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마당
 외부의 '비밀 회의체'에서 합의제 형태로 주요 인사가 결정
 닉네임 : 대한민국농단  2020-08-17 23:09:37   조회: 116   
[ ...... 이광재·안희정씨, 이호철 민정수석을 비롯한 핵심 측근그룹이 참여하는 외부의 '비밀 회의체'에서 합의제 형태로 주요 인사가 결정 ....... ]


[ ...... "여러분은 내가 신뢰하는 사람들이니 인사추천을 마음껏 하라" ........ ]



[노정권 역주행 5년] <1> 파행인사: 잘못 꿴 첫 단추


당선 직후… "인사청탁하면 패가망신할 것"
그 사흘후… "측근들 불러 "여러분은 예외"



특별취재반



노무현 대통령이 2002년 대선에서 당선된 지 열흘 후인 12월29일. 노 당선자는 명륜동 자택으로 자신을 오랫동안 보좌해온 측근들을 부부동반으로 불러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이 자리에는 이기명(후원회장), 이강철(전 시민사회수석), 안희정, 이광재(현 의원), 서갑원(현 의원), 황이수(전 행사기획비서관), 백원우(현 의원), 여택수(전 부속실장), 문용욱(현 부속실장)씨 등 핵심 측근들이 부부 동반으로 참석했다. 이기명, 이강철씨를 제외하고는 모두 386이었다.



측근들에게 ▲주변관리를 잘할 것 ▲역대정권의 인사 실패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고 당시 당선자 측은 설명했다.


노 당선자는 그 사흘 전인 12월26일 "인사나 이권 청탁을 하다 걸리면 패가망신한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해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었다.



그러나 명륜동 만찬 자리에선 당선자 측 설명에선 빠진, 중요한 얘기가 하나 있었다. 노 당선자는 "내가 '패가망신'이라는 얘기를 했지만 여러분들은 예외"라면서 "여러분은 내가 신뢰하는 사람들이니 인사추천을 마음껏 하라"고 말했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자축하는 분위기 속에서 나온 얘기이기는 했으나 참석자들은 지금도 그 얘기를 기억할 정도로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노무현 정권 인사 파행의 씨앗은 바로 이날 뿌려졌다. 측근 몇 사람에게 사실상 인사에 개입할 권한을 줘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중 일부는 자제했으나 소수에 불과했다. 한 자리 바라는 사람들이 소수의 핵심 측근들에게 몰렸던 것은 당연했다.



노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청와대 내에 비서실장이 위원장, 주요 수석이 위원인 '인사추천위원회'를 통해 투명하게 인사를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광재·안희정씨, 이호철 민정수석을 비롯한 핵심 측근그룹이 참여하는 외부의 '비밀 회의체'에서 합의제 형태로 주요 인사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는 전해철 전 민정수석, 박남춘 전 인사수석 등도 부분적으로 참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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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22

https://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1/22/2008012200096.html








[ ..... 대통령 관저에 가서 대통령과 식사를 하는 데까지 왔으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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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초선의원이 대통령이 되는 그 긴 과정을 본 사람입니다. 대통령 관저에 가서 대통령과 식사를 하는 데까지 왔으니 더 욕심부리면 부잣집 아들이 더 부자가 되려고 아둥바둥하는 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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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인터뷰]‘노무현의 동업자’ 안희정의 인생 고백 5시간
"新黨 사무총장 내가 맡고 싶다"

한기홍(glutton4@joongang.co.kr)

https://news.joins.com/article/203243







2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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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 안 부소장 들어갈 때 어떤 자격으로 들어갔어요?


안 = 업무 끝나고 나서 사석에서 만난 거죠. 대통령도 업무 일과 끝나고 나서 쉴 때 불렀는데 그게 무슨 문제가 됩니까? 예를 들어 공식적인 회의에 들어오라고 했다거나, 대통령의 공식일정 중에 불렀거나 그랬다면 공사 구분을 못한다고 혹시 비난을 할 수도 있겠죠. 대통령의 하루 일과, 공식적 업무 다 끝내놓고, 관저도 사생활 공간일 수 있는데 거기 자기 오랜 식구 불러다가 밥 한끼 먹은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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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제의 봄꽃은 지고 안희정의 여름꽃이 핀다
안희정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 인터뷰

등록 : 지승호 날짜 : 2003년 07월 21일 (02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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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6 내부에서는 오래 전부터 ‘도구론’이 검토됐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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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초기 386참모들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낸 생일카드에 “우리의 도구로서 변함없이 나가 주시기 바랍니다”는 내용이 있다 해서 화제가 됐지만, 사실 386 내부에서는 오래 전부터 ‘도구론’이 검토됐다. 노대통령의 386 핵심참모 중 한 사람인 안희정씨(고대 철학84)도 ‘열린공간30’의 멤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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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donga.com/docs/magazine/shin/2003/11/25/200311250500011/200311250500011_4.html

‘386’ 7년... 여전한 전위부대, 그러나 주류 꿈꾸는 파워맨들







1995. 안희정


[ ..... “새로운 사회혁명을 위해서는 40대를 선봉에 내세우고 자신들이 참모가 되어 정권을 차지해야 한다” ....... ]




운동권의 역사 3. 비공개에서 공개로, 그리고 권력 창출


Written by. 전경웅 2005-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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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 운동권 핵심들 중에서는 과거 학생 운동권 당시의 지도력이나 통솔력 등을 인정 받아 정치인의 보좌관이나 정당 사무처 등에서 일하게 된 사람들이 매우 많은 편이다.


특히, 1990년대 이후 한국 정치권은 과거 군사 정부와의 차별화를 꾀한다는 명목으로 명문대 출신에다 운동권 경험이 있는 젊은 사람을 영입하는 것을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정당 등에서 운동권 출신들을 환영하며 영입했다.



마지막으로 전대협은 1989년부터는 전국 대학 방송국 연합회, 전국 대학신문기자연합회 등을 만들어 언론계 진출을 지원했다. 이들은 중앙 조직을 통해 정기적으로 취재, 보도, 방송 등에 대한 교육을 실시했으며, 이들의 사회진출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지금까지 언론계는 공채 이외에도 다양한 인맥을 통한 인력확충이 존재하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여러가지 활동을 통해 각종 언론사에 진출하게 됐다. 또한, 시위 등을 통해 활동하던 노래패나 집회 기획의 경험을 살려 이벤트 기획사 등을 만들고 이를 통해 문화계에 상당수가 진출했다. 이들은 지금 문화계 중견 인사들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결국, 이 같은 다양한 사회 진출 전략을 통해 운동권 출신들이 각계 각층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기반을 잡게 된 것이다.


이러한 투쟁 중심에서 합법적 활동으로의 변화에는 운동권의 중요한 인식변화가 자리잡고 있다. 그것은 “학생 운동권으로써, 그리고, 민중 운동권으로써 사회혁명을 이루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었다. 또한, 졸업 후에도 지속적인 교류를 위해 각종 동지회와 동우회를 만들고 그 유대를 결속해 나갔다. 이를 통해 제도 속에서 사회 혁명을 이루고자 하는 큰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그리고, 1990년대 중반부터 “새로운 사회혁명을 위해서는 40대를 선봉에 내세우고 자신들이 참모가 되어 정권을 차지해야 한다”는 인식이 운동권 내부에서 공감대를 얻게 되었다(월간 말지 1995년 3월호 안희정 인터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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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konas.net/article/article.asp?idx=5763&project=8







[ ..... “6년 후 제 나이 마흔이 되면 청와대에 꼭 입성하게 될 겁니다.” ....... ]



‘뜨거운 젊은 피’ 안희정의 학창시절 뒷이야기

6년전 “40세 때 청와대 꼭 입성할 것” 장담



‘안희정’은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후 언론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이름 가운데 하나다. 처음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소개되기 시작했고, 곧이어 내년 총선에서 자민련 이인제 총재권한대행(논산시·금산군)과 맞붙을 젊은 세력으로 알려지면서 차세대 정치인으로 급부상했다.

하지만 이내 나라종금 사건에 연루된 부정한 인물로 지목되면서 현재 사법처리 유무에 정치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얼마 전 노무현 대통령이 한 시사토론 방송에서 안희정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에 대해 “나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사람”이라며 ‘자신의 사람’임을 분명히 해 안씨의 거취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지고 있다. 안씨에 대해 지금껏 소개된 내용은 대부분 노 대통령과 10여년간 고락을 같이해온 ‘동지’, 전형적인 ‘운동권 386세대’ ‘핵심 참모그룹’, ‘실세그룹’ 등이다. 지난 5월 4일 그의 고향 논산 연무읍 마산4리와 그가 그쳐간 학교를 찾아 학창시절의 안희정 대한 이런저런 뒷이야기를 들었다.


“6년 후 제 나이 마흔이 되면 청와대에 꼭 입성하게 될 겁니다.”

지금으로부터 6년전 안씨가 고등학교 1학년 때의 담임 김구용 교사(51·국어)를 만났을 때 했던 이야기다. 김 교사는 당시 안씨가 했던 이야기를 생생하게 떠올리며 “희정이라면 꼭 뭔가 이룰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비록 지금 안씨가 청와대 직원으로 이름이 오른 것은 아니지만 그는 대통령의 가장 두터운 신임을 얻고 있는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연구소 부소장이라는 ‘외곽’ 직함을 가지고도 ‘실세중 실세’로 인정받는 것은 대통령과의 극진한 친분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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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김동현 기자







1998


[ ..... 우리 세대 중 일부를 이 네트워크의 일부로서 정치권에 진출시켜야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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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전대협 정신을 지키는 게 무엇이 잘못인가, 민주화를 이룬 가치를 지키면 좋은 일 아닌가 이렇게 물을 수도 있다. 과연 그럴까. 먼저 전대협 출신들이 국회에 진입한 과정부터 추적해 보자.


“(6·10 항쟁 이후) 10여 년이 지난 1998년쯤부터 우리 80년대 세대들의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토론을 시작했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요약하면 이런 것입니다. … 우리 세대 중 일부를 이 네트워크의 일부로서 정치권에 진출시켜야 한다. … 이러한 잠정적 결론에 따라 우리들 중 일부가 정치권으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우상호, 전국공무원노조 경남지부교육자료 인용, 2003년 11월 21일)



자주·민주·통일의 전대협 초심(初心) 지키기



전대협 출신 가운데 맏형 격인 새민련 우상호(전대협 1기 부의장)에겐 등원 자체가 과거 운동의 연장선이었다. 개인이 개별적으로 국회의원이 됐다기보다는 전대협이라는 단체가 토론과 결의를 통해 주요 인물들을 국회에 진출시켰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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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future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900

전대협 출신 의원들의 민주주의는 어떤 민주주의인가
[철저분석] 전대협 출신 국회의원들의 성향

정재욱 기자 2015.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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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 전국연합 조직국장 이인영

「전국연합」정치국장 김두수

전국연합 인권위원장 전해철







"참여정부, 우리들의 정권이라 생각했죠"


[인터뷰] 운동권 여학생→농사꾼→의성군 의원으로 살아온 임미애씨

07.08.02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426023







2003.7.



[ ..... 동무들! 이제 우리들 세상이 왔습니다. ........

...... 연대해 새세상을 만듭시다 ........ ]



[광화문] 청와대 386의 "미숙"


이백규의氣UP 머니투데이 이백규 부장

2003.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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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무들! 이제 우리들 세상이 왔습니다. 힘을 합합시다. 연대해 새세상을 만듭시다"


이런 e메일이 나돌았다. 발신자는 현직 청와대 고위 공무원이다. 이른바 386 핵심이다.


이 메일을 접하곤 우선은 부끄러웠다. 중학생 초등생 두애를 둔 가장으로서 먹고 살기 바쁘다 보니 젊을적 꿈을 잊고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기보다 보너스에 웃고 과외비에 벌벌 떠는 소시민으로 전락한 내가 미웠다. 더구나 언론인은 공인의 길을 걸어야 하는데..



부끄러움은 잠깐이고 동무라니, 우리들 세상이라니.우리는 누구이고 새세상은 무엇인가. 우리들끼리만 어떻게 새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혹시 그들은 기존의 것들, 재벌과 관료와 언론, 그리고 이 체제를 앙시앵레짐으로 보고 허물어야할 대상으로 생각하나. 그건 혁명이기 전에 일종의 왕자병인데. 정치권력을 쥐었다고 어찌 사회를 좌지우지할 수 있을까. 그래서 그들은 청와대 복도에서 마주치는 정부 부처 관료들을 우습게 보고 거들떠 보지도 않고 외면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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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그러나 비주류들의 돌발적 치기로 치부하기엔 그들 자리는 너무나 막강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청와대 386 공무원들은 일반 국민 정서의 정규분포에서 벗어났고 386은 물론 운동권의 평균값에서도 멀어져 갔다.



더구나 그들은 이제 운동가도, 정치인도 아닌 공무원 신분였다. 공무원은 국민을 위해 법과 제도를 수행하는 이른바 공복이고 그래서 노조도 정치활동도 금지돼있을 것이다. 정치를 하려면 청와대를 떠나던지.



혹 공산주의자라면 어떤가. 공산주의의 수장 등소평은 ´흑묘백묘´로 중국을 개혁했고 고르비도 페레스트로이가를 주창하지 않았던가. 하물며 김정일도 신의주 특구 시장에 외국인을 임명하지 않았던가. 뭘 어떻게 추구하는가가 문제겠지.


청와대 386들은 우리 국민이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그걸 할려면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시 고민해야 한다. 왜 청와대에 와 있는지, 혹 멸사봉공이 아니라 멸공봉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뒤돌아 봐야 한다.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 퇴물 공산주의자들보다도 못한 사람들로 역사에 기록돼서는 안되지 않겠는가


http://news.mt.co.kr/mtview.php?no=2003072717394030865&vgb=column&code=column132








[ ...... 안희정은 나의 측근, 동업자요, 동지 ........ ]


[ ....... 불법 대선자금 수수로 1년을 복역했기 때문에 향후 5년간 공직선거에 나설 수 없다. ........ ]





[ ..... 변호를 맡았던 김진국 변호사가 민정수석실 법무비서관에 임명 .........


..... “당직을 맡아 운영해 보니 고급 정보가 당내에서는 안희정과 이광재에게 모이는 것을 .... 실세는 실세구나 하는 것을 절감했다 ......... ]





[10인의 실세 그들은 누구인가③ / 안희정 前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 예고된 飛上…복역 불구 영향력 건재

휴대전화도 없이 아이와 소일…파괴력 있는 행보 시점에 촉각



신용호_중앙일보 정치부 기자



안희정(40) 전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은 외형적으로는 날개가 꺾인 상태다. 불법 대선자금 수수로 1년을 복역했기 때문에 향후 5년간 공직선거에 나설 수 없다. 당장 열린우리당에서 당직을 맡아 전면에 나서기에는 여론이 부담스럽다. 그래서 출소 후 시종 조용한 행보다.


하지만 그의 날개가 언제까지 꺾여만 있을 것으로 보는 이는 거의 없다. 시간이 문제일 뿐 그의 비상은 이미 예고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월간중앙> 서베이에서 정치부 기자들이 권부에서 밀려난 그를 ‘파워맨 5위’로 지목한 것은 그런 연유에서다. 오히려 파워맨 5위라는 자리가 그에게는 모자라 보일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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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안씨의 저력은 그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무한한 애정에서 비롯한다. 노 대통령은 2003년 5월 대선자금 수사 정국에서 수사받는 안씨를 가리켜“안희정은 나의 측근, 동업자요, 동지…. 나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고 한 적이 있다. 이런 마음은 안씨가 구속→수감→출소 과정을 거치면서 더욱 공고해졌다는 것이 한 여권 핵심 관계자의 전언이다.


그는 “노 대통령의 최측근 중에서는 안희정만 구속됐다. 그에 대한 대통령의 애정은 말도 못한다. 캠프의 짐을 스스로 당당하게 다 지겠다고 했으니…”라고 했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말 출소한 안씨 부부를 당장 청와대로 불러 위로했다. 안씨가 출소하자마자 서울구치소로 전화를 걸기도 했다. 안씨 출소 후 그를 위로하는 자리에는 열린우리당 염동연·서갑원·이광재·백원우 의원과 이강철 현 대통령 시민사회수석 등이 참석했다. 운동권 참모진의 맏형격인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도 함께했다.


이런 배경을 등에 업고 안씨가 한번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 파괴력이 만만찮을 전망이다. 안씨가 기지개를 켜기도 전에 그의 영향력을 보여줬다고 회자되는 사례가 있다. 올 초 그의 변호를 맡았던 김진국 변호사가 민정수석실 법무비서관에 임명된 것. 안씨의 변호를 맡았다는 이력만으로도 인사에 참고됐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이미 복역중 실세로서의 힘이 감지되기도 했다. 열린우리당 고위 인사는 “당직을 맡아 운영해 보니 고급 정보가 당내에서는 안희정과 이광재에게 모이는 것을 직접 느낄 수 있더라. 그것을 보고 과연 그들이 아직 실세는 실세구나 하는 것을 절감했다”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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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3월호 2005.02.18

https://jmagazine.joins.com/monthly/view/219441








[이정재 칼럼] 패밀리가 떴다


[중앙선데이] 입력 2009.04.11 109호 3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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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뜨는 패밀리는 둘이다. 국민MC 유재석 패밀리와 전직 대통령 노무현 패밀리다. 두 패밀리의 ‘뜸’은 단연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유 패밀리는 모 방송사의 예능 프로그램의 주인공으로 1년째 이 분야 인기 최고다. 노 패밀리는 다른 모든 뉴스를 물리치고 열흘 넘게 신문·방송의 톱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두 패밀리는 ‘떴다’는 것 외에도 많이 닮았다.


첫째, 핏줄을 나누지 않은 사람들까지 가족이라고 부른다. 유 패밀리는 8명이다. 이효리, 박예진, 윤종신, 김수로, 이천희, 대성, 김종국…. 모두 남남이지만 형님·동생, 누나·언니라 부른다. 유재석과 이효리는 자칭타칭 국민남매로까지 불린다.


노 패밀리도 8명이다. 노건평, 노건호, 연철호, 권양숙은 핏줄로 얽혔다.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박연차(태광실업 회장), 정상문(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이광재(국회의원)도 패밀리다. 노 전 대통령의 형인 노건평씨는 “서로 대통령 패밀리까지는 건드리지 않도록 하자. 우리 쪽 패밀리에는 박연차 회장도 포함시켜 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핏줄 대신 부패로 얽힌 패밀리인 셈이다.



둘째, 등장 인물이 자꾸 늘어난다. 유 패밀리는 매주 한 명씩 게스트가 바뀐다. 새 가족이 매주 한 명씩 늘어나는 셈이다.

노 패밀리도 부패 연루 인물을 계속 늘려왔다. 늘어나는 속도는 노 패밀리가 더 빠르다. 이강철(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박정규(전 청와대 민정수석), 강금원(창신섬유 회장), 안희정(민주당 최고위원)까지 2~3일에 한 명꼴이다. 가족이 얼마나 더 늘어날지 모른다는 것도 두 패밀리의 공통점이다.



셋째, 각본대로 움직인다. 유 패밀리는 방송 중 주고받는 감탄사까지 각본대로라고 한다. 연초 일부 각본이 인터넷에 공개되자 “속았다” “실제상황인 줄 알았다”며 실망한 팬들의 비판이 잇따르기도 했다.

노 패밀리의 각본엔 공식이 있다. 처음엔 ‘안 받았다, 안 줬다’ ‘모른다’로 시작한다. 다음엔 ‘검찰에서 다 밝히겠다’고 한다. 마지막엔 ‘받긴 받았지만(주긴 줬지만), 대가성은 없다’다. 이 각본은 역대 부패 패밀리의 공식과 같다. 하도 많이 들어서 국민 모두가 다음 수순을 외울 정도다.



넷째, 주 무대가 시골 마을이다. 유 패밀리가 매주 마을을 바꿔가면서 전국적으로 활동하는데 비해 노 패밀리는 본거지인 봉하마을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다섯째, 새 유행어를 쏟아낸다. 유 패밀리는 조작 스캔들(유재석), 훅훅(김수로) 등을 유행시켰다.

노 패밀리의 빅 히트작은 ‘연차 수당’이다. 박연차 회장에게 받은 돈을 말하는데 못 받으면 바보, 받으면 감방이란 주석이 달려 있다. ‘600만 달러의 사나이’(박 회장으로부터 노 전 대통령에게 전달된 돈을 30여 년 전 미국 드라마 ‘600만불의 사나이’에 빗댄 말), ‘돈짱’(노사모가 노 전 대통령을 ‘노짱’이라고 부르는 것을 빗댄 말)도 신조어다.


여섯째, 여자들이 권력을 쥐고 있다. 유 패밀리의 짱은 단연 이효리다. 남자들은 눈치보기 바쁘다. 이효리가 잘못하면 통제할 방법이 없다. 기껏 “이효리가 한 일”이라고 둘러댈 뿐이다.

노 패밀리도 비슷하다. 7일 노무현 전 대통령은 100만 달러 건이 불거지자 권 여사에게 퉁쳤다. “저의 집(권양숙 여사)에서 부탁하고 그 돈을 받아 사용한 것”이라고 둘러댔다.



일곱째, 남의 가족 얘긴데도 온 국민이 관심을 가진다. 유 패밀리는 시청률 짱이다. ‘패밀리가 떴다’를 검색하면 구글엔 192만 건의 정보가 나온다.

노 패밀리에 대한 관심도 폭발적이다. 특히 힘 좀 쓴다는 분들의 관심이 높다. 그렇다 보니 국내 언론의 대서특필은 물론이고, 외국 언론들이 앞다퉈 톱 기사로 보도할 정도다.



다른 점도 있다. 유 패밀리는 웃음과 오락을 주지만, 노 패밀리는 고통과 분노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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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joins.com/article/3566922








[ .... 강 회장이 돈으로 관리하는 대상은 386 실세들이었다. ‘안희정· 이광재’ 좌우 인맥이 그랬다.


문재인(전 비서실장)· 이호철(전 민정수석)의 부산파는 핵심임이 거듭 확인됐다 .....


..... 이들 실세의 권력 지분은 90%다. 나머지 10%가 당·시민단체·교수·언론인에 할당 ....... ]





[박보균의 세상 탐사] 노무현의 ‘권력 이너서클’


[중앙선데이] 입력 2009.04.25 111호 2면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권력 핵심이 아니었다. 그는 ‘노의 남자’라고 으스댔다. 하지만 권력 실세 그룹에 끼지 못했다. 조기숙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권력의 언저리에 몸을 걸친 정도였다. 박연차 게이트는 노 정권의 내부 서열·비선(秘線) 구조를 그렇게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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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권력은 자기류의 질서를 가졌다. 정권창업 기여도, 인연, 돈거래, 이념적 동질감을 배합해 서열을 매겼다.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은 “내가 대통령 최측근이며 군기반장”이라고 주장했다. 강 회장이 돈으로 관리하는 대상은 386 실세들이었다.



‘안희정· 이광재’ 좌우 인맥이 그랬다. 문재인(전 비서실장)· 이호철(전 민정수석)의 부산파는 핵심임이 거듭 확인됐다. 노건평씨의 봉화대군 패밀리는 은밀한 실속파였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정상문 전 총무비서관은 여기에 속했다. 이들 실세의 권력 지분은 90%다. 나머지 10%가 당·시민단체·교수·언론인에 할당됐다.



노 전 대통령은 국정 어젠다를 실천에 옮기는 사람을 밀어줬다. 유 전 장관도 그런 경우다. 그는 대통령 측근이다. 하지만 핵심 이너서클에 들어가지 못했다. 진입 장벽은 높았다. 그만큼 폐쇄적이었다. 조 전 수석은 측근 티를 내면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한 케이스다.



노 정권 2년 차에 인사의 틀이 바뀌었다. 청와대 문희상 비서실장·유인태 정무수석은 당으로 돌아갔다. 노 전 대통령은 그들을 부담스러워했다. 두 사람은 386 친노(親盧)를 견제했다. 그 무렵 정치 스승이라는 김원기 국회의장의 발언권도 약화됐다. 코드, 유유상종, 회전문 인사가 판을 치기 시작했다.



코드 인사는 내부 규율을 헝클어뜨린다. 친노 그룹은 도덕적 우월감을 가졌다. 여기에 정실주의가 스며들었다. 그 감정은 배타적 특권 의식으로 악성 변종했다. 그들은 박· 강 회장한테 받은 돈을 이너서클의 내부 거래로 생각했다. 부패가 아닌 의리 주고받기, 정치 장학금으로 여겼다.



친인척 감시도 소홀해졌다. 건평씨는 동생 노 전 대통령의 젊은 시절부터 궂은 일을 돌보았다. 집도 사주고 정치 자금도 마련해줬다. 그는 양녕대군으로 자신을 생각했다고 한다. 봉하대군은 그냥 나온 게 아니다. 건평씨를 형님으로 모신 장관들도 있었다. 그는 김대중 정권 때 권노갑씨 정도로 자신의 역할을 설정하기도 했다. 세무공무원 출신다운 치밀함도 있었다. 건평씨는 박 회장이 받은 사업 특혜의 대가를 빠뜨리지 않고 챙겼다.



권력은 갈등과 음해를 동반한다. 박·강 회장의 사이는 나빴다. 강 회장은 “돈으로 권력을 산 브로커”라고 박 회장을 비아냥댔다. 이에 박 회장은 “돈 좀 뿌렸다고 나발 불고 다닌다”고 강 회장을 성토했다고 한다. 박 회장은 노 정권 때 사업을 확장했다. 반면 강 회장은 돈 쓰는 맛을 즐겼다. 돈 쓰는 최고의 재미는 정치 실세들이 돈 앞에 굽실댈 때다. 노 전 대통령은 정권 초기엔 박 회장을 경계했다. 형의 청탁(박 회장 사돈의 국세청장 기용)을 거절한 것도 그 때문이라는 것이다.



노무현 권력의 어설픔, 부패, 패거리 의식이 실감나게 노출됐다. 인사 실패가 주요 원인이다. 사람을 좁게 쓰고, 잘못 쓰면 국정은 헝클어진다. 부패가 뒤따른다. 무능한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절대권력만 절대 부패하는 것이 아니다. ‘노무현과 그 사람들’의 배반과 탈선이 주는 교훈이다. .


http://news.joins.com/article/3584678









2012.1.


[ ..... 전대협 ... 그들이 돌아왔다.... 그것도 아주 핵심 요직을 ......

...... 임종석 전 의원은 당무를 총괄하는 핵심요직인 사무총장에 ........ ]



"전대협이 또 벼슬? 일욕심으로 뭉쳤다"

[인터뷰] 임종석 민주통합당 사무총장



12.01.28 장윤선 (sunnijang) / 유성호 (hoyah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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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항쟁을 이끌었던 전대협 리더들의 초라한 정치 성적표는 지금도 그들을 따라다니는 꼬리표다. 한국정치에서 이미 의미없는 존재들로 치부되기도 했다. 더 이상 세대론으로 정치하고 싶지 않다는 자성은 그들 안에서부터 터져나왔다.



그런데, 그들이 돌아왔다. 80만 국민참여경선 뒤의 민주통합당으로. 그것도 아주 핵심 요직을 맡았다. 전대협 초대 의장인 이인영 전 의원은 최고위원으로, 87년 6월항쟁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장이었던 우상호 전 의원은 홍보전략본부장으로, 전대협 출범의 밑그림을 그렸던 이재경 전 전략기획위원장은 홍보위원장으로, 386세대로 시민사회에서 잔뼈가 굵은 김기식 전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전략기획위원장을 맡았다. 전대협 3기 의장인 임종석 전 의원은 당무를 총괄하는 핵심요직인 사무총장에 임명됐다. 18대 총선에서 대거 낙선한 그들. 앞으로 보여줄 정치는 어떤 모습일까.



임종석 사무총장은 26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뭉친 것은 맞다"며 "총선을 앞두고 벼슬 욕심이 아니라 '일 욕심'에 뭉쳤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개혁, 사회개혁, 구 잔재 청산은 우리에게 숙명 같은 문제라서 소홀히 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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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패율 문제로 각을 세우고 있는 통합진보당과의 연대 문제는 "진보당과의 충분한 교감이 없는 상태에서 양 교섭단체간 합의는 절차상 문제로 지적돼야 한다"면서도 "진보당의 문제제기 방식은 지나치게 정치적이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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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대협 간부들이 이번 인사에서 요직을 많이 맡았다. 배경이 뭔가.

"이 시점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공감대가 당내 젊은 그룹 사이에 있었다. 사실 작년 야권연대 할 때 '순천 무공천' 사고를 친 게 우리다. 야권연대특위가 무슨 권한이 있었나. 사고 치고, 지적 받고, 그러면서 일을 만들었다. 야권연대의 모멘텀을 살리는 게 너무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우린 벼슬이 아니고 머슴을 자처했다. 책임 있게 일해서 반드시 이번 총선을 이기자고 말이다. 그리고 총선이 끝난 뒤엔 깨끗하게 비우자고 했다. 우리가 뭉쳤다면 뭉친 것인데, 총선을 앞두고 벼슬을 탐하려고 뭉친 게 아니라 '일 욕심'에 뭉친 것이다. 한 대표도 늘 그랬다. 내가 등을 댈 테니 당신들이 일을 좀 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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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90350&CMPT_CD=E0942







2012.2.


임종석 "임수경 영입하겠다"



황대진 기자

2012.02.13



1989년 전대협 의장 임종석, 北 보낼 南 '평균 대학생'으로

임수경씨 찾아 北 보내… 임종석 女裝까지 하며 도피

임수경 '386 술파티' 폭로에 임종석 없었지만 구설수




임종석 민주통합당 사무총장은 12일 "4·11 총선에 임수경씨를 영입하고 싶다"고 밝혔다. 임수경(여·44)씨는 1989년 6월 밀입북,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약칭 전대협) 대표로 평양에서 열린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석했고, 당시 임씨를 북으로 보낸 사람이 바로 임종석 총장(당시 전대협 의장)이었다. 그랬던 두 사람이 이번에는 제1 야당의 사무총장과 총선 영입 대상자의 관계로 다시 만난 것이다.


임 총장은 이날 본지 인터뷰에서 "임씨는 남북화해협력, 여성 존중이라는 당의 가치와 부합하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영입이 성사될 경우 지역구보다 비례대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임수경씨는 이날 본지 통화에서 "영입에 관한 얘기는 들은 바 없다"면서도 "정치는 누구에게나 해보라고 권하고 있다"고 했다. 임씨는 앞서 지난달 TV방송에 출연해 "이제는 사회를 위해서 나서야 할 때라는 책임감을 느낀다"며 정계 진출에 뜻이 있음을 비쳤었다.



민주당 임종석 사무총장과 임수경씨의 인연은 2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대협 의장이던 임 총장은 1989년 당시 ‘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할 대표로 남측의 ‘평균적 대학생’을 물색했고, 전대협 산하 평양축전준비위원회에서 활동 중이던 임씨(당시 한국외대 4학년)를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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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2/13/2012021300176.html







2012.3.


[ ..... 민주통합당 ... 통합진보당 ........

..... 4·11총선에서 범민주진보진영이 함께 하는 야권연대를 이뤄냈다 ......... ]



4·11총선 승리와 정권교체를 위한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야권연대 합의문

2012-03-10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와 통합진보당 이정희 공동대표는 민생파탄과 부정비리로 점철된 이명박 정부와 새누리당 정권 심판, 민주주의와 평화회복, 노동존중 복지사회 건설이라는 국민의 여망을 받들기 위해 오늘 전국적 포괄적 야권연대에 합의했다.


양당은 총선승리와 정권교체를 위해 크게 단결하라는 국민의 요구를 받들어 이번 4·11총선에서 범민주진보진영이 함께 하는 야권연대를 이뤄냈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은 4·11 총선거에서 공동의 승리, 국민의 승리를 위해 다음과 같이 합의한다.



1. 양당은 4.11 총선에서 야권단일후보로 함께 승리하고, 총선 이후 구성되는 19대 국회에서 양당이 합의한 [공동정책합의문]을 실천할 것이다.

2. 연대의 정신에 입각하여, 야권후보 단일화 방안에 합의한다.

3. 야권단일후보 경선은 100%여론조사 방식으로 3월 17일~18일 양일에 걸쳐 진행한다. 단 민주통합당 경선이 완료되지 않았을 경우, 후보등록 전까지 완료하는 것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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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pad.kr/briefingDetail.do?bd_seq=44274








2012.7.


[ ..... 민주통합당은 이념적 동질성이 높아졌다. 10명 중 9명꼴(91.7%)로 진보 성향 ......

...... 보수 성향 의원은 '멸종' ........ ]



민주당 진보 92% … 386 대거 입성한 17대보다 좌클릭


[중앙일보] 2012-07-23



새누리 59% 민주당 100% “복지예산 확대” … 국민은 48%
중앙일보·정당학회 19대 의원 전수조사 (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이념적 거리'가 조사를 실시한 16대 국회 이후 가장 먼 것으로 나타났다. 2000년 16대 국회에서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의원들의 이념지수는 평균 5.4였다. 당시 여당이던 새천년민주당은 3.7이었다. 이때처럼 16~18대 국회에서 양당 간 이념격차는 2점 안팎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19대 국회에선 양당 간 이념격차가 '3.2'(새누리당 5.9, 민주통합당 2.7)로 조사됐다. 이명박 정부 들어 진행된 민주당의 급속한 진보·좌클릭 때문이다.



 ◆민주당 진보 일색=민주통합당은 이념적 동질성이 높아졌다. 10명 중 9명꼴(91.7%)로 진보 성향이었다. 보수 성향 의원은 '멸종'했다. 중도 성향은 단 7명에 불과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역풍으로 386운동권이 대거 국회에 입성한 17대 국회 때를 능가한다. 당시 진보 성향은 71%였다.


 17대 국회 때만 해도 김진표 의원을 비롯, 5명이 한나라당 평균 이념(5.4점)보다 보수적인 성향을 보였다. 18대 국회에서도 3군사령관 출신인 서종표(6.9점) 의원이 7점에 가까운 점수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번엔 가장 오른쪽에 자리 잡은 그룹이 '4.7점 클럽'(김영환·임내현·윤후덕)이었다.


 당내에서 상대적으로 중도에 가까운 성향을 보인 의원들은 장성 출신 백군기(4.2점) 의원과 강진군수 출신의 황주홍(4.2점) 의원이었다. 노무현 정부에서 각각 건설교통부 장관과 기획예산처 장관을 지낸 이용섭 정책위의장과 장병완 의원도 3.8점으로 당내에선 오른쪽에 자리를 잡았다.


 민주통합당의 청년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장하나(1.1점) 의원은 통합진보당 노회찬(1.6점) 의원보다 진보적 수치로 나타나 가장 왼쪽에 있었다. 또 다른 민주통합당 청년비례대표인 김광진(1.6점) 의원도 진보 성향이 강했다.

 물론 가장 진보적인 정당은 통합진보당이었다(0.7점). 의원 개개인을 봐도 통합진보당 소속이 가장 앞자리를 차지했다. 오병윤(0.2점) 의원과 심상정(0.4점) 의원이 1, 2위였다.



 ◆새누리당 이념 스펙트럼은 넓어져=새누리당은 중도 성향(4∼6점·48.8%)과 보수 성향(6점 이상· 49.6%) 의원이 양분하는 구도였다. 18대 때엔 61%가 정책 이념이 6점 이상이었으나 그에 비해선 상당히 왼쪽으로 이동한 셈이다.


 다만 4점 미만의 진보 성향 의원은 비례대표인 민현주(3.6점) 의원 한 명뿐이었다.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실천모임에서 운영위원을 맡고 그는 최근 횡령·배임죄를 저지른 재벌 총수의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민 의원 다음으론 쇄신파 남경필(4.2점) 의원, IT업계에서 영입된 초선의 전하진(4.2점) 의원, 초선으로 박근혜 후보 캠프 대변인인 이상일(4.4점) 의원, 박 후보의 경제브레인인 강석훈(4.7점) 의원, 남 의원과 함께 쇄신파 리더로 활동했던 정두언(4.9점) 의원 등이 '당내에서' 가장 진보 취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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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jtbc.co.kr/article/article.aspx?news_id=NB10140401









2017.7.


[ ..... 청와대·내각·정부 요직 인사를 분석한 결과 67명(공무원 출신 제외) 중 절반에 가까운 32명이 운동권 출신 ....... ]




문재인 정부, 청와대 핵심 요직 전대협, 민청련 등 운동권 출신들은?

문재인 집권 한 달...문재인 인사 및 80년대 운동권 계보 정밀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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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노무현 정부 때는 운동권 출신이 아니면 명함도 내밀기 어려웠다. 당시 마흔 전후의 소장파였던 86세대(80년대 학번·60년대 출생) 운동권 인사들은 핵심 요직에 포진했다.



문재인 정부도 마찬가지다. ‘노무현의 정치적 상속자’인 문재인 대통령은 오십을 넘긴 중년이 된 운동권 주역들을 중용하고 있다. 《월간조선》이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 6월 14일까지 시행한 초대 청와대·내각·정부 요직 인사를 분석한 결과 67명(공무원 출신 제외) 중 절반에 가까운 32명이 운동권 출신(노동·시민 운동 등 포함, 운동권이란 명확한 증거 없는 경우 제외)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대협 출신



임종석 비서실장은 전라남도 장흥 출신으로 한양대학교(86학번) 총학생회장이던 1989년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3기 의장을 맡아 ‘임수경 방북 사건’을 주도했다. 이 사건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적용받아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3년 6개월 복역했다.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젊은 피 수혈’ 방침에 따라 전대협 출신인 이인영·우상호 의원 등과 함께 새천년민주당에 입당했다. 그해 16대 총선에서 최연소(만 34세·서울 성동을)로 당선됐고, 17대 때 재선됐다. 그러나 2008년 18대 총선에서 낙선했고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통합당 사무총장에 임명됐지만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이 제기돼 불출마했다. 이후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2014년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지내면서 박원순 시장 측근으로 꼽혔다. 작년 4월 20대 총선에서 서울 은평을에 도전했지만 당내 경선에서 탈락한 뒤 ‘문재인 대통령 캠프’에 합류했다. 과거 전력 때문에 ‘운동권’ ‘주사파’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5월 10일 취임사, 5·18 기념사, 노무현 대통령 추도식 인사말, 그리고 현충일 추념사 등을 통해 지금까지의 틀을 넘어 ‘애국’ ‘산업화’ ‘통합’ 등을 강조하며 보수층에도 일정 부분 공감의 폭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는 문 대통령의 연설문을 작성한 신동호 연설비서관도 운동권 출신이다.


임 비서실장 대학 1년 선배(한양대학교 국문학과 85학번)인 신 비서관의 영역은 정치가 아니라 ‘문화’였다. 당시 운동권 용어로 ‘문화 통일 일꾼’이었던 그는 전대협 문화국장을 지냈다. 1980년대 전대협 문화국은 ‘문화를 변혁의 도구’로 생각했던 이들의 집합소였다. 석사논문도 북한 문학이 주제였다. 2004년에는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위원장으로 남북 저작권 교류 사업에 참여했다.



백원우 민정비서관은 1988년 2기 전대협 연대사업국장을 지냈다. 88년 전대협 2기는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라는 구호를 외치며 남북학생회담을 추진했었다. 1985년 고려대 신문방송학과(85학번)에 입학한 그는 학생운동과 재야운동 등을 경험했고, 1994년 고 제정구 의원 비서관으로 정계와 인연을 맺었다.


한병도 청와대 정무비서관은 원광대(86학번)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전북지역에서 전대협 활동을 했다. 전대협 3기 전북지역 조국통일위원장이었다.


실세 3인방



유행렬 자치분권비서관실(청와대 정무수석실 산하) 행정관은 전대협 3기 중앙위원을 역임했다. 충북대 총학생회장(82학번) 출신인 그는 1987년 6월항쟁 당시 충북 시위를 주도했다.


1989년 11월 15일 자 《동아일보》에는 이런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지명수배 중인 전대협의장 임종석 군이 14일 오전 9시 청주 충북대에 나타나 유행렬 충북대 총학생회장과 함께 충북대학보사 기자 등을 상대로 기자회견을 갖고 행방을 감췄다.〉


요직에 진출하는 전대협 출신은 더욱 늘어날 수도 있다. 1987년 전대협 1기부의장이었던 우상호 민주당 의원 등 몇몇의 전대협 출신 정치인들의 입각 가능성이 점쳐지는 까닭이다.


권력 세계에서 문고리 잡은 사람이 최고라는 개념에서 ‘실세’로 꼽히는 3인방(윤건영 국정상황실장, 송인배 제1 부속실장, 유송화 제2부속실장)도 모두 운동권 출신이다.



윤건영 국정상황실장은 국민대학교 총학생회장 출신이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 정무기획비서관을 지낸 윤 실장은 문 대통령의 19대 국회의원 시절 보좌관을 지냈다.



송인배 제1부속실장은 부산대 총학생회장 출신이다. 부산·울산지역 총학생협의회 의장을 지냈으며 부산참여연대 조직부장을 거쳐 1998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서관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유송화 제2부속실장 또한 1988년 이화여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학생운동권 출신이다. 민청련(민주화운동청년연합) 조직부장을 역임했다. 유 실장은 ‘8·15 남북청년 학생회담 성사투쟁’에 앞장섰다가 구속돼 5개월여 동안 복역하기도 했다. 대학 졸업 후 재야단체에서 일했던 그는 1992년 대통령 선거 이후 정치를 하겠다고 결심했다.



청와대 수석·비서관·행정관의 운동권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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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부산에서 태어난 조국 민정수석은 1982년 혜광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박사를 받은 뒤 울산대 조교수로 재직 중이던 1993년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약칭 사노맹) 산하 ‘남한사회주의과학원’ 사건에 연루됐다. 당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5개월간 구속 수감됐었다. 법원에서는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인권단체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는 그를 ‘올해의 양심수’로 선정하기도 했다.


조 내정자는 이후 사면·복권돼 미국 UC버클리대 유학을 다녀왔고, 동국대 법대 조교수를 거쳐 2001년 말 서울대 법대 조교수로 임용됐다. 2000~2005년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부소장·소장으로 일했다.



김수현 사회수석은 대학가의 낭만과 담을 쌓고 철거민들과 고락을 함께한 빈민 활동가였다. 서울대 도시공학과 4학년 재학 중이던 1983년부터 주거문제와 빈곤문제에 천착했다. 그는 서울 목동과 상계동 등 현재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곳에서 철거의 광풍과 맞서다 구속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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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출신인 하승창 사회혁신수석은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후 노동운동을 하다가 1990년 민족통일민주주의노동자동맹(삼민동맹) 사건으로 구속됐었다. 이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함께하는 시민행동’ 등의 시민단체에서 활동했다.



황인성 민주평화통일자문회 사무처장은 1974년 민청학련 사건(1974년 국가를 전복시키고 공산정권 수립을 추진했다는 혐의로 사형 7명을 포함해 민청학련 관련자 180여 명이 사법처리된 사건, 민청학련은 1972년 10월 유신반대에 나서 1974년 결성된 전국 학생조직)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운동권 출신이다. 경남 사천 출신으로 진주고, 서울대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했고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을 지냈다.



노영민 주중 대사의 대학시절은 유신독재에 저항하는 의혈청년의 모습이었다. 연세대 경영학과(76학번)에 입학한 노 대사는 연세대 구국 선언서 사건으로 구속 수감되기도 했다. 죄명은 긴급조치 9호 위반이었다.

그는 서대문구치소와 홍성교도소 등에서 수감생활을 하면서 1978년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출 거부 옥중투쟁을 벌이다가 추가 기소되기도 했다. 그는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 학교에서 제적당한 후 노동현장에 투신했다. 성수동 작은 전기업체 노동자로 취업해 현장운동을 시작했다.


이후 노 대사는 청주지역에서 청주시민회(현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의 중심적 역할을 하면서 시민단체 활동을 이어 갔다. 그가 정치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은 1997년 ‘정권교체 민주개혁 충북위원회’ 공동대표를 맡으면서다. 충북 청주 출신의 3선 의원이다. 지난해 총선에선 아마추어 시인으로 냈던 시집 강매 논란이 불거지자 불출마했다.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82학번인 정태호 정책기획비서관(정책실장 직속)은 대학 4학년 때인 지난 1985년 미 문화원 점거사건 당시 ‘광주사태 토론회’ 개최를 둘러싼 미 대사관 쪽과 서울대 학생회 간의 협상대표로 참가했다. 같은 해 9월 ‘서울대 삼민투 사건’으로 구속돼 1988년 2월까지 복역했다. 1989년에는 노동운동을 하다 또다시 구속돼 10개월간 형을 살기도 했으며, 1990년부터 1991년 ‘이해찬 의원 보좌관’이라는 직업을 갖기 전까지는 공장 노동자로 노동운동에 투신한 적도 있었다.



진성준 정무기획비서관은 1985년 전북대학교 법학과 입학과 동시에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진 비서관은 법대 학생회장, 부총학생회장, 총학생회장으로 시위 선두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그는 3년 6개월간 투옥되기도 했다. 그는 “박종철이 고문받다 죽고 이한열이 시위하다 죽는 시대였다. 두렵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나만 살자고 몸을 사릴 수는 없었다”고 회고한다. 진 비서관은 1995년, 민청학련 최장기수 장영달 전 의원의 권유로 정치에 입문했다.



김금옥 시민사회비서관은 전북대(국문과) 총여학생회장 출신이다. 총여학생회장으로 당선된 그는 본격적으로 민주화운동에 눈을 떴다. 대학 졸업 후에는 전북지역 여성운동의 기틀을 다진 ‘전북 민주여성회’에서 일했다. 여성인권과 여성평등 문제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계기였다. 대학시절 학생운동 동지로 만난 남편과 1994년 결혼한 그는 노동운동 현장에도 관심이 높아 위장취업을 하기도 했다.



연세대 출신인 조한기 의전비서관은 ‘한때 시인을 꿈꿨으나 능력의 한계를 절감’하고 문화를 통해 세상을 바꾸는 문화운동에 투신했다. 진보 성향 문화예술인 단체인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에서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2000년 이미경 의원 보좌관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문대림 제도개선 비서관은 1986년에는 제주대 사회과학대학 학생회장을 맡아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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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서울대 서양사학과(83학번)에 진학했지만 6월항쟁이 있던 1987년 학생운동을 주도하다 중퇴했다. 학생운동으로 인해 군대에 끌려갔던 그는 제대하자마자 경찰에 연행돼 고초를 겪기도 했다.


권혁기 춘추관장은 국민대 총학생회장 출신이다. 청와대 국내언론비서실 행정관, 해양수산부 장관 정책보좌관, 민주당 전략기획국장, 국회 부대변인을 거쳤다. 대선 국면에서는 문재인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수석부대변인을 맡았다.



오종식 정무기획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은 제주도 출신으로 고려대 조국통일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주사파였던 그는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출범을 주도했다. 이 단체는 북한 민주화, 말하자면 김정일 정권 교체를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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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준성 청와대 사회수석실 행정관은 상지대 총학생회장을 지냈다. 1998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활동가의 길을 걷던 그는 17대 국회 정봉주 전 의원실에 들어가면서 정치권과 연을 맺었다. 그는 노무현 정부 당시 대통령비서실 사회정책수석비서관을 역임한 김용익 전 의원의 보좌관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정치인 출신 장관들도 학생운동 주도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후보자는 서울대 경영학과(69학번)에 입학해 총학생회장에 올랐고, ‘후진국사회연구회’ 동아리에서 활동하며 한 학번 아래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에게 ‘의식화 학습’을 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신대 교수로 재직하던 1986년에는 ‘6월항쟁 교수선언’을, 1989년 전교조 창립 때는 교수위원회 결성을 주도했다. 교수 시절의 다양한 외부활동은 그가 ‘친북 좌파’라고 공격당하는 근거로 제시되기도 했다.

그가 ▲2002년 마르크스 이론을 긍정하는 ‘맑스코뮤날레’에 집행위원으로 참여했고 ▲2005년 총장으로 취임한 사이버노동대학의 모집광고에 ‘노동자여 단결하라’ ‘민족해방의 날이 왔다’는 표현이 들어 있으며 ▲2008년 미국 쇠고기 반대 촛불시위 당시 토론회에 참석해 ‘정부가 재협상을 추진하지 않으면 촛불은 정권퇴진 운동으로 바뀔 것’이라고 발언했다는 것 등이 비판의 소재로 오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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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민교협 공동의장 시절 주변에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구속 운동은 무모하다고 말렸지만, 김 장관은 끝까지 밀어붙였다.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 후보자는 재야 운동권 출신으로 서울대 정치학과(76학번·서울대 농업경제학회 회장 역임) 시절부터 회의실을 쩌렁쩌렁 울리는 명연설로 ‘아크로폴리스의 사자후(獅子吼)’라는 별명을 가졌다. 1977년 유신반대 시위로 구속되고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학생운동을 주도하다 구속돼 실형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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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82학번) 총학생회장을 지낸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는 86그룹의 맏형으로 불린다. 그는 1984년 ‘민정당사 점거농성’을 주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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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는 시인이다. 충북 청주 출신으로 원주고와 충북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으며 충남대에서 국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바치는 시 ‘운명’을 읽으며 오열하는 모습으로 국민에게 각인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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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장관 후보자는 진천 덕산중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하던 중 19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활동으로 해직됐다. 전교조 충북지부장을 맡으면서 교육운동을 하다가 해직 10년 만인 1998년 진천 덕산 중학교로 복직했다. 이후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 한국작가회의 부이사장 등을 지냈다.


전북 정읍 출신인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1남7녀 딸부잣집의 둘째 딸로, 어려서부터 골목대장을 도맡았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민청련에서 활동하다 인천 부평의 형광등 공장에서 노동운동을 했다. 김 장관의 남편도 학생운동을 했다. 둘은 학생운동하며 동지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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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경 환경부 장관 후보자는 1991년 낙동강 불법 페놀 유출 사건에 대항하여 시민대표로 활동하며 ‘페놀아줌마’ ‘환경정책가’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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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옥 환경부 차관도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을 지낸 국내 환경운동 1세대다.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는 민주노총과 가까운 대표적인 친 노동계 인사다.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는 여성문제, 노동정의 등에서 꾸준히 활동해온 시민운동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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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월간조선 2017년 7월호

등록일 : 2017-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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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석 비서실장/前한양대 총학회장 前전대협 3기 회장 전남 장흥
백원우 민정비서관/前전대협 연대사업국장
한병도 정무비서관/前원광대 총학회장
유행렬 자치분권비서관/前충북대 총학회장
윤건영 국정상황실장/前국민대 총학회장,전 청와대 정무기획비서관
송인배 제1부속실장/前부산대 총학회장
유송화 제2부속실장/前이화여대 총학회장
진성준 정무기획비서관/前전북대 총학회장
김금옥 시민사회비서관/前전북대 총여학생회장
문대림 제도개선비서관/前제주대 사회과학대 학생회장
권혁기 춘추관장/前국민대 총학회장
여준성 사회수석실행정관/前상지대 총학회장

정태호 386 운동권,서울대 삼민투사건 구속,1989년 노동 운동 구속
윤영찬 동아일보 노조위원장
송갑석 경선 캠프 비서실 부실장, 광주학교 이사장 전대협 4기 의장
신동호 전대협 문화국장,3차레 옥살이,중앙선대위 메시지팀장
김종천 선대위 정무팀장, 임종석과 운동권 시절부터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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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pub.chosun.com/client/news/viw.asp?cate=C01&mcate=M1001&nNewsNumb=20170625100&nidx=25101








[태평로] 반전반핵歌는 북을 향해 불러라



이하원 논설위원

2017.07.17



靑 비서실 비서관 셋 중 한 명은 "반전반핵" 부르던 전대협 출신

30년 전 反美 사고에 붙잡혀 北核엔 눈감고 원전·사드만 반대



지난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나라를 뒤흔드는 문제는 크게 두 가지다. 사드와 원전(原電). 문 대통령의 사드 배치 연기 결정으로 한·미 갈등은 사상 최대로 치솟았다가 잠복 중이다. 탈(脫)원전을 염두에 둔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지 발표로 우리 내부의 갈등은 커지고 있다.



청와대가 주도하는 논란의 키워드는 미국과 반핵이다. 이 두 조치는 어떤 배경에서 나오는 걸까. 둘 사이의 연관성은 없는 걸까. 이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운동권 노래가 있다. 반전반핵가(歌)다. 1980년대 학생운동 주축인 전대협 집회에서 수없이 불렸던 노래다. 집회 주도자가 '반전~반핵, 양키고홈'이라고 외치면 '떼창'을 하던 광경이 생생하다.

"제국의 발톱이 이 강토 이 산하를/ 할퀴고 간 상처에 성조기만 나부껴/ 민족의 생존이 핵폭풍 전야에 섰다(중략) 반전반핵 양키고홈."

미국을 남북통일 방해하는 침략자로 보고 전술핵무기를 몰아내자는 취지의 노래였다. 그 당시에도 터무니없다는 주장이 많았다.


민주당의 대선 승리 후, 80년대 집회에서 이 노래를 선창(先唱) 했던 전대협 간부들이 하나둘 청와대에 입성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비서관급 이상의 청와대 비서실 요직에 전대협 소속 총학생회장·총여학생회장 등으로 활동했던 운동권 10명이 임명됐다. 전대협 의장 출신의 임종석 비서실장 외에 문 대통령이 매일 얼굴을 대하는 측근 3인방은 국정상황실장, 제1·제2 부속비서관이다. 이들은 국민대·부산대·이대 총학생회장으로 임 실장과 같은 시기 전대협에서 활동했다. 정무기획, 정무 비서관 역시 전북대·원광대 '총장(총학생회장)' 출신이다. 춘추관장은 국민대 총학생회장, 시민사회비서관은 전북대 총여학생회장을 지냈다. 전대협 연대사업국장, 문화국장 출신은 각각 민정비서관과 연설비서관을 맡았다. 임 실장이 지휘하는 비서관 26명 중 9명(34%)이 전대협 경력을 갖고 있다. 이들 외에도 청와대 곳곳에 전대협 출신 인사가 행정관으로 포진해 정책을 주도하고 있다. "전대협이 문재인 정부의 키친 캐비닛(비공식 실세 그룹) 아니냐" "전대협이 청와대를 접수한 것 같다"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다.


주대환 전 민노당 정책위의장은 대선 전부터 문 대통령이 80년대 논리에 갇혀 있는 운동권 세력에 얹혀 있다고 비판해왔다. 사실상 중요한 정책결정은 운동권 출신이 하며 문 대통령은 '얼굴마담'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청와대가 사드 배치 연기 결정을 내렸던 배경엔 과거 '미국 놈들'을 입에 달고 살던 반미 운동권 그룹이 어른거린다.


문 대통령의 '원전 중단 드라이브'도 반전반핵가를 유행시켰던 전대협 세력의 청와대 장악과 관련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반(反)원전 세력은 미군의 전술핵무기 철수를 주장했던 반미 운동과 맥이 닿아 있다는 것이다. 장인순 전 한국원자력연구소장은 "북핵에는 눈감고 있다가 가장 안전하게 운영돼 온 한국 원전을 문제 삼는 것은 운동권 논리 아니냐"고 했다.



전대협 활동을 하며 '반전반핵 양키고홈'을 외쳤던 이들 중 상당수가 대중 정치인으로 성장한 후에도 여전히 글로벌한 시각에서 사고(思考)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우리보다 훨씬 더 잘사는 미국, 영국, 일본이 다시 원자력 에너지에 눈을 돌리고 있다. 공신력 있는 국제기구들은 원전이 배출하는 이산화탄소가 다른 에너지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적다는 사실도 발표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공정 30%에 육박하는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사를 중단하자는 논리는 과거의 사고에 묻혀 있지 않으면 쉽게 나오기 어려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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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7/16/2017071601693.html








[ ...... 노무현 .... 문재인 ......


...... 100일을 지나는 동안 집중한 이슈는 놀랍게도 검찰·국가정보원 개혁과 재벌·노동 개혁, 대북정책 등으로 대동소이 ........ ]




문재인 인사 케비닛 대해부


[정부 출범 100일]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168명 이력부터 활동·인연·코드까지 전수조사…인물들 면면에 개혁 향방과 권력 지도 보여



제1175호

2017.08.14



2003년 6월 문재인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은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 100일을 함께했다. 그로부터 14년이 흐른 2017년 8월17일,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의 취임 100일을 맞는다.


<한겨레21>은 문재인 정부 100일을 맞아 정부를 구성하는 장·차관급 인사 103명, 청와대 비서관급 이상 인사 65명 등 총 168명을 뽑아 이들의 특성과 문 대통령과 인연 맺은 ‘맥락’을 분석해봤다.

또 <한겨레> 1면을 정밀 분석해 문재인 정부 100일이 참여정부 100일과 어떻게 다르고 닮았는지 살펴봤다. 두 정부가 100일을 지나는 동안 집중한 이슈는 놀랍게도 검찰·국가정보원 개혁과 재벌·노동 개혁, 대북정책 등으로 대동소이했다. 문 대통령은 각 분야에서 참여정부의 한계를 뛰어넘으려 노력하고 있다. 그 밖에 지난 100일 동안 있었던 주요 사건을 일지와 화보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_편집자




“나는 개혁적 인사들이 일거에 내각과 청와대의 대세를 장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저서 <문재인의 운명>에서 참여정부 인사 뒷이야기를 전하며 이렇게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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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h21.hani.co.kr/arti/PRINT/44022.html








2017.8.19. 전대협 30주년 기념식



[ ....... '만나자 판문점에서, 오라! 남으로, 가자! 북으로' .......


...... 전대협 동우회원 .... 장기수 어른신 등 6월 민중항쟁세대와 촛불시민혁명세대를 아우르는 200여명 ........



...... 이창복 6.15남측본부 상임공동대표 .... 격려사를

..... 안진걸 참여연대 공동사무처장 ..... 작곡가 윤민석 씨, 가수 손병휘 씨 등에게 공로상(패)과 감사패를 ........ ]





구국의 강철대오 '전대협' 30주년, '노태우 퇴진, 민자당 해체' 표어 눈길

기념식에 박원순 시장, 오충일 목사, 지선 스님, 이창복 전의원 등 참석




17.08.20

김철관(3356605)




전대협 결성 30주년 기념식에 80년대 6월 항쟁 민주화투쟁의 구호인 '퇴진 노태우, 해체 민자당' 등의 표어가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19일 오후 4시 서울시청 서소문 별관 뒤 소담에서 전대협동우회(회장 조정필) 주최로 '전대협 30년, 내 청춘 조국에 바쳐'란 주제로 '전대협 결성 3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이날 전대협 1기 의장부터 6기 의장까지 총출동했다.



무대 양 옆으로 설치된 '퇴진 노태우, 해체 민자당', '건설 전총련, 수립 민주정부', '오늘 청춘은 빛났다, 백만 학도여 사랑은 투쟁으로, 조국은 싸우고 있다', '축전의 도시 평양으로! 민족통일 기치 높이 가자! 청년 학도여!', '만나자 판문점에서, 오라! 남으로, 가자! 북으로', '내사랑 한반도여! 통일의 물결로 굽이 쳐라' 등의 표어는 전대협(87~92년)의 모토였으나 87년 6월 민중항쟁 당시와 80~90년대 민주화투쟁, 학생운동 때의 분위기를 떠오르게 했다.



80년대 민중운동을 주도했던 구국의 강철대오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발족 30주년 기념식에는 전대협 동우회원, 민가협·유가협 회원, 70년대 사회운동 원로, 장기수 어른신 등 6월 민중항쟁세대와 촛불시민혁명세대를 아우르는 200여명의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1기 의장과 부의장을 각각 지낸 이인영 의원과 우상호 의원, 2기 의장을 지낸 오영식 전의원, 송갑석 4기 의장, 김종식 5기 의장, 박홍식 6기 의장직무대행까지 참석했다. 다만 3기 의장을 지낸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은 바쁜 일정으로 참석하지 못했고, 통일의 꽃 임수경 전 의원도 일신상의 이유로 불참했다.



김영진 의원, 위성곤 의원, 이기우 전 의원, 오영식 전 의원 등 전현직 의원들도 대거 참석했고, 지자체에서는 복기왕 아산시장, 김성환 노원구청장, 신원철 서울시의회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등이 자리를 지켰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호윤 전국대학민주동문회협의회 상임대표가 축사를, 이창복 6.15남측본부 상임공동대표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지선 스님, 오충일 목사가 격려사를 했다.


인사말을 한 조정필 전대협동우회장은 "6월 민중항쟁 세대와 촛불시민혁명 세대가 다 한자리에 모였다"며 "이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축사를 한 박원순 시장은 "6월 항쟁 때 독재 정권 타도 투쟁이 눈에 선하다"며 "한국역사 발전의 분수령이 됐다"고 말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지선 스님은 "학생, 노동자, 넥타이부대, 종교인 등이 모두 참여한 6월 민중항쟁으로 독재 정권이 종식됐다"며 "30년 후 국정농단 세력을 몰아낸 촛불시민혁명으로 진화했다"고 강조했다.


오충일 목사도 "6월 항쟁 30년 만에 촛불시민혁명 이어졌지만, 아직도 한국사회는 진보나 개혁이 목마르다"며 "더 많은 민주주의와 더 많은 진보가 필요하다, 그 길에 여러분이 앞장서 달라"고 강조했다.



이날 전대협동우회는 전대협 결성 정신을 계승·실천하고 적극적인 헌신과 식지 않은 열정으로 시민사회활동을 해온 안진걸 참여연대 공동사무처장, 염형철 환경연합 사무총장, 작곡가 윤민석 씨, 가수 손병휘 씨 등에게 공로상(패)과 감사패를 수여했다.



공로패를 받은 안진걸 참여연대 공동사무처장은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6월 민중항쟁이 이후 30년 만에 국정농단 세력을 몰아낸 촛불 시민혁명으로 이어졌다"며 "30년을 아우르는 세대가 오늘 다 모인 것만으로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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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지난 한겨울 내내 주말마다 적폐청산을 외치는 수많은 시민들 속에서 전대협동우회 깃발을 높이 올렸다” ....... ]




전대협, 결성 30주년 기념식 진행




박한균 수습기자

2017/08/25



어느덧 30년 세월과 함께 이립에 들어선 전대협!

지난 8월 19일은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이하 전대협) 결성 3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이날 회원들은 희끗해진 머리와 주름진 얼굴을 마주하면서 30년 전 오랜 세월의 기억들을 꺼내 들었다.



전대협동우회는 “우리들은 사회로 진출해 각자가 각양각색의 다양한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어느덧 민주주의와 통일을 위해 살아온 세월이 30년이 되었다”면서 “돌이켜보면 80년대 말에서 90년 초에 이르는 동일한 역사적 경험을 통해 뚜렷이 구별될 수 있는 정치사회의식과 집단적 태도를 갖게끔 만들어준 전대협은 우리가 늘 마음은 청년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의 원천이었다고 자부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1987년 6월 항쟁 당시 투쟁의 선봉에 섰던 전국 청년학생들은 그해 8월19일 충남대학교에서 모여 ‘통일의 물결로 굽이쳐라! 내사랑 한반도여’라는 구호 아래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을 결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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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난 한겨울 내내 주말마다 적폐청산을 외치는 수많은 시민들 속에서 전대협동우회 깃발을 높이 올렸다”면서 “1987년 6월 항쟁 때 구호는 ‘호헌철폐’ ‘독재타도’로 집약되었지만 2017년 광화문 광장에 내걸린 수많은 깃발은 무지개처럼 다채로운 요구들로 가득했다.”고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기도 했다.



전대협동우회는 “이제 6월 항쟁 세대이기도 한 우리가 한국사회를 더 진일보시키기 위해서는 30년 전 조국과 민중을 위해 투신하겠다고 다짐했던 것보다 더 일상적으로 사회적 활동에 참여하자”고 호소했다.



전대협 결성 30주년 기념식에는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호윤 전국대학민주동문회협의회(전민동) 상임대표, 이창복 6.15남측본부 상임공동대표 등의 여러 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축사와 격려사가 이어졌다. 그룹 우리나라와 가수 이정열 씨 기념공연도 진행됐으며 전대협동우회 총회를 비롯해 전대협 사진전을 열면서 뜻깊은 하루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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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택 원내대표, “문재인 정부 적폐청산TF..편파적 위원들로 정치보복 자행”

"편파적 보복수사에 매진하는 문재인 정권에 강력한 규탄"



윤정상 기자

2017.11.30




심재철 국회부의장의 ‘문재인 내란죄’ 발언에 이어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도 30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적폐청산TF에 편파적 인사들이 포함돼 있다”며 “적폐청산은 결국 정치보복으로 흐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 원내대표는 "설립근거 없는 39개 적폐청산 TF가 구성돼 있어서 표적수사를 하고 있다”며 “더욱이 적폐청산TF가 국가 기밀 문건에 대해 열람조사 기능까지 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 원내대표는 "적폐청산TF위원으로 편파적 인사 15명이 포함돼 있다"며 "2013년 국정원 특별수사팀 소속검사가 3명 포함돼있고 박영수 특검팀이 4명, 박근혜 블랙리스트 검사가 8명"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여기에 참여연대 17명, 문재인 캠프 출신 6명, 세월호 관련인사 등 TF 위원으로 들어가 있는 116명 이상이 이 정권 입맛에 맞는 사람들"이라고 비판했다.


정 원내대표는 적폐청산TF의 심각성을 거듭 지적하며 실명까지 거론했다. 법무검찰개혁위원장인 한인섭 전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장에 대해 "조국 민정수석과 막역한 사이일 뿐 아니라 조국의 멘토로 불렸던 분"이라고 말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진상조사위 간사인 송현석 교육부장관 정책보좌관에 대해서는 "불법 이적단체인 한국청년단체협의회 정책위원장을 역임한 사람"이라며 "이 단체는 2001년 구성이 됐는데 이때부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돼 있는 단체로 송 보좌관은 남한 사회를 미 제국주의의 식민지로 규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정원개혁위 간사인 장유식 현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소장에 대해서도 "국정원에서 잡아가야 할 사람을 개혁위 간사로 안혀 국정원 개혁안을 내놓았다"며 "이 분은 서영교 민주당 의원의 남편으로도 알려져 있다"고 언급했다.


경찰개혁위 전 위원장인 박경서 국가인권위 상임위원과 관련해서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해온 분으로서, 노무현 정권 당시 국가인권위 상임위원과 국보법 폐지 TF팀장까지 했다"며 "18년간 세계교회 협의회 국장을 역임해 방북만 26번이나 한 인사가 경찰 개혁하겠다고 들어가 있다"고 비난하고 나섰다.


마지막으로 경찰개혁위 인권분과위원 오창익 현 인권연대 사무국장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이분은 밀양송전탑사건이나 백남기 농민 사건이나 용산참사 문제 등 정치 사건의 주동적 인물로 활동했던 사람"이라며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고 있다"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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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정 원내대표의 지적에 대해 네티즌들은 "문재인 정부가 자행하는 ‘적폐청산TF’는 적폐청산이란 미명으로 정적과 반대세력을 제거하려는 모택동식 ‘문화혁명’과 다를 바 없다. 얼마나 많은 피를 보려고 저러나?"란 비판 등이 쏟아지고 있다.


http://www.newstow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7071








[ ...... 자유한국당은 지난달 24일 임종석 비서실장과 백 비서관을 직권남용으로 검찰에 고발 .......


...... 적폐청산은 문 대통령이 추석 직후 청와대 수석회의에서 “적폐청산은 사정이 아니다. 속도감 있게 추진하라”고 지시 ........ ]



[중앙시평] 문 대통령도 장관보다 비서를 좋아하는가



[중앙일보] 2017.11.15

이철호 기자



적폐청산 칼바람이 매섭다. 검찰의 국가정보원 특활비 청와대 상납 수사는 사용처까지 뒤지는 분위기다. 만약 박근혜 전 대통령이 미용시술이나 옷값으로 최순실에게 일부라도 건넸다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국민 정서가 또 험악해진다. 이명박(MB) 전 대통령에 대한 사이버사령부 댓글 수사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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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중요 사안은 수석회의보다
국무회의서 다루는 게 헌법정신

친노·전대협 출신 청와대 핵심이
적폐청산 밀어붙이면 부작용 생겨



요즘 이런 시나리오 뒤에는 ‘백원우’라는 이름이 어른거린다. 언론들도 ‘백원우 민정비서관이 적폐청산을 주도하고 있다’는 보도를 쏟아낸다. 몇 가지 간접적 흔적도 있다. 자유한국당은 지난달 24일 임종석 비서실장과 백 비서관을 직권남용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두 사람이 총리실을 건너뛰어 각 부처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라는 공문을 발송했기 때문이다. MB 측근들도 “백원우가 배후”라고 지목한다.



청와대에서 백 비서관의 위치는 독특하다. 그는 권력의 두 기둥인 친노와 전대협 출신의 교집합이다. 전대협의 핵심 포스트인 연대사업국장을 지낸 데다 2002년 일찌감치 노무현 후보 정무비서가 됐다. 여기에다 지금은 권력기관을 지휘하고 민감한 정보를 받는 민정비서관이다. 그는 또 보수정치권과 악연이 뿌리 깊다. 2009년 5월 노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MB를 향해 “사죄하라, 어디서 분향을 해”라고 고함을 쳤다. 이 일로 그는 곧바로 보복을 당했다. MB의 이영호 고용노사비서관이 그의 친인척·보좌진까지 가혹하게 사찰한 것이다. 그래서 보수 야당은 “백 비서관이 그 앙갚음을 하고 있다”며 핏대를 세우고 있다.



적폐는 청산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적폐청산은 문제가 있다고 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압박수사로 변창훈 서울고검 검사 등 3명이 줄줄이 자살한 때문만은 아니다. 첫 단추를 잘못 꿰어 마치 밀실에서 음모론을 꾸며낸 듯한 냄새를 풍기기 때문이다. 이번 적폐청산은 문 대통령이 추석 직후 청와대 수석회의에서 “적폐청산은 사정이 아니다. 속도감 있게 추진하라”고 지시하면서 발동이 걸렸다. 만약 국무회의에서 적폐청산을 결정했다면 어땠을까. 야당이 직권남용이라고 반발할 엄두를 못 내고 청와대가 “발송한 공문은 업무지시가 아니라 협조요청”이라고 얼버무릴 필요도 없었다.



요즘 문 대통령은 국무회의보다 수석회의에서 중대 발표를 하기 일쑤다. 7월 17일에는 “최저임금 1만원은 사람답게 살 권리를 상징한다”며 최저임금 인상의 포문을 열었다. 지난달 16일엔 “장시간 노동과 과로를 당연시하는 사회가 계속돼선 안 된다”며 근로시간 단축을 지시했다. 우리 공동체에 큰 영향을 미칠 사안들이 수석회의에서 ‘지시’ 형태로 내려온다.



이에 비해 국무회의는 초라하다. 인사 참사로 76일간 전임 정부 장관들과 어색한 동거 국무회의는 문제였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국무회의는 몰카방지 대책, 아동수당법 통과 등 주로 이벤트성으로 흘러갔다. 10월 2일 임시공휴일 지정으로 열흘간 황금연휴가 생긴 것 외에 뚜렷이 기억에 남는 국무회의가 없다.



적폐청산 같은 국가적 중대 사안은 국무회의에서 논의하는 게 맞다. 그래야 뒤탈이 안 난다. 박 전 대통령도 비선에 의지하다가 탄핵당하지 않았는가. 우리 헌법은 국무회의를 중요 정책의 최고 심의기관으로 못 박고 있다(88, 89조). 국무회의는 장관들이 의견과 지혜를 모아 대통령의 독주를 견제하고 균형을 잡는 헌법적 장치다. 우리 헌법 정신에 따르면 TV 화면에 수석회의보다 국무회의가 더 자주, 더 비중 있게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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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ews.joins.com/article/22115280








문재인 정부서 날개 단 ‘전대협 세대’

靑 참모·與 의원 등 정치권 요직 다수 차지




구민주 기자 2018.02.05 1477호



집권 후 문재인 대통령은 현 정부가 1987년 ‘6월 항쟁’ 정신 위에 서 있음을 여러 차례 공언했다. 정부를 탄생시킨 지난해 촛불혁명 역시 6월 항쟁이 30년 만에 피워낸 ‘꽃’으로 표현했다. 그해 6월, 광장에 나가 민주주의의 씨앗을 뿌린 젊은 주역들은 30년이 흐른 지금 중년이 돼 정치권 요직을 다수 차지하고 있다. 보수정권 10년, 과거 영광에만 머물러 있던 이들이 문재인 정부 들어 다시금 전성기를 맞이한 것이다.



현재 청와대와 여권엔 1980~90년대 각 대학 총학생회장이자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출신 인사들이 그 어느 때보다 대거 포진해 있다. 이 때문에 보수진영에선 “전대협 운동권이 청와대를 장악했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현 정권의 ‘전대협 대세론’은 지난해 5월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의 임명과 함께 본격적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임 실장은 1989년 한양대 총학생회장이자 전대협 3기 의장 출신으로 80년대 말 학생운동을 상징하는 대표 인물 중 하나로 꼽힌다.


또한 문 대통령은 대통령 내외를 각각 보좌할 제1·2부속비서관을 포함해 민정비서관·춘추관장 등에 전대협 출신들을 잇따라 발탁했다. 지난해 11월엔 공석이던 정무수석 자리에 임 실장과 같은 시기 전대협 핵심 일원으로 활동한 원광대 총학생회장 출신 한병도 전 정무비서관을 임명했다. 이로써 청와대 구성원 가운데 전대협 간부 출신은 현재 비서관 이상 급에서만 10명을 훌쩍 넘기는 것으로 집계된다.



국회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흐름을 같이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서울시장 출마를 준비 중인 우상호 전 민주당 원내대표는 1987년 연세대 총학생회장과 전대협 초대 부의장을 맡아 서울 지역 학생집회를 주도했다. 그해 6월 사망한 이한열 열사의 장례식 집행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그의 뒤를 이어 원내 사령탑을 지키고 있는 우원식 원내대표 역시 운동권 그룹의 맏형 격으로 불린다.



“정치권은 학생운동 판이 아님을 명심해야”



보수진영에도 한때 전대협에 몸담았던 인물이 간간이 눈에 띈다. 대표적으로 하태경 바른정당 최고위원은 1986년 전대협 조국통일위원회 간부를 맡아 활동했다. 이장우 자유한국당 의원 역시 1987년 대전대 총학생회장을 역임하며 학생운동에 참여했다. 그는 2016년 한 방송에 출연해 “살아오면서 국가관이나 철학이 많이 바뀌었지만 지난 민주화운동 경험은 소중한 자산”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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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sisapress.com/journal/article/173694
2020-08-17 23: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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