조선여성동맹(여맹)과 북조선직업총동맹(직총 또는 직맹)이 결성된 것을 시작으로, 1946년 1월 17일에는 북조선민주청년동맹(민청)이, 1월 31일에는 북조선농민동맹이 결성되었다. 이렇게 결성된 각급 대중조직들은 공산당 간부들에 의해 지도되었고, 이들 단체들은 북조선 민주주의민족전선의 주축을 이루면서 공산주의세력의 강력한 대중적 기반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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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62236

청년동맹 60년과 이북의 청년운동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의 역사와 역할 ①>-전상봉
2006년 01월 06일







1946.2.9.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 ....... 공산당, 인민당, 민주청년동맹, 직업동맹, 농민동맹 ....... ]


[ ...... “북조선통일 민족전선은 나라 전역의 통일민족전선을 조직하기 위한 모범이자 기반이다” ........

...... 임시인민위원회가 전 조선 임시민족정부의 기반이 될 것 ....... ]





<1946년 2월 11일 쉬킨이 불가닌에게 보내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창설 관련 보고서>



대장 불가닌 N.A.(Булганин Н.А.) 동지 수신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창설에 대해 귀하에게 보고합니다. 금년 2월 9일에 평양시에서 제 민주정당, 사회단체, 도 및 군 인민위원회 지도자들의 확대회의가 개최되었습니다.

이 회의에서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구성원들이 선출되었습니다. 위원장에는 김일성, 부위원장에는 김두봉이 선출되었습니다.



2월 10일 평양시와 인근 마을들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임시인민위원회 옆에 위치한 시 광장에서 거행된 군중집회에 모였습니다. 도시는 조선의 전통 깃발과 소련, 미국, 영국, 중국의 깃발들로 장식되었습니다. 집회 참석자들 사이에 회의 결정이 적힌 삐라가 전파되었습니다.


평안남도인민위원회 위원장 홍기주가 집회 개시를 선언하면서 그곳에 모인 군중들과 함께 북조선 중앙정권의 선출을 축하하였습니다. 집회 참석자들은 열렬한 박수갈채와 환영의 함성을 지르면서 임시인민위원회 지도자인 김일성과 김두봉을 맞이하였으며, 회의의 결정에 완벽하게 단결할 것임을 표명하였습니다.


집회가 종료된 후에 10만 명이 참여한 시위가 거행되었습니다. 그 시위에는 도시 주민들 및 인근 부락들의 농민들과 함께 공산당, 인민당, 민주청년동맹, 직업동맹, 농민동맹, 조소문화연락협회, 여성동맹, 종교기구 “천도교” 등등이 참여하였습니다.


시위는 다음과 같은 구호 속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만세”, “북조선통일 민족전선은 나라 전역의 통일민족전선을 조직하기 위한 모범이자 기반이다”, “조선의 민주주의와 자주성의 발전을 보장하는 모스크바회의의 결정을 지지하고 수호하라.”

또한 조선 인민과 소련과의 우호, 나라의 민주개혁 및 새로운 기반에서의 나라 공업과 농업의 재건 등을 나타내는 수많은 구호가 있었습니다. 시위 참여자들은 임시인민위원회가 전 조선 임시민족정부의 기반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표명하였습니다.


귀하에게 알리기 위해 상기 내용을 보고합니다.



상장 I. 쉬킨(И. Шикин)

1946년 2월 11일







1945.12.17. 김일성 민주기지 노선



[ ..... 民主基地(민주기지)의 강화는 조국통일의 결정적 담보이다 ....... ]



[時論] 南北聯合에 共産化의 함정 있다.

북한 民主化와 남북 자유총선거가 유일한 統一 방안




金正剛 사회批評家



고려민주연방 통일안은 민주기지 노선의 上層 통일전선테제



1945년 12월17일 朝鮮共産黨北朝鮮分局(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중앙 제3차 확대집행위원회는 「북조선을 통일적 민주·독립국가 건설을 위한 강력한 정치·경제·문화적 민주기지로 變轉(변전)시킬 것」을 결의했고, 同 대회에서 金日成(김일성)은 『民主基地(민주기지)의 강화는 조국통일의 결정적 담보이다』라는 연설을 하여, 이른바 民主基地路線(노선)을 공산당의 한반도 공산화 혁명 전략으로 채택하였다.


민주기지 노선이란 소련 점령지구에 빨치산式 해방구 국가를 만든 후, 이를 거점으로 평화적, 非평화적 무한투쟁을 전개하여, 남한을 병탄함으로써 마지막에는 한반도 전체를 공산화한다는 혁명전략이다. 즉 민주기지 노선은 러시아 공산혁명 과정에서 빨치산 해방구의 경험을 가진 스탈린이, 한반도를 미국과 더불어 분할점령하게 되자, 이 조건을 이용하여 全한반도를 공산화할 목적으로 안출해 낸 교활한 혁명전략이었다.



그후 조선공산당 북조선 분국이 北朝鮮共産黨으로 변하고 공산당이 朝鮮勞動黨으로 변하면서 민주기지 노선은 한반도 공산화 전략의 기본으로 정립되어 오늘에 이른다.



共産黨과 그 연속인 勞動黨은 이 민주기지 노선에 따라, 북한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주권기관을 꾸리는 한편, 남한의 해방공간에서 합법 정치투쟁, 신탁통치 지지운동, 2·7 폭력파업, 10·1 폭동, 4·3 폭동, 여순 14연대 반란 등 갖가지의 평화적, 非평화적 방법으로 대한민국을 전복하여 남한마저 공산화하려고 하였고, 여의치 않자 급기야는 인민군으로 남침하여 6·25 사변을 일으켰다.


6·25 사변을 정점으로 하는 모든 폭력혁명의 방법이 실패하자, 노동계급 중심의 지하당 구축, 폭력혁명 등의 下層 통일전선 전술에다 上層 통일전선 전술을 배합하고, 上層 통일전선 전술에 더욱 큰 중점을 두게 되는데, 이 上層 통일전선 전술의 핵심고리에 해당하는 테제가 바로 高麗民主聯邦共和國(고려민주연방공화국) 통일방안이다.



4·19 직후인 1960년 8월14일, 金日成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겸 내각 수상은 8·15 해방 15주년 경축대회 석상에서 다음과 같이 연설하였다.


『어떠한 외국의 간섭도 없는 민주주의적 기초 위에서 자유로운 남북 총선거를 실시하자.… 아직 남조선 당국이 자유로운 남북 총선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과도적 조치로서 남북조선의 연방제를 제의한다. 즉 남북 조선에 현존하는 정치제도를 그대로 두고 兩 정부의 독자적인 활동을 보장하는 동시에 양 정부 대표로 구성되는 최고민족위원회를 조직하여 주로 남북 조선의 경제·문화 발전을 통일적으로 조절한다.… 남조선에서 미군의 즉시 철퇴를 요구하며, 남북 조선 군대를 각각 10만 또는 그 이하로 축소할 것을 제안한다…』



金日成은 그때 한반도 통일방안으로서 聯邦制(연방제)를 제안하였다.


4·19 이후에 남한에서 좌파가 급팽창하자, 연방제와 군축(=남한의 무장해제)를 지렛대로 하여, 北에는 공산체제를 굳히고 남한에서는 좌파 혁명을 추진하여 병합하는 민주기지 노선을 추진하고자 한 것이다.


1980년 10월10일 노동당 제6차 대회에서 金日成은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


『첫째, 北과 南이 현재 존재하는 사상과 제도를 그대로 인정하고 동등하게 참가하는 민족 통일정부를 수립하고, 그 밑에서 北과 南이 같은 권한과 의무를 지니고 각각 지역 자치제를 실시한다.

둘째, 北과 南이 같은 수의 대표들과 적당한 수의 해외동포 대표들로 최고민족연방회의를 구성하고 거기에서 연방상설위원회를 조직한다.

셋째, 北과 南의 지역정부들은 연방정부의 지도 밑에 둔다.

넷째, 연방국가의 국호는 고려민주연방공화국으로 한다.

다섯째, 고려민주연방공화국은 어떠한 정치·군사적 동맹이나 블럭에도 가담치 않는 중립국이어야 한다.… 北과 南 사이의 군사적 대치 해소와 민족연합군을 조직한다…』



이 고려민주연방제를 한국이 수용하면, 미국을 한반도에서 내쫓고 국군을 민족군에 편입한 후, 현존사상과 제도를 그대로 인정한다는 명분 아래서 수령 독재를 통하여 북한은 金日成·金正日이 완전히 배타적으로 장악하고, 남한에서는 金 일파의 지원을 받는 좌파로 하여금 우파를 누르고 정권을 탈취케 하여, 한반도 전체를 金日成·金正日의 의도대로 요리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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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onthly.chosun.com/

김정강 (2000년 10월호)







1946.5. 스탈린 -- 북한 -- 중공



[ ...... 46년 5월부터 북한은 중국 공산군의 후방기지로 변한 겁니다. 스탈린의 지령에 의한 것 ........


..... 북한은 46년엔 팔로군의 대피소였다가 47년부터는 국민당군에 반격을 위한 기지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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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탈린의 중국정책이 어떻게 바뀌었다는 뜻인지.


 “나는 당시 중국의 만주, 즉 동북3성 지역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때 기억이 지금도 납니다. 45년부터 48년까지 만주에서는 우리가 팔로군이라고 불렀던 공산당과 장제스(蔣介石·장개석)의 국민당이 치열한 전투를 벌였어요. 중국 내전이지요. 그런데 45년 8월 무렵만 해도 스탈린은 장제스의 국민당과 연합하려고 했어요. 45년 8월 9일 소련군은 일본에 선전포고를 한 후 만주로 진군을 했는데, 스탈린은 당시 공산군이 국민당군을 이길 능력이 없다고 판단하고 내전 포기를 공산당에 지령합니다. 그러나 런던 외무장관회담에서 미국과의 협조관계가 대결관계로 바뀌게 된 45년 10월 스탈린의 중국정책이 완전히 바뀝니다. 스탈린은 팔로군 30만 명의 만주 진출을 명령했던 것입니다. 이후 만주에서는 소련의 지원을 받는 팔로군과 미국의 지원을 받는 국민당군의 전투가 치열하게 전개되었어요. 처음에는 국민당군이 열세였어요. 그러다가 국민당군이 새로운 병력을 투입해 팔로군을 밀어버렸습니다. 불리한 형세에 놓인 중국 공산군은 46년 5월 북한 지역으로 퇴각합니다.”



 -중국 내전이 북한으로 확산되었다는 겁니까.



 “46년 5월부터 북한은 중국 공산군의 후방기지로 변한 겁니다. 스탈린의 지령에 의한 것이지요. 북한은 중국 내전의 연장지역이 되고 말았습니다. 6·25전쟁 때 만주가 미군이 넘어갈 수 없는 지역이었던 것처럼 46년 5월부터 48년까지 북한은 장제스의 국민당군이 범할 수 없는 일종의 성소(聖所)였습니다. 북한으로 들어간 팔로군은 소련군의 훈련을 받으며 재편됐고, 이후 국민당군을 물리칠 힘을 비축했습니다. 북한은 46년엔 팔로군의 대피소였다가 47년부터는 국민당군에 반격을 위한 기지로 변합니다.


북한을 팔로군의 후방기지로 제공한 스탈린의 조치로 인해 한반도의 분단은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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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ews.joins.com/article/6619303

1946년 스탈린 “북한, 중공군 후방기지로” 지령 … 분단, 돌이킬 수 없게 됐다
[중앙일보] 2011.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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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민주기지란 어떤 지역을 확보한 후 공산주의 방식으로 정치·경제·군사적 역량을 강화하여 하나의 근거지로 삼고, 다시 타 지역으로 이러한 혁명을 수출하는 스탈린의 세계혁명 전략에서 유래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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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소앙 선생은 1948년 김구(金九)·김규식(金奎植) 선생과 함께 남북협상차 평양에 다녀오신 후 늘 “북한은 이미 병영(兵營)사회가 됐더라. 앞날이 걱정이다”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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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N&nNewsNumb=201006100082

2010년 6월호
[李哲承] 학도병 모아 대구 死守에 일조

아버지는 전주형무소에서 인민군에게 학살, 장인은 폭격으로 돌아가셔
전국학련 구국대 결성해 낙동강 방어선 지켜내
대구 사수한 조병옥 내무장관은 ‘제2의 이순신’









1945.12.17. 김일성




[ ....... 첫째 가는 과업은 “북조선을 통일된 민주주의적 독립국가 건설을 위한 강력한 민주기지로 전변시키는 일” ........ ]


[ ...... 386그룹의 학생운동 시절 이념이 바로 이 ‘민주기지론’ ........ ]




김일성, 남한보다 먼저 단독정부 세웠다.



[ 2015-09-07 ]



1945년 9월 20일에 스탈린이 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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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1946년 2월 8일에 이미 북한 정권이 수립되었기 때문이다.


1946년 2월 8일 ‘북부 조선 각 정당 사회단체 지도자, 각 행정국, 각 도시군 인민위원회 확대협의회’가 평양에서 열렸다. 이 회의는 북조선의 중앙행정기관으로 ‘북조선임시위원회’를 수립할 것을 결의하였다. 다음 날인 2월 9일에 ‘북조선 인민의 의사를 대표할 위원 선거’에 들어가 김일성을 포함 23명의 위원을 선출했다. 위원장 김일성, 부위원장 김두봉, 서기장 강양욱이 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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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인민위원회 구성에 관한 규정’ 제 3조를 보면 ‘북조선인민위원회는 북조선에 있어서의 중앙행정주권기관으로서 북조선의 인민사회단체국가기관이 실행할 임시 법령을 제정 발표할 권한을 갖는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중앙행정기관으로서 법령을 제정하고 발표한다는 것은 바로 정부를 말하는 것이다. 단독정부를 누가 먼저 수립했는지는 이를 보면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북한은 남한보다 2년 6개월 이상 앞서 실질적인 정부를 수립했다.


반면 남한은 1948년 8월 14일까지 미군정 아래 남아 있었다. 북한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수립 일자를 대한민국보다 25일 늦은 48년 9월 9일로 잡은 속셈은 따로 있었다. 남한이 먼저 단독정부를 세웠기 때문에 북한은 어쩔 수 없이 단독정부를 수립했다는 핑계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즉 단독정부 수립, 분단 책임을 이승만과 대한민국에게 뒤집어씌우기 위해서였다.


미소공동위원회가 처음 열린 것이 1946년 3월 20일이다. 그런데 소련의 꼭두각시였던 김일성은 미소공동위원회가 구성되기 전인 46년 2월 8일에 서둘러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라는 사실상의 정권을 서둘러 만들었다.




◇스탈린, 1945년 9월20일 김일성에 북한단독정부 지령



그것은 바로 북한 단독정부 수립이었다. 여기서 한반도의 분단이 시작되었다. 왜 김일성은 이런 반민족적 행위를 할 수밖에 없었을까?


이 의문의 실마리는 거의 반세기가 지난 1993년에 와서야 풀리기 시작했다. 한소 수교 이후 북한에 부르조아 민주주의 단독정권을 수립하도록 지시한 ‘1945년 9월 20일자 스탈린의 암호지령문’이 뒤늦게 공개된 것이다.


이 암호지령문은 소련군 최고 사령관 스탈린 및 안토노프 총참모장이 발신자로 되어 있고 바실레프스키 극동전선총사령관 연해주 군관구 군사평의회가 수신자로 되어 있다. 이 전문에는 북한 점령에 대한 7개 항목의 지시사항이 열거되어 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스탈린이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에게 최초로 내린 지시 문서였다.


그 제 2항목에 “북조선에 반일적 민주주의 정당, 조직의 광범위한 연합을 기초로 한 부르조아 민주주의 정권을 확립할 것”이라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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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시에 따라 1945년 10월 10일에서 13일까지 평양에서는 ‘조선 공산당 서북5도당 책임자 및 열성자 대회’가 비밀리에 열렸다. 이 대회에서 ‘조선공산당 북조선 분국’을 설치했고 45년 12월 17일 ‘북조선 분국 제3차 확대집행위원회’부터는 스탈린의 지령이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스탈린은 ‘북조선공산당’이라는 당명을 쓰면서 김일성을 책임비서로 등장시킨다.



책임비서로 등장한 김일성은 이 회의에서 북조선 공산당의 첫째 가는 과업은 “북조선을 통일된 민주주의적 독립국가 건설을 위한 강력한 민주기지로 전변시키는 일”이라는 중요한 연설을 했다. 공산주의자가 말하는 ‘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인 대한민국에서 말하는 민주주의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공산주의자가 말하는 민주주의는 ‘공산주의’와 같은 말이다.



◇386 그룹 80년대 운동이념, 스탈린제 ‘민주 기지론’



따라서 ‘민주기지 구축’은 ‘공산기지 구축’이란 뜻이다. 즉 ‘북한을 민주기지로 삼는다’는 것은 ‘북한을 한반도의 공산통일을 위한 전진기지로 삼는다’는 뜻이다. 그것은 우선 한반도를 통일보다는 분단된 상태로 그냥 두고 우선 북한을 먼저 튼튼한 공산기지 교두보로 만든 다음, 다음에 남한을 공산화한다는 전략이다.



지금 현실정치권에 이미 진입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386그룹의 학생운동 시절 이념이 바로 이 ‘민주기지론’이었다. 이미 민주기지로 만들어져 있는 북한을 기지로 삼아 남한을 해방시킨다는 논리였다.


해방 전후사에서 스탈린과 그의 꼭두각시 김일성은 ‘선 분단 후 남한 병탄통일’ 전략을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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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은 이후 대한민국보다 25일 늦게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수립했다면서 분단 책임을 남한 쪽에 돌렸다.


1945년 9월 20일에 스탈린이 암호지령문으로 ‘북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북조선에 진주한 소련군과 김일성에게 지시했다는 것은 소련 비밀문서 해제를 통해 사실로 밝혀진 사안이다.


그러나 이런 사실은 국내 일반 국민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다. 국내 역사학계의 7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민중사학계 학자들은 이런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 그리고 사실도 아닌 ‘이승만 분단 책임론’을 지금도 주장하고 있다.



지금 여야와 역사학계 간에는 초중고 역사교과서를 국정교과서로 일원화할 것인가, 아니면 현행처럼 복수의 검인정 교과서로 할 것인지를 놓고 첨예한 논쟁이 일고 있다.


이 교과서 논쟁에 한 가운데에 바로 단독정부 책임론, 6.25전쟁 책임론이 도사리고 있다. 앞서 말한대로 국내 역사학계의 7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그룹이 민중사관론자들이다. 이들이 검인정 교과서의 대부분을 집필하고 있다. 이들은 소련 외교문서로 드러난 △스탈린의 북한 단독정부 수립 지령, △김일성과 스탈린의 6·25전쟁 도발 등을 외면하고 있다.



소련 문서를 통한 분단고착화과정



◇검인정 역사교과서 주도한 민중사학계, 국정교과서 거부



이 민중사학자들이 쓴 검인정 역사 교과서를 보면 북한이 단독 정부를 먼저 수립했다는 서술이 거의 없다. 그리고 한국전쟁을 스탈린과 김일성이 도발했다고 쓰지 않고 남북 공동의 책임인양 애매하게 서술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들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진 ‘이승만 분단 책임론’을 줄기차게 서술하고 있다. 때문에 교과서 논쟁의 본질은 국정 교과서인가 검인정 교과서인가의 논쟁이 아니라 어떤 역사관으로 역사를 서술하느냐에 달려 있다.


즉 국정교과서를 주장하는 그룹은 대한민국 건국을 반만년 한민족 역사상 최초로 건설된 근대 국민국가인 대한민국과 이 국가에서 형성된 자유로운 ‘개인’과 ‘시민’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검인정 교과서를 주장하는 그룹은 이승만에게 분단 책임이 있고 대한민국의 역사는 기회주의가 득세하고 불의가 정의를 이긴 역사라고 인식하고 있다.


국정교과서·검인정 교과서 논쟁에는 이처럼 역사관 대립이 숨어 있다. 문제는 이런 역사관 문제가 드러나지 않고 겉껍데기로만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점이다. 본지가 ‘김일성 바로 알기’ 시리즈를 계속하는 것은 이런 이유다.


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50906010003761







1945.9.20. 스탈린 비밀지령



[ ...... 북한에 부르주아민주주의정권을 수립하라는 9월 20일 비밀지령 ....... ]



[ ..... 한반도가 외국의 수중에 들어가 소련을 공격하는 발판이 돼서는 안 된다 .......


...... ‘한반도 전체에 대한 절반의 통치보다는 절반에 대한 완전한 통치가 좋다’ ........ ]




[광복 5년사 쟁점 재조명] ⑨ 1차 전문가 좌담 <上>


2004-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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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 스탈린은 세계적 관점에서 전략적으로 구상하는 인물로 그의 주적(主敵)은 미국이었다. 소련의 한국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1945년 9월 20일자 스탈린의 비밀지령인데, 그 지령이 나온 배경도 미국과의 대결관계였다. 특히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자 스탈린은 미국을 몹시 경계했다. 그는 일본 점령 공동 참여를 집요하게 요구했다. 그는 8월 15일 “일본 홋카이도 북반부를 달라, 그렇지 않으면 소련의 여론이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은 “너희가 총을 가지고 들어온 조선은 갈라주지만, 일본은 너희 군사가 한 명도 상륙하지 않았는데 왜 주느냐”며 반대했다. 북한에 부르주아민주주의정권을 수립하라는 9월 20일 비밀지령은 미국과의 대립관계 때문에 내렸다고 본다. 일각에서는 이승만이 반소적 행동을 취했기 때문에 스탈린이 이런 지령을 내렸다고 보는데 그건 지엽적인 문제다.


▽전 = 1945년 6월 소련 외무성에서 작성한 문서는 한반도가 외국의 수중에 들어가 소련을 공격하는 발판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한반도가 일본의 수중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 = 소련은 일본을 폐허화하려고 했다.


▽전 = 소련은 전후 일본 관리에 미국과 동일지분으로 참여하고자 했으나 미국은 “절대 안 된다”고 버텼다. 그러자 소련은 점령지역만이라도 확실히 장악하려고 했다. 즉, 전후 일본관리에 대한 참여가 봉쇄되면서 북한만이라도 세력권으로 굳히려 한 것이 9월 20일 비밀지령을 내린 이유라고 생각한다.


▽란코프 = 말씀하신 대로 (소련으로서는) 미국정책이 가장 중요했다. 당시 소련이 아주 무서워했던 것은 일본의 재등장이었다. 이런 일본 공포로 인해 1950년대 초까지 신경을 썼다. 소련은 민주화된 일본도 위협으로 여겼다. 소련에 있어서 한반도는 미국과 관계가 나빠졌을 때 일본의 공격길을 막을 수 있는 전략지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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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코프= 소련은 1946년 봄까지 미국과 어떤 협약도 필요 없었다. 소련이 처음부터 맞출 수 없는 조건,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내세운 것은 ‘한반도 전체에 대한 절반의 통치보다는 절반에 대한 완전한 통치가 좋다’는 사고변화 때문이었다.


▽전 = 9월 20일 비밀지령 이후 10월에 열린 ‘북조선 5도인민위원회 연합회의’에서 행한 치스차코프 대장의 연설은 북한에 부르주아민주주의정권을 세우라는 지시를 어떻게 구체화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북한을 독자적인 정치경제적 단위로 분리해서 북한의 행정과 경제를 관리할 최고기구를 만들고 그 산하에 10개의 중앙행정부서를 만들어 소련점령군 사령부가 지휘하는 시스템으로 가겠다는 것이다. 9월 20일 비밀지령의 성격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10월의 상황 진척은 (북한에) 독자적 중앙집권적 국가기구를 만들겠다는 것으로 이해하지 않을 수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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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donga.com/fbin/output?n=200410170218








1945.9.20 조선공산당 '현 정세와 우리의 임무'



[ ..... 금일 조선은 부르조아 민주주의혁명의 계단을 .......

..... 우리는 토지문제를 혁명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된다. .........


...... 농작자의 로력과 가족의 인구수 비례에 의하여 분배 ...... 전토지는 국유화 ........


...... 토지문제를 용감히 대담스럽게 혁명적으로 해결함으로써 광범한 농민계급을 자기의 동맹자로 전취하는 계급만이 혁명의 영도권을 ........ ]




[ ...... 반동적 민족부르조아지 송진우와 김성수를 중심한 한국민주당은 지주와 자본계급의 이익을 대표한 반동적 정당이다. ....... ]




현 정세와 우리의 임무 (8월 테제)


- 해방 후 8월 20일 발표하고 9월 20일 수정하여 9월 25일 출판한 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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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조선 혁명의 현단계



금일 조선은 부르조아 민주주의혁명의 계단을 걸어가고 있나니 민족적 완전독립과 토지문제의 혁명적 해결이 가장 중요하고 중심되는 과업으로 서 있다. 즉 다시 말하면 일본의 세력을 완전히 조선으로부터 구축하는 동시에 모든 외래자본에 의한 세력권 결정과 식민지화정책을 절대 반대하고 근로인민의 이익을 옹호하는 혁명적 민주주의정권을 내세우는 문제와 동시에 토지문제의 해결이다. 우리 조선사회제도로부터 전자본주의적 봉건적 잔재를 깨끗이 씻어버리고 자유발전의 길을 열어주기 위하여 우리는 토지문제를 혁명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무엇보다도 먼저 일본제국주의자와 민족적 반역자와 대지주의 토지를 보상을 주지 않고 몰수하여 이것을 토지 없는 또는 적게 가진 농민에게 분배할 것이오 토지혁명의 진행과정에 있어서 조선인 중소지주의 토지에 대하여서는 자기경작토지 이외의 것은 몰수하여 이것을 농작자의 로력과 가족의 인구수 비례에 의하여 분배할 것이오 조선의 전토지는 국유화한다는 것이오 국유화가 실현되기 전에는 농민위원회 인민위원회가 이것을(몰수한 토지) 관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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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농민 도시소시민과 인텔리겐챠는 조선혁명의 현단계인 부르조아민주주의혁명의 동력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혁명에 있어서 토지문제를 용감히 대담스럽게 혁명적으로 해결함으로써 광범한 농민계급을 자기의 동맹자로 전취하는 계급만이 혁명의 영도권을 잡을 수 있다. 그것은 곧 조선에 있어서 가장 혁명적인 조선푸로레타리아트만이 이 혁명의 영도자가 되는 것이다. 금일에 있어서 그들 노동자 농민은 혁명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동시에 다른 편으로 지주 고리대금업자 반동적 민족부르조아지는 종래의 친일적 태도를 어떠한 희생을 아끼지 않고서라도 이것을 감추고 새로운 캄푸라지(보호색)을 쓰고 나선다.



그것은 일본제국주의 붕괴와 퇴각과 동시에 새로 나타나는 외국세력을 영접하고 그들의 대변자가 되어가면서라도 그들 자체계급의 이익을 옹호하겠다는 배짱이다. 민족급진주의자 민족개량주의자 사회개량주의자(계급운동을 포기한 일파) 사회파시스트(일본제국주의자와 협력하는 변절자 일파)들은 「민주주의」, 「사회민주주의」 혹은 「공산주의」의 간판을 들고 나서고 있다. 문제는 그들이 과거 파벌운동을 그대로 연장하면서 노동자 농민 소부르조아지의 진보적 혁명적 대중운동의 선두에 나서고 지도자의 역할을 놀 것이라는 것이다.


튼튼한 볼세비키적 공산당의 결여는 저 정치적 투기업자들로 하여금 조선인민운동의 지도권을 장악해볼까 하는 일누시(환상)를 가지게 한다. 여기에서 우리에게는 이러한 「혁명적」 언사를 운운하는 사이비혁명가와의 대중적 투쟁의 필요가 생기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옳은 혁명적 정치 로선과 배치되는 경향과 투쟁하는 문제이다. 그것은 조선의 지주와 대자본가들이 주장하는 로선이니 이것은 우리의 혁명적 로선과 대립되고 있다. 그것은 형식적 민주주의국가의 건설로써 그들 지주와 대자본가의 독재하에 그들의 이익을 옹호존중하는 정권수립의 기도이다. 이것은 해외에 있는 망명정부와 결탁하여 가지고 저 미국식의 데모크라씨적 사회제도건설을 최고리상으로 삼는다. 반동적 민족부르조아지 송진우와 김성수를 중심한 한국민주당은 지주와 자본계급의 이익을 대표한 반동적 정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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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일 조선에 있어서 우리는 어떠한 당을 건설하여야 할 것인가? 푸로레타리아트의 전위는 볼쉐비키당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당은 노동계급의 한 부분이며 한 부대이지만 그것은 보통부대가 아니고 특별한 정예부대이다. 레닌 동무는 당에 대하여 이렇게 가르치고 있다.


『사회활동에 대한 지식 사회발전 법칙과 계급투쟁 법칙의 이론으로 무장하여 노동계급을 인도하며 그 투쟁을 지도하기에 유능한 노동계급의 선봉대이다.』


이러한 당의 과업은 근로대중을 당의 수준에까지 올리며 자기 전당원으로 하여금 의무적인 군대식적 규률을 가지게 하여야 한다. 당은 최고지도자로써 푸로레타리아트의 모든 단체를 지도하며 수백만의 근로대중과 련결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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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만국푸로레타리아트의 조국 쎄쎄쎄르 만세 !

일. 세계혁명운동의 수령 스탈린동무 만세 !








1945.10.3. 해방일보



[ ...... 부르조아 민주주의 혁명과정에 있어서 전토지를 國有化하고 이것을 농민의 노력과 그 가족수에 비례해서 재분배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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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공산당 중앙위원회 명의로 발표된 〈土地는 農民에 適正分配-공산당의 토지문제에 대한 결의-〉에서 “부르조아 민주주의 혁명과정에 있어서 전토지를 國有化하고 이것을 농민의 노력과 그 가족수에 비례해서 재분배함으로써 완전 해결되는 것이다”(〈해방일보〉 1945.10.3)라 했다. 이것이 좌익계 문서에서 토지개혁이 곧 ‘國有化’임을 노출해 버린 유일의 기록이고, 여타의 경우는 모두 농민에게 ‘소유권’을 준다고 위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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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史館論叢 第25輯 > 農地改革硏究 (金聖昊)







194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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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1945년 10월 북조선 5도인민위원회 연합회의를 통해 북한에 독자적인 정권을 확립하는 문제가 기정사실화되고 이를 지도할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김일성이 주도적 역할을 한다.


▽이=그 무렵부터는 상황이 착착 맞아떨어진다. 5도인민위원회 연합회의가 끝난 10월 11일 미군연락장교가 소환되고, 13일에는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이 결성된다. 그리고 14일 김일성이 평양에서 대중 앞에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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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10.13. 김일성



[ ...... 볼셰비키적 지도하에서 우리의 볼셰비키진영을 일층 확대, 강화함으로써 목전에 다가온 모든 정책을 ....... ]



[ ..... 5도연합 회의가 박헌영 동지의 정당한 노선을 밟아 개최되는 데 대하여

전세계 무산계급의 조국인 소연방 스탈린 대원수에게 감사를 드리는 동시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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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문이 해방일보 1945년 11월 5일자 「정치노선 조직확대 강화에 관한 결정서」로 게재됐는데, 이것은 1945년 10월 13일 열성자대회에서 29개 항이 채택된 겁니다. 여기 14항에 “대회는 중앙에 충실히 복종할 것을 맹세한다”고 나와 있는데, 중앙은 박헌영의 조선공산당이었습니다. 이 결의서에 따라 김일성이 박헌영에게 보낸 대회에서 채택한 전문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금번의 세계대전에서 스탈린 대원수의 세계 평화의 해방을 위한 참으로 위대한 정책하에 시도된 영웅적 투쟁에 의하여 모든 유리한 조건이 실현된 조선에서 5도연합 회의가 박헌영 동지의 정당한 노선을 밟아 개최되는 데 대하여 전세계 무산계급의 조국인 소연방 스탈린 대원수에게 감사를 드리는 동시에, 조선 무산자계급의 영도자 박헌영 동지에게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


우리는 동지의 정당한 볼셰비키적 지도하에서 우리의 볼셰비키진영을 일층 확대, 강화함으로써 목전에 다가온 모든 정책을 기대하여 동지의 건강을 기원한다.


조선공산당 만세! 조선인민공화국 만세! 전세계 프롤레타리아의 영수, 스탈린 동지 만세! 조선무산자계급 영수, 박헌영 동지 만세!


1945년 10월 13일”



이런 내용의 편지문도 보냈어요. 이 내용이 임은의 일어판에도 나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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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2.9.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 ...... “북조선통일 민족전선은 나라 전역의 통일민족전선을 조직하기 위한 모범이자 기반이다” ........

...... 임시인민위원회가 전 조선 임시민족정부의 기반이 될 것 ....... ]



[ ....... 공산당, 인민당, 민주청년동맹, 직업동맹, 농민동맹 ....... ]



<1946년 2월 11일 쉬킨이 불가닌에게 보내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창설 관련 보고서>



대장 불가닌 N.A.(Булганин Н.А.) 동지 수신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창설에 대해 귀하에게 보고합니다. 금년 2월 9일에 평양시에서 제 민주정당, 사회단체, 도 및 군 인민위원회 지도자들의 확대회의가 개최되었습니다.

이 회의에서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구성원들이 선출되었습니다. 위원장에는 김일성, 부위원장에는 김두봉이 선출되었습니다.



2월 10일 평양시와 인근 마을들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임시인민위원회 옆에 위치한 시 광장에서 거행된 군중집회에 모였습니다. 도시는 조선의 전통 깃발과 소련, 미국, 영국, 중국의 깃발들로 장식되었습니다. 집회 참석자들 사이에 회의 결정이 적힌 삐라가 전파되었습니다.


평안남도인민위원회 위원장 홍기주가 집회 개시를 선언하면서 그곳에 모인 군중들과 함께 북조선 중앙정권의 선출을 축하하였습니다. 집회 참석자들은 열렬한 박수갈채와 환영의 함성을 지르면서 임시인민위원회 지도자인 김일성과 김두봉을 맞이하였으며, 회의의 결정에 완벽하게 단결할 것임을 표명하였습니다.


집회가 종료된 후에 10만 명이 참여한 시위가 거행되었습니다. 그 시위에는 도시 주민들 및 인근 부락들의 농민들과 함께 공산당, 인민당, 민주청년동맹, 직업동맹, 농민동맹, 조소문화연락협회, 여성동맹, 종교기구 “천도교” 등등이 참여하였습니다.


시위는 다음과 같은 구호 속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만세”, “북조선통일 민족전선은 나라 전역의 통일민족전선을 조직하기 위한 모범이자 기반이다”, “조선의 민주주의 와 자주성의 발전을 보장하는 모스크바회의의 결정을 지지하고 수호하라.” 또한 조선 인민과 소련과의 우호, 나라의 민주개혁 및 새로운 기반에서의 나라 공업과 농업의 재건 등을 나타내는 수많은 구호가 있었습니다. 시위 참여자들은 임시인민위원회가 전 조선 임시민족정부의 기반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표명하였습니다.


귀하에게 알리기 위해 상기 내용을 보고합니다.



상장 I. 쉬킨(И. Шикин)

1946년 2월 11일







1946.8.29 김일성



[ ...... “첫째로 北朝鮮의 民主主義根據地( = 民主基地)를 더욱 强化하며, 둘째는 우리의 民主主義的 모든 과업을 南朝鮮의 民主主義的 政黨 社會團體를 도와서 全朝鮮에 실행하도록 하여야 한다” ....... ]




國史館論叢 第27輯 > 北韓政治史硏究 序論(梁好民) > Ⅴ. 政治的 歸結-南北의 分斷




Ⅴ. 政治的 歸結-南北의 分斷



스탈린의 韓半島政策은 처음부터 명백했다. 남한에서도 北朝鮮人民委員會를 모델로 한 共產黨獨裁政權을 수립하여 전국을 당장 통일하던가, 그것이 불가능할 때는 북한의 共產黨政權을 강화하고 北韓을 革命의 근거지로 하여 앞으로 南韓을 解放, 全國的 統一을 이룩한다는 전략이었다. 이 점에는 추호의 모호한 점도 없었다. 이것이 이른바 ‘民主基地路線’이다. 오늘에 통용되고 있는 북한의 공식적 文件에 의하면 김일성이 처음 北朝鮮民主基地路線을 발표한 것은 1945년 12월 18일 朝鮮共產黨北朝鮮分局 제3차 擴大執行委員會에 서 한 연설에서였다고 한다. 여기서 그는 “우리 黨의 政治路線은…北朝鮮을 統一된 民主主義的 獨立國家 건설을 위한 强力한 民主基地로 轉變시키는 것” 註 093

이라 했다. 그러나 당시에 발표된 그의 연설원본에는 민주기지에 관한 말이 없다. 註 094



그렇지만 그가 민주기지란 말을 당시 사용하지 않았더라도 그가 이미 이때에 그런 구상을 했으리라는 것은 추측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런 구상은 國際共產主義運動에 있어서 바로 스탈린의 革命戰略이었기 때문이다.


미·소공동위원회가 열리기 한 달 전인 1946년 2월 9일 蘇聯軍政當局은 미국에 선수를 쳐서 ‘北朝鮮中央主權機關’으로써 김일성을 수반으로 하는 北朝鮮臨時人民委員會를 수립해 놓고 3월 5일에는 전격적으로 土地改革法令을 공포, ‘無償沒收無償分配’의 방식에 따라 土地革命을 단행했다는 것은 이미 언급한 바와 같다. 그러면 北朝鮮臨時人民委員會는 民主基地와 어떤 관계에 있는가. 1955년에 와서 북한의 官用歷史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우리 革命을 앞으로 추진시키기…위하여서는…우선…아주 빨리 朝鮮革命의 강력한 根據地를 창설할 것이 요구되었다. 이리하여 朝鮮人民 앞에는 北朝鮮民主基地를 위한 첫 대책으로써 北朝鮮의 中央主權機關을 조직할 과업이 제기되었다.…北朝鮮臨時人民委員會의 수립은 朝鮮命의 근거지, 즉 北朝鮮民主基地의 창설에서 朝鮮人民의 첫 승리를 의미하며 그 종국적 승리를 약속하는 것이었다. 註 095



北朝鮮臨時人民委員會가 출현한 당시에 金日成이 이상과 같은 말을 했다는 기록은 찾아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위와 같은 思考는 스탈린의 세계혁명이나 毛澤東의 中國革命戰略에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다. 이미 앞에서 논급한 바와 같이 김일성은 미·소공동위원회 제1차 회의가 열린 지 이틀 후인 1946년 3월 23일 ‘金日成장군 20개조 政綱’을 발표하고, 이것을 모스크바3相會議가 수립하기로 언약한 朝鮮臨時政府의 강령으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제4항에서는 全朝鮮人民은 지방의 행정기관인 人民委員會를 결성할 권리는 물론이요, 그 ‘義務’를 지닌다고 주장했다. 이 강령은 南韓까지를 共產化하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1946년 5·1 節때는 “앞으로 성립할 臨時政府는…人民의 총의를 집결한 人民의 강령인 20개조 정강을 그 基本綱領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거듭 주장했다.



소련이나 김일성은 이러한 20개조 政綱의 주장에 따라 통일정부를 수립할 수 있다고 기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미국이나 남한의 右派가 그의 공정한’ 주장을 거부할 때는 민족분열의 모든 책임을 이들에다 전가하면서 북한에다 ‘民主基地’를 창설하는 계획을 정당화하자는 것이었다.


1946년 8월 29일 아직도 미·소공동위원회가 존속하고 있던 때에 김일성은 北朝鮮勞動黨創立大會에서 한 발언에서 民主基地路線을 보다 명확하게 설명했다. 즉 “北朝鮮勞動黨의 중심임무는 朝鮮의 民主主義的 完全獨立을 하루바삐 촉진하는데 있다”고 前提하면서 이것을 위해서는 “첫째로 北朝鮮의 民主主義根據地( = 民主基地)를 더욱 强化하며, 둘째는 우리의 民主主義的 모든 과업을 南朝鮮의 民主主義的 政黨 社會團體를 도와서 全朝鮮에 실행하도록 하여야 한다” 註 096

고 했다. 그리고 결론은 日帝 때와 마찬가지로 反動派들에 의하여 억눌려 살고 있는 南朝鮮人民들을 “完全히 해방시켜야만 全朝鮮에 完全獨立이 있는 것” 註 097

이라고 北朝鮮民主基地에 의거한 南朝鮮解放을 역설했다.



이와 같이 北朝鮮民主基地는 남조선해방의 근거지임이 밝혀졌다.


1948년 3월 28일 미·소공동위원회가 사실상 결렬된 상황 하에서 열린 北朝鮮勞動黨 제2차대회에서 김일성은 민주기지의 반미성격을 더욱 뚜렷이 밝혔다.


…(北朝鮮에서의) 제반 民主改革의 승리야말로…현재 우리 祖國에 조성된 政治情勢하에서 北朝鮮을(우리 祖國을) 民主主義的으로 발전시키는 튼튼한 基地로, 또한 美帝國主義者들의 植民地 예속화정책으로부터 우리 祖國을 구원해내는 强力한 基地로 전변시켰다. 註 098



이어 그는 해방직후부터 民主基地의 창설을 생각했다는 것과 共產黨조직의 강화와 더불어 民主基地는 朝鮮民族을 ‘完全히 해방하기 위한 基地’였다고 이 노선에다 여태까지 숨겨온 黨性을 명백하게 公言하였다.



…8·15解放 직후 우리 黨은 蘇聯軍隊가 진주한 有利한 조건하에서 먼저 北朝鮮에서 民主主義的인 基地를 굳게 다지고 朝鮮民族을 完全히 해방하며 朝鮮을 부강한 民主國家로 만들기 위한 基地를 구축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똑똑히 알고 있었다. 이런 일은 우리 黨조직을 더욱 强化하여 大衆政黨으로 발전시키며 人民大衆을 黨주위에 굳게 단결시킴으로써만 가능하였다. 註 099



소련의 北朝鮮民主基地 노선이 이와 같이 명백하고 확고부동했던 상황하에서 설사 右翼이 信託統治案을 수락했다고 해도 미·소공동위원회가 원만하게 타협하여 통일민주정부를 탄생시키는데 주동적 역할을 할 수 있었으리라는 것은 처음부터 기대할 수 없었던 일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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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db.history.go.kr/item/level.do?itemId=kn&setId=319211&position=0






1946.9.25. ‘절대 비밀’



[ ...... 지난 1년 동안 붉은 군대가 준비하고 추진한 민주개혁의 성과를 보고 .......


...... 진정한 해방자인 붉은 군대에 대한 감사의 뜻을 높여야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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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비밀’이라는 도장이 찍힌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결정집에는 김일성이 1946년 9월25일 열린 북로당 중앙위원회 제2차 회의에서 “지난 1년 동안 붉은 군대가 준비하고 추진한 민주개혁의 성과를 보고 북조선인민들은 붉은 군대에 대한 인식을 깊게 했다. 우리 인민들은 진정한 해방자인 붉은 군대에 대한 감사의 뜻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개혁 프로그램 등 지난 1년 동안 북조선에서 진행된 모든 정치프로그램이 모두 소련군정에 의해 기획되고 추진됐음을 명쾌하게 밝히는 문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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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 X파일: 김일성 낙점, 북한정권 탄생의 비화

인보길
2011-10-25
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11/10/25/201110250006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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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이 그러한 군대를 갖게 됨에 따라 무력통일에 한층 더 자신감을 가졌을 것이다. 1947년 5월 10일 중공에 파견된 의용군 지휘자회의에서 최용건이 행한 아래의 발언은 김일성의 의중을 대변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조선은 곧 우리의 것이 될 것이다. 현재 만주에서 국민당군을 내몰고 있는 민주연군(聯軍) 내에 우리 병사가 들어있지 않은 부대는 단 하나도 없다. 만주출정이 끝나면 이들 군대는 잘 길들여진 훈련된 노련한 군대가 될 것이다. 미군과 소련군이 철수하면 우리는 즉시 (남)조선을 해방할 수 있을 것이다”53) 브루스 커밍스, 위의 글, 283쪽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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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 - 47


소련 --- 남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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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중도의 3자 대결구도 속에서 좌익진영은 한편으로는 좌익진영을 통일·강화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미군정과 우익진영을 공격하는 폭력투쟁을 전개했다. 좌익진영은 모든 좌익세력을 하나의 대중정당으로 통일·강화하라는 소련의 지령에 따라 46년 여름부터 기존의 3개 좌익정당, 즉 공산당 신민당 인민당을 합쳐 남조선노동당을 만들었다. 좌익정당 통합과정에서 전개된 당권투쟁에서 박헌영파에 밀린 여운형과 백남운 추종세력들이 별도의 좌익정당을 만들었으나 좌익세력의 압도적 다수는 남로당에 참여했다.


좌익진영은 이처럼 좌익정당 통합을 전개하면서 동시에 미군정의 남한사회 통제력을 약화시키고 우익진영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46년 9월 하순부터 10월 하순까지 남한 전역에서 노동자 총파업과 농민폭동을 일으켰다. 그들은 도시지역에서는 노동자 총파업을 전개하여 산업활동을 마비시키고, 농촌지역에서는 농민폭동을 일으켜 각 지방 경찰관서를 파괴하고 경찰관 및 우익인사들에 테러를 가했다. 좌익진영은 또한 미군정이 남조선과도입법의원 설치를 위한 선거를 보이콧하여 미국의 한반도정책 실행을 방해했다. 1947년 들어서서도 좌익진영은 국립 서울대학교설립안 반대투쟁(국대안반대투쟁), 3·1절 군중투쟁과 3·22 총파업투쟁 등 폭력투쟁을 전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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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로 쓴 현대한국정치사(제1공화국)

[2005-12-09]






1947.1.22. 소련



[ ..... 1946년 10월에 있은 남조선의 인민의 광범위의 □□은 ..... 붉은 군대가 완수한 민주주의의 중대성을 전세계에 자랑하는 성과있는 결과로 ....... ]



[ ...... 붉은 군대의 입장을 유리하게 하기 위하여 남조선 인민들은 남조선노동당의 계획 밑에서 광범위의 혁명을 일으킬 임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혁명은 반동 미군정의 입법기관을 반대하고 남조선의 군정을 파괴하는 투쟁과 연결하여야 할 것 ....... ]



북조선 주둔 소군사령부 교육관 쿠즈노프가 허헌에게 보낸 서한의 내용



동아일보 1947년 02월 18일


북조선 주둔 소군사령부 교육관 쿠즈노프가 허헌에게 보낸 서한의 내용

(略)

1947년 1월 22일

북조선주둔소련사령부

교육관

니콜라이 쿠즈노프少佐



남조선노동당위원장

許憲 貴下



1) 세계 최대강국인 쏘비에트연방의 외상 인민위원동지 몰로토프와 英·佛·美 등 세계 4대강국의 외상들은 장차 쏘비에트연방의 수도 莫斯科에서 전세계 약소민족의 해방을 위하여 회의하게 되었습니다.


1945년 12월에 莫斯科에서 개최되었던 삼상회의에서 채택된 조선의 민주수립을 보장하는 진보적 삼상결정을 남조선에 있어서 친일파 파씨스트 민족반역자의 두목 金九 李承晩의 반동 테러단들이 맹렬히 반대하고 또 이것을 남조선의 반동 미군정이 격려 조장하고 있는 때문에 마침내 소미공동위원회는 결렬되고 말았습니다.


2) 입수된 신용할 수 있는 정보에 의하면 來 3월 10일부터 莫斯科에서 개최되는 4대강국 외상회의에서 조선을 해방하여 줄 붉은 군대의 입장을 유리하게 하기 위하여 남조선 인민들은 남조선노동당의 계획 밑에서 광범위의 혁명을 일으킬 임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혁명은 반동 미군정의 입법기관을 반대하고 남조선의 군정을 파괴하는 투쟁과 연결하여야 할 것입니다.


3) 1946년 10월에 있은 남조선의 인민의 광범위의 □□은 □□적 제국주의자 미군정의 반동성을 전세계 인민들에게 □□시키고 이와 반대로 북조선에 주둔한 붉은 군대가 완수한 민주주의의 중대성을 전세계에 자랑하는 성과있는 결과로 되었습니다.


다음에 기재된 종합적 계획안에 의하여 남조선에 있는 전부의 학교에서는 □□□의 조직적 맹렬한 투쟁을 시작할 것을 명령합니다. 이 혁명적 투쟁을 제1차로 國大案을 합법적으로 맹휴하여야 됩니다.







1947.10.31. 뉴욕타임즈 사설



[ ...... 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교섭을 그의 점령지대에 소련의 확고한 정권을 수립하고 미국점령지대까지도 접수할 용의를 한 조선인 괴뢰부대를 창설할 때까지 정돈시키었다. ....... ]



「뉴욕타임즈」, 소련의 조선문제에 대한 조치를 논평하는 사설게재



경향신문 1947년 11월 01일



[뉴욕31日發UP 朝鮮] 뉴욕타임즈紙는 사설에서 UN에서의 소련의 조선문제에 관한 조치를 중요시하여 다음과 같이 논평하였다.


“UN에서의 소련의 조선문제에 관한 공작은 특히 중요시된다. 이는 전술 채용의 연습인 것이며 만약 현재에 있어 성공한다면 런던에서의 독일과 오스트리아에 관한 4상회의에서 취할 소련의 전략의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조선에서의 소련의 방해적 전술은 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교섭을 그의 점령지대에 소련의 확고한 정권을 수립하고 미국점령지대까지도 접수할 용의를 한 조선인 괴뢰부대를 창설할 때까지 정돈시키었다. 소련의 제안에 의하여 미소 군대의 즉시 철퇴를 실시한다면 조선은 완전히 적군에게 정복을 당하게 될 것이다.”








1948 조소앙



[ ..... “북한은 이미 병영(兵營)사회가 됐더라. 앞날이 걱정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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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소앙 선생은 1948년 김구(金九)·김규식(金奎植) 선생과 함께 남북협상차 평양에 다녀오신 후 늘 “북한은 이미 병영(兵營)사회가 됐더라. 앞날이 걱정이다”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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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N&nNewsNumb=201006100082

2010년 6월호
[李哲承] 학도병 모아 대구 死守에 일조

아버지는 전주형무소에서 인민군에게 학살, 장인은 폭격으로 돌아가셔
전국학련 구국대 결성해 낙동강 방어선 지켜내
대구 사수한 조병옥 내무장관은 ‘제2의 이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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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 사노맹 박노해



[ ...... 김일성주석을 뜨거운 감격으로 떨리는 입술로 당신을 부른다

주체적 각성으로,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당신을 부른다. 존경하는 김일성주석 ........ ]




안기부 발표 / 박노해씨 「투쟁성향」 분석


[중앙일보] 1991.04.03



◎시 내용에 김일성 찬양문구 많아/사용자 대한 근로자 적대감 고취/「신혼비용」·「호랑이사냥」작전 통해 자금 모아



안기부는 「얼굴없는 노동자시인」으로 알려진 박노해씨에 대한 조사결과 「박씨가 북한을 적극 추종하고 김일성을 숭배하면서 사회주의 폭력혁명을 신봉해온 사실이 입증됐다」고 밝혔다. 안기부의 발표문중 박씨의 사상·투쟁성향 부분과 「보급투쟁」으로 활동자금을 확보한 경위 등을 요약한다.<편집자주>


◇친북적 사상성향=박씨는 그동안 일부잡지와의 서면인터뷰·수기 등을 통해 「사노맹은 북한과 전혀 관계가 없는 독자적 사회주의노선을 추구하고 있다」 「나는 민주주의자· 평화주의자다」고 주장했으나 박씨가 쓴 시를 보면 북한과 김일성을 적극 추종하고 있다고 안기부는 분석했다.


박씨는 89년 6월 사노맹기관지 「노동해방문학」에 게재한 「존경하는 김주석」이란 제목의 시에서 『동토의 왕국은 자부심 가득한 「인민의 왕국」이라 한다』 『북조선 근로인민의 자랑스런 대표자, 김일성주석을 뜨거운 감격으로 떨리는 입술로 당신을 부른다』 『주체적 각성으로,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당신을 부른다. 존경하는 김일성주석』이라는 등 김일성을 적극 찬양했다는 것.


박씨는 또 조사과정에서도 ▲나는 김일성주석을 존경한다 ▲양반의 앞잡이였던 이순신,민족주의자에 불과한 김구에 대한 교육은 하면서 김일성장군이 위대하다는 교육은 안하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주장을 했다는 것이다.


박씨는 「죽창을 세워들고」란 자작시에서도 『총과 낫·죽창을 들고 자본가를 쓸어 버리자』 『노동해방·농민해방을 피로써 쟁취하자』는 등 섬짓한 표현으로 자본가·사용주에 대한 근로자들의 적대감을 고취시켜 왔다는게 안기부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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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 생활주변=박씨는 그동안 월간지등에 투고한 글과 유인물 등을 통해 자신이 심한 투병생활을 하고 있는 것처럼 주장해왔으나 실제로는 노동자의 삶과는 전혀 다른 호화·사치생활을 해왔다는 것이 안기부의 설명이다.


박씨는 1월7일부터 자신의 비밀아지트인 서울 잠실 한신코아오피스텔에 여자조직원 김기선씨(27·노동문학사 기자)를 비서로 근무시키면서 자신의 건강관리계획서를 짜도록 지시했다는 것이다.



김씨가 「컴퓨터·소프트웨어회사 운영계획서」라는 위장명칭으로 수립한 박씨에 대한 건강관리계획서는 ▲매월 5만원짜리 자라 5마리와 매일 3회 월40만원어치의 보약 복용 ▲매끼 백화점에서 구입한 신선한 야채와 해물류로 식단 작성 ▲정수기 설치,생수복용 ▲매일 수영장에서 체력단련 등 노동자로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호화생활을 담고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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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joins.com/article/2549182







[ .... 통일 한국중공업을 무기탈취대상으로 선정, 탈취계획서 를 작성 .....

..... 사제폭탄 제조법 총기제작법 무기탈취방법 등을 연구 ........ ]




총파업 일으켜 체제전복 목표



사노맹 수사 안기부 발표 요지


혁명지도할 노동자당 결성 기도
재벌재산 몰수 등 내세워 빈민 호응 모색
학-노 등 각분야 침투 민족민주혁명 확산




1990.10.31 / 18 면



사노맹결성과 목표



사노맹은 89년 11월12일 전노협결성을 위해 서울대에서 열린 전국노동자대회 현장에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출범 선언문을 뿌리면서 처음 그 모습을 드러냈다.


사노맹은 이 유인물에서 "특별히 북한의 조선노동당과 소비에트연방 공산당 동지들에게 남한땅에도 마침내 남한사회주의 노동자동맹 이 출범했음을 뜨거운 감격으로 보고 드린다"며 "부패타락한 지배체제의 한 복판을 뚫고 이땅에서 태어나 자본가계급과의 투쟁속에 성장해 온 혁명적사회주의자 들이 그 모습을 온 세상에 당당히 드러냈다"고 그 자생성을 강조했다.



사노맹의 핵심지도부는 84년 서울대학도 호국단 총학생장이었던 백태웅(27ㆍ가명 이정로ㆍ서울대 공법4년제적)과 노동시인 박노해로 알려진 박기평(32) 등으로 이들은 남XX 김XX 김XX 등과 함께 사회주의 혁명을 지도할 노동자당 결성에 합의,89년2월 노동계 대학가의 핵심인물 1백40여명을 규합, 사노맹 출범준비위를 구성한뒤 89년11월 출범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사회주의 혁명기반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기위해 훈련된 조직원을 각 사업장에 침투시켜 공장소조를 만들고 세포분열식으로 조직을 확대하는 이른바 공장의 혁명요새화 를 꾀해왔다.



사노맹의 목표는 노사분규 현장에서 노동해방선봉대 전투특공대 등을 조직,노동자를 배후선동해 임금투쟁을 정치혁명투쟁으로 격화시켜 총파업으로 유도한뒤 기간산업 마비와 경제교란 등 결정적 시기에 봉기,일거에 체제를 뒤엎고 사회주의 혁명을 달성한다는 것이다.


이를위한 90년도 중점수행 과제로 사회주의혁명 선전,선동의 대중적확산 노동자 계급주도 합법 민중정당 결성 전국 주요공장에 혁명적 사회주의자 공장소조창출 학생운동의 노동자계급 동맹세력화 등 8대 투쟁목표를 제시,노동자 농민 빈민 등 소외계층의 호응을 이끌어 내기위해 독점재벌 재산몰수 국유화 물가관리 민중위원회 설치 농축산물 수입개방저지 등을 투쟁슬로건으로 내세웠다.



조직체계



사노맹은 레닌의 당조직전술원칙 을 모방, 중앙위원회 를 최고지도부로 그 밑에 조직위 편집위 각시도지방위 를,부설조직으로 남한사회주의 과학원 노동해방연구소 사회주의 학생운동연구소 민주주의 학생연맹을, 조직원파견 그룹으로 민중당 전노협 노동해방문화사 등을 두고 단위조직을 철저히 비밀운영해왔다.

특히 실천지도부인 조직위는 조직관리와 재정을 전담하는 사무국과 조직수호,면학,유인물배포 등을 전담하는 연락국으로 구성돼 있으며 이중 연락국은 무장봉기를 위한 폭발물개발,무기탈취계획,독극물개발 등의 특수임무도 맡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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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관리와 비밀활동


각 분야의 혁명인자 를 물색,자기소개서를 제출케한뒤 사상성,비밀활동 능력 등 50여가지 기준에 따라 엄격한 심사를 거쳐 조직원으로 포섭된다. 이들은 1개월~1년의 사상교육 체력훈련 등과 함께 일상용어 음어화 철저한 안가관리 조직기밀유지 등 10대 조직보위수칙을 교육받는다.



이들은 서울시내 오피스텔과 상가 등에 10여개의 안가 를 확보해 놓고 수사기관의 수색에 대비,가스총 도검류 쇠파이프 염산 등을 비치해 두었으며,검거때 문서와 메모지를 즉시 소각 또는 삼키도록하고 기밀유지를 위해 자살용 독극물 캡슐까지 개발중이었다. 사노맹조직원들은 조직자금 마련을 위해 1인당 3백만~1천만원씩 책임제로 모금하고 친지집을 상대로 강 절도를 하거나 위장결혼식으로 축의금을 받고 속셈학원,비디오테이프 가게 등을 운영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주요투쟁사례


혁명이념의 대중적 확산을 위해 합법적인 월간지 노동해방문학 과 출판사 노동문학사 를 통해 89년4월~12월까지 15만여부의 선전책자를 발간했다. 또 비합법적인 지하기관지 한걸음더 새벽바람 과 유인물 긴급전술결의 등 40여종 20만부 가량을 제작,전국 대학과 노동현장에 뿌렸다.



사노맹은 각 운동단체를 ndr(민족민주혁명) 노선으로 통일하기위해 민중당,인민노련,전노협,카톨릭대학생연합회 등에 조직원을 침투시켜 정파투쟁 을 전개하고 노동자신문 말 지,대학신문 등의 기고문을 통해 ndr 이념전파 및 타정파와의 사상투쟁을 벌여왔다.



또 공장의 혁명요새화 원칙에 따라 무장봉기때 방위산업체인 창원공단내 통일 한국중공업을 무기탈취대상으로 선정, 탈취계획서 를 작성했으며 인천지방위원회에선 사제폭탄 제조법 총기제작법 무기탈취방법 등을 연구하는 등 무장봉기계획을 짜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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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인물 인적 사항



안기부가 발표한 사노맹의 핵심지도부 관련자들의 인적사항,경력 등은 다음과 같다.


백태웅(27ㆍ사노맹총책겸 중앙위원ㆍ수배중)=부산 동성고를 졸업하고 81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84년3월 서울대총학생회장을 지내다 그해 9월 제적됐다. 84년11월 서울대 교대 프락치사건으로 1년간 복역했으며,87년6월 노동자 해방투쟁동맹 핵심 간부로서 서울 구로공단에 있는 한국전자 노사분규를 배후 선동한 혐의로 수배됐다.

89년 4월이후 이것이 정통 정치노선이다 의 준말인 이정로 라는 가명으로 월간노동 해방문학에 식민지 반자본주의론에 대한 파산선고 사회주의 위기의 근원,고르바초프 개혁조선의 우편향 비판 등 논문을 기고했다.



박기평(32ㆍ사노맹 중앙위원ㆍ수배중)= 박해받는 노동자 해방 의 준말인 박노해 라는 가명으로 노동의 새벽 등 시집을 냈다. 77년2월 선린상고 야간부를 졸업한뒤 82년7월 서울 성수동의 마그마 운전사,84년 6월에는 경기도 안양에 있는 안남운수의 운전사로 일했다. 89년4월 박노해 시인의 긴급 호소 라는 유인물에 현실적 통일방안을 가진 김일성을 존경한다 는 내용의 존경하는 김주석 이라는 시를 게재해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수배됐다. 83년3월 김XX와 결혼했고,89년 4월부터는 노동해방문학에 파업에 나선 노동형제들에게 김우중회장의 자본철학에 전면비판 등 시와 평론을 기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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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rchdb1.chosun.com/pdf/i_service/read_body.jsp?ID=9010311803








[ .... 무장봉기를 통한 남한에서의 사회주의국가건설 ......

.... 노동해방문학에 쓴 비폭력노선은 민중에 대한 테러이다 ......

.... 죽창을 세워들고 등의 자작시를 ....... ]



[ ..... 존경하는 김주석 이라는 시에서는 김일성을 극렬하게 찬양 ....... ]




안기부 발표 박씨 도피생활

김일성 찬양시 여러편 써

오리스텔 3곳 얻어 여 조직원과 동거도



1991.04.04 / 22 면




노동자시인 박노해씨를 중심으로 한 사노맹에 대한 안기부의 수사는 근래있었던 공안사건중 최대규모이다.

구속자도 54명이나 되며,안기부는 지명수배자가 1백50여명에 달한다고 밝히고 있다.



안기부는 3일의 수사발표에서 박씨의 노선이 무장봉기를 통한 남한에서의 사회주의국가건설이었다고 밝혔다. 안기부는 그 증거로 박씨가 월간지 노동해방문학 에 쓴 비폭력노선은 민중에 대한 테러이다 라는 제목의 글과 죽창을 세워들고 등의 자작시를 들고 있다.



안기부는 또 그간 제도권 정치에 관심을 보여 온 민중당의 정책위원장 장기표씨나 부총재 이부영씨 등에 대한 박씨의 비난도 그같은 맥락에서 봐야한다고 설명하고 있으며,장씨의 경우 박씨의 사노맹조직이 그를 민중당 조직에서 밀어내려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안기부는 이와함께 박씨가 쓴 여러편의 글을 예시하며 박씨가 북한을 적극적으로 추종하고 김일성을 숭배해왔다고 밝혔다. 89년6월 노동해방문학 에 쓴 존경하는 김주석 이라는 시에서는 김일성을 극렬하게 찬양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안기부는 박씨가 조직원들에게 자살용 독극물의 개발을 지시했다든지,조직이 보호를 위해서는 생명도 아끼지 말라고 교육한 점을 들어 사노맹을 극렬 지하테러조직으로 이끌어온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안기부는 박씨의 도피생활과정에 대해서도 발표자료에서 상당부분을 할애해 언급하고 있다. 박씨는 일반의 예상과는 달리 호화-사치생활을 해왔다는 것이다. 안기부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박씨는 서울의 잠실과 강남 등 모두 세곳에 오피스텔을 얻어두고 자신의 처와 여비서 등과 함께 생활해 왔다는 것이다.


안기부는 압수된 박씨의 건강관리계획서 에 박씨가 매달 3번씩 5만원짜리 자라를 보신용으로 먹도록 되어있었다든지 매일 수영장에서 체력을 단련토록 정하고 있었다는 사실 등을 지적하고 있다. 박씨는 이 과정에서 미모의 여자조직원과 애정행각을 벌이기도 했고,이 때문에 처 김XX씨와의 사이가 멀어지기도 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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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rchdb1.chosun.com/pdf/i_service/read_body.jsp?ID=9104042203









1991 조국 우리사상 창간특집



[ ...... 우리의 임무는 ‘페레스트로이카’와의 투쟁 속에서 맑스-레닌주의의 혼을 수호하고 이 위기를 남한 변혁의 수행을 통하여 타개하는 것이다. .........


....... 논쟁은 단지 ‘말’에 의해서가 아니라 ‘행동’을 담보하는 강령논쟁이어야 ........ ]




레닌, 마르크스, 스탈린의 말을 金科玉條처럼 소개한 조국



조갑제닷컴



조국이 류선종이란 가명으로 쓴 아래 글은 레닌주의를 계승하여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체제를 전복해야 한다는 결의로 가득하다. 레닌, 마르크스, 스탈린의 말을 金科玉條처럼 소개하고 있다. 조국의 1990년대 초 생각은 '골수레닌주의'임을 알 수 있다. 이 사상으로부터 전향했다는 증거는 없다.





우리사상 창간특집

PDR론-민주주의혁명에서의 좌편향, 사회주의혁명에서의 우편향



류선종

61년 인천생‧변혁이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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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맺음말



우리는 이상에서 ‘PD파’의 ‘좌’편향적, 경제주의적 변혁이론을 비판하기 위하여, 러시아혁명에서 레닌의 혁명이론과 동구 인민민주주의혁명의 경험을 검토하고, 남한 변혁운동상의 몇 가지 쟁점을 다루었다. 이속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남한 당면변혁을 ‘노동해방변혁단계’와 질적으로 구분되는 ‘민주주의변혁단계’라고 규정한다. ‘신식민지성’이라는 남한 자본주의의 특수성과 현재 계급투쟁의 진전 정도와 계급역관계는 사회주의로의 최종적 이행에 앞선 예비적 단계로 반제 반파쇼 반독점의 내용을 갖는 변혁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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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프롤레타리아트의 헤게모니하에서 민주주의를 지지하며 비타협적으로 투쟁하는 민중 일반의 연합권력에 의하여 수행되는 변혁으로서, 통일된 민주주의 민중공화국 수립을 목표로 하는 민족적 과제와 민주적 과제가 통일된 변혁이다. 이 점에서 ‘통일투쟁’ 등의 소부르주아의 투쟁에 대한 ‘지도’의 관점이 중요하다.


이러한 당면 혁명은 첫째로, 주체가 프롤레타리아트와 근로인민이라는 점과, 둘째로, 남한사회 내에 ‘노동해방사회’를 위한 물질적 기초가 충분히 마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노동해방변혁’으로의 급속한 성장 전화의 길을 필연적으로 걷게 된다. 요컨대 “민족민주혁명 속에는 이미 이 혁명을 사회혁명으로 전환시키는 장래성이 포함되어 있”으며, 당면 혁명은 바로 ‘노동해방변혁’의 서막으로서 ‘노동해방변혁’을 위한 물적 토대를 제공할 것인 바, 당면 혁명과 ‘노동해방변혁’은 “동일한 사슬의 두 고리”인 것이다! 우리는 ‘노동해방변혁’으로의 이행의 연속성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 전략단계 마다의 특수한 주요과제를 규정하고 실현해내야 한다.



‘페레스트로이카’를 계기로 하여 현존 사회주의국가에서의 사회주의건설의 문제점을 교정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 교정을 위한 투쟁은 레닌주의적 원칙에 입각해서 이루어지지 못하고 오히려 레닌주의를 수정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그 결과는 세계 사회주의운동의 후퇴였고 패배였다. 문제는 레닌이 ‘제1강화기’에 등장한 사회민주주의적 경향에 대한 투쟁 속에서 맑스주의의 혼을 수호하였듯이, 현시기에 있어서 우리의 임무는 ‘페레스트로이카’와의 투쟁 속에서 맑스-레닌주의의 혼을 수호하고 이 위기를 남한 변혁의 수행을 통하여 타개하는 것이다.



‘스탈린적 편향’에 의해 만들어졌던 ‘봉쇄된 위기’는 그 해결주체의 잘못된 실천과 맞물리면서 폭발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이러한 세계 사회주의운동의 후퇴현상과 대조적으로 남한 ‘노동해방변혁운동’은 성장하고 있음을 명심하여야 한다. 80년대 후반기 이후 남한 변혁운동진영 내에서는 본격적인 ‘노동해방주의자’가 등장하였고, 이는 노동자계급 대중운동과 급속히 결합해 가고 있다. 그리고 아직 그 영향력에 있어서 미약하지만 세계 어느 나라 못지않게 남한의 노동해방진영이 전투적이고 원칙적인 관점을 견지하고 있음은 남한 사회의 발전전망을 밝게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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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한 이 논쟁은 단지 ‘말’에 의해서가 아니라 ‘행동’을 담보하는 강령논쟁이어야 할 것이다. 즉 당면한 계급투쟁에 대한 조직적 지도와 개입없이 “이론의 완결성을 구비한 후에 실천하자!”는 식, 또는 “선전 후에 선동하자!” 식이라면 정말 곤란하다. “모든 나라 사회주의자들이 이끌리는 이 이론(맑스주의 이론)의 저항할 수 없는 매력은 바로 그것의 엄격하고 최고로 과학적(사회과학에서의 최후의 말이다)인 특질과 혁명적인 특질을 결합시켰다는 사실에 있다”는 레닌의 말처럼 ‘혁명성’없는 ‘과학성’은 무의미하다. 그리고 서로의 입장에 대한 철저한 비판과 동시에, 타 정파에 대한 ‘분파’적 태도가 아니라 혁명적 노동해방주의진영 전체의 강화라는 관점이 견지되어야 할 것이다. 동지들! 모두 “우리의 이론은 도그마가 아니라 행동의 지침이다”라는 맑스의 말을 명심하자! 우리는 레닌의 말투와 비유를 써먹기 위해서 논쟁하는 것이 아니다.



동지들! “사상이 인민을 장악할 때 그것은 힘으로 전화된다”라는 레닌의 말을 명심하자. 진군하는 노동자계급을 자신의 해방사상, 즉 ‘혁명적 노동해방주의’로 물들여야 한다. 바로 이것만이 우리의 활로이다. 파쇼정보기관의 추적과 함께 유난히도 추웠던 또한번의 겨울이 가고 생명이 고동치는 봄이 왔다. 그 하나하나의 변화를 놓치지 말고 주목하라. 어느 순간 이 산천은 진달래꽃으로 붉게 물들어 뜨겁게 타오르고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동지들! 역사발전의 ‘자연사적(自然史的) 필연법칙’을 굳게 믿고 우리의 실천으로 그 법칙을 구현해내자! 승리는 우리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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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9-30 ]

https://www.chogabje.com/board/view.asp?C_IDX=84818&C_CC=AZ







1992.1. ‘우리사상’ 제2호



[ ......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괴물을 불살라 버리는 데 기름이 되는 것은 오직 노동해방뿐” ........


....... “남한 사회에서의 혁명은 무장봉기에 대한 고려없이 승리를 기약할 수 없다” ......... ]



2019-08-16



“남한 무장봉기 필요”…김진태 “조국 사노당 기관지…이석기 보다 위험”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참여했던 '남한사회주의과학원(사과원)' 기관지에 김대중 전 대통령을 '민중 배신'으로 평가하거나 '무장 봉기'가 필요하다는 내용이 등장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은 16일 페이스북 등에 조 후보자가 제작에 관여했다는 설명과 함께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산하 사과원 기관지 ‘우리사상’ 제2호 내용 일부를 공개했다.


‘우리사상’ 제2호는 1992년 1월 발간된 기관지로, 표지에는 ‘1994년 봄까지 남한사회 노동자당을 건설하자’, ‘민중 배신으로 점철된 김대중의 정치편력’, ‘소련의 정치 기상도’ 등의 제목이 강조돼 있다.


이 기관지의 발간사에는 “민중의 눈으로 본 김대중의 편력은 한때는 민주주의 전선의 선두에 서 있던 자유민주주의 부르주아지의 지도자가 지금은 왜 역사의 걸림돌로 전락하고 있는지 통렬히 폭로해준다”고 적혀있다.


사과원 간부의 기고문에는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괴물을 불살라 버리는 데 기름이 되는 것은 오직 노동해방뿐”이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또 다른 기고문에도 “남한 사회에서의 혁명은 무장봉기에 대한 고려없이 승리를 기약할 수 없다”, “우리가 지금 해야할 점은 평화적 이행이 아니라 강력한 투쟁역량이다”등의 글이 담겨 있다.


김 의원에 따르면, 1995년 5월 대법원 판결문은 조 후보자에 대해 “반국가단체인 ‘사노맹’의 활동에 동조할 목적으로 사과원에 가입하고, 사노맹이 건설하고자 하는 남한사회주의 노동자당의 성격과 임무를 제시하며, 이를 위한 노동자계급의 투쟁을 촉구하는 내용이 수록된 ‘우리사상’ 제2호를 제작·판매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조 후보자는 당시 ‘최선생’, ‘고선생’, ‘정성민’이라는 가명으로 활동했다고 판결문은 밝혔다.


김 의원은 "(조 후보자는)이석기RO보다 대한민국에 위험한 인물"이라며 "그런데도 본인은 자랑스럽지도 부끄럽지도 않다고 한다. 이 말은 그 자체로 모순이다. 이렇게 말장난을 하면서 지난 날을 반성하지도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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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donga.com/news/View?gid=96989150&date=2019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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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



[ ..... 송갑석은 ... “김일성 ... 정정한 모습에 흐믓함을 느낀다. .... 북한에 의한 통일만이 진정한 조국통일이다” ......... ]




[ ..... 미대사관폐지, 미군철수 ... 국가보안법철폐, 현정권타도, 평화협정체결, 고려연방제에 의한 통일 ........

..... 주사파(主思派)지하조직에 의해 장악, 조종 ........ ]




[ ..... 위대한 수령 김일성 장군님을 따라 숨통이 끊어지는 그날까지 죽음으로 혁명을 .......


..... ‘반제청년동맹은 김일성장군님과 한민전의 향도에 따라 나아가는 김일성주의 청년혁명조직이다. ....... ]




“전대협 의장들 모두 주사파조직원”


written by. 김성욱




92년 안기부 수사 발표..386의원들은 否認 일관


송갑석 “北에 의한 통일만이 진정한 조국통일” 등 수사과정서도 주사파 발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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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협, 반미청년회 등 주사파 지하조직이 장악



우선 대법원은 92도1244, 92도1211, 93도1730 등의 판례를 통해 전대협의 노선을 결정하는 ‘정책위원회’는 ‘북한이 주장해온 민족해방인민민주의혁명(NLPDR)에 따라 우리 사회를 미제국주의식민지로, 우리 정권을 친미예속파쇼정권으로 규정하는 전제 하에, 반전과 반핵, 미대사관폐지, 미군철수, 팀스피리트 훈련의 영구폐기, 국가보안법철폐, 현정권타도, 평화협정체결, 고려연방제에 의한 통일 등을 주장하는 이적단체(利敵團體)’로 판시한 바 있다.


당시 안기부수사발표에서도, 전대협의 각 조직들은 지난 87년부터 88년까지는 ‘반미청년회’, 89년 이후는‘자주민주통일(자민통)’ ‘관악자주파’ ‘조통그룹’ ‘반제청년동맹’ 등 주사파(主思派)지하조직에 의해 장악, 조종돼 온 것으로 밝혀졌다.




주사파조직원 임종석 등 전대협의장으로



안기부가 91년 발간한 ‘전대협은 순수학생운동조직인가’ 등 공안문건들은 ‘87년 전대협 제1기 결성 이후 91년 6월 현재 전대협 제5기에 이르기까지 역대 전대협 의장은 모두 주사파 지하조직에서 파견한 핵심조직원’이었다며 이들 조직의 전대협 장악과정을 상세히 밝히고 있다.


구체적으로 전대협 제1기 의장 이인영의 경우, 86년 고려대
2020-10-25 18:4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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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반역타도구국 () 2020-10-25 18:4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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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



[ ..... 송갑석은 ... “김일성 ... 정정한 모습에 흐믓함을 느낀다. .... 북한에 의한 통일만이 진정한 조국통일이다” ......... ]




[ ..... 미대사관폐지, 미군철수 ... 국가보안법철폐, 현정권타도, 평화협정체결, 고려연방제에 의한 통일 ........

..... 주사파(主思派)지하조직에 의해 장악, 조종 ........ ]




[ ..... 위대한 수령 김일성 장군님을 따라 숨통이 끊어지는 그날까지 죽음으로 혁명을 .......


..... ‘반제청년동맹은 김일성장군님과 한민전의 향도에 따라 나아가는 김일성주의 청년혁명조직이다. ....... ]




“전대협 의장들 모두 주사파조직원”


written by. 김성욱




92년 안기부 수사 발표..386의원들은 否認 일관


송갑석 “北에 의한 통일만이 진정한 조국통일” 등 수사과정서도 주사파 발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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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협, 반미청년회 등 주사파 지하조직이 장악



우선 대법원은 92도1244, 92도1211, 93도1730 등의 판례를 통해 전대협의 노선을 결정하는 ‘정책위원회’는 ‘북한이 주장해온 민족해방인민민주의혁명(NLPDR)에 따라 우리 사회를 미제국주의식민지로, 우리 정권을 친미예속파쇼정권으로 규정하는 전제 하에, 반전과 반핵, 미대사관폐지, 미군철수, 팀스피리트 훈련의 영구폐기, 국가보안법철폐, 현정권타도, 평화협정체결, 고려연방제에 의한 통일 등을 주장하는 이적단체(利敵團體)’로 판시한 바 있다.


당시 안기부수사발표에서도, 전대협의 각 조직들은 지난 87년부터 88년까지는 ‘반미청년회’, 89년 이후는‘자주민주통일(자민통)’ ‘관악자주파’ ‘조통그룹’ ‘반제청년동맹’ 등 주사파(主思派)지하조직에 의해 장악, 조종돼 온 것으로 밝혀졌다.




주사파조직원 임종석 등 전대협의장으로



안기부가 91년 발간한 ‘전대협은 순수학생운동조직인가’ 등 공안문건들은 ‘87년 전대협 제1기 결성 이후 91년 6월 현재 전대협 제5기에 이르기까지 역대 전대협 의장은 모두 주사파 지하조직에서 파견한 핵심조직원’이었다며 이들 조직의 전대협 장악과정을 상세히 밝히고 있다.


구체적으로 전대협 제1기 의장 이인영의 경우, 86년 고려대 주체사상 신봉자들이 결성한 ‘전국사상 투쟁위원회(전사투위)’가 ‘전대협’의장 감으로 사전물색, 김일성 주체사상으로 철저히 무장시킨 후 87년 8월 출범한 전대협 제1기 의장에 당선시킨 것으로 밝혀졌다.


안기부는 또 수사를 통해 전대협 제2기 의장 오영식은 88년 1월20일 ... 전국대학생 72명을 규합, 결성한 주사파 지하조직 ‘반미청년회’ 출신임을 밝혀냈다.


전대협 제3기, 4기, 5기 의장 임종석, 송갑섭, 김종식 역시 주사파 지하조직 ‘자민통’이 전국 학생운동을 장악하기 위해 전대협에 침투시킨 지하조직원들이었다.


예컨대 제4기 전대협 의장선거의 경우, ‘자민통’은 조직원 송갑석과 윤XX를 후보에 출마케 하고 윤XX가 중도에서 자진사퇴하는 방법으로 송갑석을 당선시켰다.


또 다른 예로 제5기 정책위원회의 경우 ... 전원이 주사파지하조직인 ‘자민통’ ‘관악자주’ ‘조통그룹’에서 파견된 자들이었다.




“김일성수령님 만세, 김정일지도자동지 만세” 충성결의와 맹세



전대협을 장악한 주사파지하조직들의 이념성향은 강령과 결의문, 맹세문 등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주사파지하조직 ‘자민통’ 기관지는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을 향도이념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하여 오늘 한민전의 지위와 역할을 비상히 높아지고...’라는 식으로 시작된다.


90년 8월 이뤄졌던 ‘자민통’의 가입결성식에서는 ‘한민전’의 강령을 받아들이는 선서와 “김일성 수령님 만세! 김정일 지도자 동지 만세! 한국민족민주전선 만세!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만세!”등을 부른 후 아래와 같은 결의문와 맹세문을 선언했다.


‘위대한 수령님 김일성 동지와 우리의 지도자 김정일 비서의 만수무강과 한민전의 영도아래 이 한 목숨 끊어질 때까지 투쟁하겠다는 결의 결단으로 나아가자’

‘주체의 깃발 따라 계속 혁신, 계속 전진으로 위대한 수령 김일성 장군님을 따라 숨통이 끊어지는 그날까지 죽음으로 혁명을 사수하며 조국과 민족이 완전해방되는 그날까지 열사 헌신 하겠습니다’



주사파 지하조직 ‘반제청년동맹’의 강령은 아래와 같다.

‘반제청년동맹은 김일성장군님과 한민전의 향도에 따라 나아가는 김일성주의 청년혁명조직이다. 동맹은 미(美)제국주의 침략자들과 그 앞잡이를 몰아내고 조국을 평화적으로 통일한다’



전대협 의장 송갑석 “나는 김일성을 존경한다” 반복


91년 전대협에 대한 수사 당시 전대협 간부들은 김일성과 북한에 대한 강한 충성을 수사과정에서도 나타냈다. 당시 수사 결과에 따르면 제4기 전대협의장 송갑석은 “김일성을 존경한다”는 말을 반복했고 “김일성이 TV화면에 비칠 때면 건강하고 정정한 모습에 흐믓함을 느낀다. 북한은 정의와 자주권이 보장되있는 한반도의 유일한 정통정부이며 북한에 의한 통일만이 진정한 조국통일이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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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협 출신 제1기, 제2기, 제3기 의장들은 이번 17대 국회에 모두 당선됐다. 4기 이하 기수 의장출신들은 현재 열린우리당과 연계돼 정치활동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회 들어간 전대협 150여 명” 데일리안 보도



지난 17대 국회에서 열린우리당 공천을 받아 당선된 전대협 간부출신들은 12명에 달한다. 1기 출신이 김태년*우상호*이인영*이철우, 2기 출신이 백원우*오영식*정청래*최재성, 3기 출신이 임종석*복기왕*이기우*한병도씨 등이다.


그러나 전대협 출신은 국회의원에 한정되지 않는다. 인터넷매체 ‘데일리안’은 최근 ‘한국최대 기득권집단 전대협동우회’라는 기사를 통해 국회의원 이외에도 보좌관, 사무처직원 등으로 국회에 들어가 있는 전대협 출신들이 150여 명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여기에 노무현 대통령 측근 김만수 청와대 부대변인 등 350여 명에 달하는 청와대 직원 중 80여 명 가까이가 전대협 출신이라고 이 매체는 덧 붙였다.


2004-12-08
http://www.konas.net/article/article.asp?idx=5476






2015



[ ..... 학생운동 지도부가 대한민국 야당의 중심부를 장악 .......

..... 언론계, 출판계, 문화계, 법조계, ..... 사회 곳곳에 지지 그룹을 가진 가장 강력한 집단 ........

.....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집단 ......... ]




한국을 反美 기지로 만든 전대협

[이동호의 시대추적] 전향한 운동권 핵심인사의 참회록①


미래한국 2015.08.27



1980년대 학생운동의 주역 전대협과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혁명론(NLPDR)

전대협 출신들이 정치권의 중심 차지하면서 한미동맹 급속 악화, 反美, 북한 지도자와 북한 核 두둔, 한국 현대사 왜곡…



이 글은 한때 잘못된 사상과 인식 위에서 자랑스러운 우리 현대사를 흠집 내고자 했고, 잘못된 길로 가자고 주장했던 저에 대한 고백입니다. 과거의 학생운동 경력이 더 이상 자랑스러운 훈장으로 인식되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우리 사회에 대한 부끄러운 기록이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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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다시 전대협에 주목해야 하는가?


1980~90년대 한국의 학생운동은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의 약칭)과 그의 후신인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의 약칭)이 주도한 시대였다. 한국 학생운동은 전 세계적으로 그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격렬하고 그 규모가 압도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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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 년이 흐른 지금, 당시 학생운동 지도부는 우리 사회의 주역으로 성장하여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민련) 지도부에 그들의 이름을 내걸고 있다. 새민련 지도부뿐만이 아니다. 국회의원, 당료, 실무자, 보좌관 등 새민련 곳곳에서 학생운동권 출신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학생운동 지도부가 대한민국 야당의 중심부를 장악하고 한국 정치의 중심으로 진출해 있는 것이다.


이들은 이제 변방의 소수가 아니다. 언론계, 출판계, 문화계, 법조계, 여성계, 시민운동 단체, 노동운동계, 농민운동계 등 우리 사회 곳곳에 지지 그룹을 가진 가장 강력한 집단으로 성장했다.


전대협 출신의 학생운동 그룹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집단이라고 평가해도 과장이 아니다. 따라서 이들이 과연 어떤 사상과 관점을 지니고 있는가의 문제는 우리 사회의 행로를 예측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문제다.



전대협 출신들의 정치적 지향점과 특징은 노무현 정부 시절에 이미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들이 활약한 소위 진보정권 시대서부터 한미동맹은 급격히 약화되기 시작했다.


우리 국민들 사이에 남북 분단의 원인을 미국이 제공했다는 터무니없는 날조된 망발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점차 강해지고, 오늘날 남북한 간의 갈등의 배경이 미국의 강경정책 탓이라고 생각하는 국민들의 수가 과거에 비해 급증했다. 만연된 반미(反美)감정은 우리 국력이 성장한 만큼 우리 목소리를 가져야 한다는 것으로 인식하기에는 그 도를 넘어서고 있다.



반면에 북한 정권에 대한 근거 없는 낙관론이 주도적인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심지어 노무현 대통령은 대한민국 국민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는 북한 핵에 대해 두둔하기까지 했다. 노무현 정부 이후 현재까지 전대협 출신이 북한 핵문제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거나 문제를 제기하는 발언을 들어본 적이 없다.


전대협 세대의 특징은 북한에 대해서는 기이할 정도로 관대하다. 국제사회가 그 심각성을 공감하고 있는 북한 동포들의 인권문제에 어느 누구하나 진지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을 촉구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오히려 북한 인권문제는 북한 내부의 시각으로 봐야 한다는 궤변을 늘어놓는다.



반면에 미국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적대적이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역사가 자랑스러운 승리의 역사가 아니라, 오욕과 굴절로 얼룩진 수치의 역사라는 좌파들의 주장에 이르러서는 우리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나고 있다.


이들의 이런 관점과 태도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다. 이들의 현실 인식은 198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진행된 좌파적 사회운동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고, 30년이 지난 현재에 이르러서도 그 근본이 바뀌지 않은 채 곳곳에서 집단적으로 표출되고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이들에 대해 권위주의적 정권에 저항하는 민주화운동이며, 사회가 선진화를 위해 치르는 대가 정도로 생각하여 관대하게 바라봤다. 좌파적 사회운동에 대한 주류사회와 지식인 사회의 안이하고 무사 안일한 대응으로 인해 이들은 우리 국민들의 인식의 혼란을 효과적으로 이뤄 냈다.


다수 국민들은 좌파적 사회운동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며, 문제의 심각성을 잘 깨닫고 있지 못하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분열과 갈등의 핵심에는 아직도 1980년대식 좌파적 사고에 절어 있는, 이제 우리 사회의 주류가 된 세력의 편향된 인식에 그 원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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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신간-[아무도 나를 신고하지 않았다]

유명 정치인도 '북한 공작원'을 신고 안하더라 [책]



인보길 2013.07.26



유명 정치인도 ‘북한공작원’을 신고하지 않았다


[아무도 나를 신고하지 않았다] 책 제목이 충격적이다.
제주도에서 서울까지 전국을 돌아다닌 북한 공작원 김동식씨가 만난 사람들은 누구도 그를 당국에 신고하지 않더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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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990년 5월 제주도 서귀포 해안에 잡입, 당시 중앙무대서 활동하던 거물 여성간첩 이선실(본명 이선화, 북한 권력서열19위)을 접선해 월북시켰으며 운동권 인사들을 포섭한 공적으로 그해 10월24일 북한에서 20대 젊은이로선 드물게 ‘공화국 영웅’ 칭호 및 1급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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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후 저자는 다시 제주도 해안으로 침투하여 10명의 한국 인사들을 포섭하는 공작을 벌였다.
[유명 정치인과 핫 라인을 구축하라]는 김정일의 명령을 받고 내려와서 ‘민주화 투쟁’으로 이름 날린 정치인들을 만났지만 “아무도 신고하지 않았다”고 한다.


“처음엔 가벼운 대화를 나누다가 ‘북에서 온 연락대표’라고 신분을 밝혀도 거부감을 나타내지 않고 오히려 불편한 점은 없느냐면서 호의를 베풀었다”는 증언, 386세대를 포섭하여 ‘동부 지하당’을 구축하기 위해 활동했던 일, 당시 운동권단체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와 ‘전대협동우회’ 사무실이나 월간 ‘말’지 편집실을 출입하면서 남한의 지하조직과 암약했던 증언들이 놀랍고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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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언컨대 한국의 군사독재가 아무리 심했던들 말한마디 때문에 처형되는 북한과는 비교하지 말라. 박정희 욕했다고 사형받은 사람이 있는가.” 저자가 책을 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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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164140









[ ..... NL진영은 ... 핵심적인 진영은 - 자신의 전위조직을 '한국민족민주전선'(KNDF)으로 상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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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1980년대 중반 이후 변혁운동진영이 크게 NL진영과 반(!)NL진영으로 양분화되어 있는바, NL진영은 -모두가 다 그러한 것은 아니나 핵심적인 진영은- 자신의 전위조직을 '한국민족민주전선'(KNDF)으로 상정하고 있기 때문에 비합법 전위조직을 별도로 구성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


반면에 반NL진영 혹은 비(`)NL진영은 한국사회의 독자적인 정치적 지도조직 혹은 전위조직을 건설하여야 하기 때문에, 이러한 전위조직 건설-그것을 구체적으로 시도하건 아니면 전망으로서 제시하건 간에- 문제를 대단히 중시하고 있으며 그러한 구체적인 시도가 몇몇 사건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제헌의회 그룹으로부터 이어지는 일련의 조직들은 바로 이러한 시도들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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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맹, 비합법 전위조직에 대한 조직사회학적 분석

저작자 조희연
출처정보 <역사비평>, 1992. 가을, 역사비평사, 서울







[ ...... 1980년대 한국 진보 ..... 모두 공산주의 ......

..... 북한식 ... 혹은 소련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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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한국 진보의 다수파는 NL(자주파)이었다. 나머지는 PD(평등파)였다. 이들은 모두 공산주의 노선을 따랐다. 북한식 사회주의 혹은 소련식 사회주의 노선을 따르던 이들이다. 당연히 자신들의 역사적 족보를 김일성-박헌영, 전평 등에서 찾았다.


이제 그러한 역사적 '사실'과 '실험'이 있었음은 존중하되 그들과 근본적으로 단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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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8/19/2015081900943.html

[화제의 페북] 이승만과 싸우려면 '기지론자'와 싸워야 한다 (최병천 보좌관)
이신영 기자
2015.08.19










백년반역 살인마 만세의 무리들이 대한민국을 작살내고 있읍니다.


대한민국의 명운이 바람앞의 촛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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