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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망하겠소
 닉네임 : 우리나라 망하겠소  2019-05-13 02:58:14   조회: 507   
1898.11. 만민공동회



“12살 먹은 아이가 공동회에서 연설을 하다가 우리나라 망하겠소 말 한마디에 그 아이도 울고 사방에 듣던 이들도 다 통곡도 하며 눈물도 흘리었소.”

– 매일신문 1898. 11. 8.



“고등재판소 문앞에 모인 만민이 어제 찬 비를 무릅쓰고 의관이 다 빗물에 젖어버리며 찬 기운이 뼈에 사무치되 조금도 변동들 아니하고 빗속에 모혀 있었다더라.”


“시골 사는 콩나물 장사 하는 늙은 여인이 콩나물을 가지고 서울 와서 팔았는데 그 여인도 또한 만민의 충애하는 목적을 흠모하여 콩나물 값으로 보조금을 냈다더라.”


– 독립신문 1898. 11. 9.




“법부대신 한규설씨가 회중에 와서 말하되 (…) 협회원들이 풍찬노숙함이 걱정스럽거니와 관민간에 정을 통하지 못하여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국가를 어찌 보존할꼬 하며 눈물을 흘리거늘 모든 협회원들이 일제히 눈물을 흘리더라.”


“다동 사는 박소사가 집을 팔아 만든 삼백원 중 이백원을 보조금으로 냈고, 심지어 어떤 거지는 하루동안 구걸한 돈 1원을 보조금으로 냈더라. 청나라 상인이 충애의 목적은 다 마찬가지라 하며 4원을 냈고, 어떤 나무장수는 긴 장작 10개를 보내어 밤을 새는 회원들이 모닥불을 피울 수 있도록 했으며, 과일장수는 회원들의 갈증을 해소하라며 감과 배 3석을 보냈더라.


– 황성신문 1898. 11. 11.




“남서 미동 사는 9세 아이가 만민공동회에 와서 말하되, 회원분들께서 충군애국하는 목적으로 비바람을 피하지 않으시고 풍찬노숙하심이 제가 보기에도 안심치 못한 중, 부친께서 2원 5전을 주신 것이 있는 고로 비록 약소하나 요긴하게 쓰심을 바라나이다 한즉 보던 이들이 신동이라 칭찬하였더라.”

– 황성신문 1898. 11. 14.








“ 배고픔도 참을 수 있고, 어떠한 굴욕도 참을 수 있는데, 나라 없는 설움만은 참을 수 없었다 ”




[ ...... 가장 큰 공은 6·25전쟁을 치르면서 우리나라의 기초를 튼튼히 하고 나아가 군을 육성·발전시켜 .......


...... 나라 없는 설움만은 참을 수 없었다 .......

......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10억 달러 경제원조, 70만 군에 대한 지원을 약속받아 ......... ]



그때 그 이야기


<961> 老兵이 걸어온 길-211-위대한 지도자 이승만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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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 창설식 참석 등 군 사랑 각별


해방 후 귀국한 그는 독립촉성중앙협의회를 구성해 정부 수립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그는 하지(Hodge) 중장과 불화로 한때 미국에 잠시 가기도 했으나, 유엔감시하에 총선거를 실시케 해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이 대통령이 있었기 때문에 해방정국의 혼란기를 비교적 무난히 극복하고 대한민국을 건국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12년간 대통령으로 집권하는 동안 그의 가장 큰 공은 6·25전쟁을 치르면서 우리나라의 기초를 튼튼히 하고 나아가 군을 육성·발전시켜 대한민국을 오늘날과 같은 국가가 되게끔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그는 늘 우리에게 “배고픔도 참을 수 있고, 어떠한 굴욕도 참을 수 있는데, 나라 없는 설움만은 참을 수 없었다”고 역설하면서 “우리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며 국민의 대동단결을 강조했던 애국자였다.


그는 군에 대해서는 자다가도 일어날 정도로 깊은 관심과 애틋한 감정을 갖고 대했다. 그 때문에 군에 대한 그의 사랑은 남달랐다. 그는 서울대학교 졸업식에는 못 가더라도 사단급 이상 부대 창설식에는 반드시 참석해 장병들을 격려했다. 혹자는 이 대통령이 군을 잘 모른다고 하는데 그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는 미국 독립전쟁시 민병대(militia)에 대한 깊은 지식과 아울러 이의 역할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었다. 또 그는 미국 남북전쟁에 대해서도 제3자가 들으면 탄복할 만큼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오죽했으면 유엔군사령관 클라크 장군이 이 대통령의 깊은 학문적 지식에 대해 자신보다 미국 역사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다고 했을까!


6·25전쟁 때 나와 우리 군은 이와 같이 뛰어난 이승만이라는 위대한 대통령을 모시고 전쟁을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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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모총장이 되고 나서는 수시로 전선 상황을 비롯해 군 현안을 보고하러 나는 경무대로 이 대통령을 예방했다. 전쟁 중 이 대통령은 휴전에는 적극 반대하면서 오로지 북진통일만을 추구했다.


특히 휴전의 막다른 길목에서 그는 미국 대통령 특사로 방한한 로버트슨을 상대로 18일간의 협상 끝에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10억 달러 경제원조, 70만 군에 대한 지원을 약속받아 오늘날 대한민국을 있게 한 영명한 대통령이었다.


http://kookbang.dema.mil.kr/kdd/ColumnTypeView.jsp?writeDate=20090603&writeDateChk=20090525&menuCd=2001&menuSeq=16&kindSeq=1&menuCnt=30917








[ ......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 밖에 없는 것만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 ]




[시사다반사] '한국인이 알아야 할 영웅' 유관순 열사 다시 생각하기


오피니언 | 강만금 기자 | 2015년 03월 02일



한국홍보전문가 서경덕 교수와 영화배우 김윤진 씨가 함께 제96주년 삼일절을 맞아 새로운 영상을 공개했다. 바로 ‘한국인이 알아야 할 영웅’ 그 두 번째 주인공으로 열여덟 살의 독립운동가 유관순 열사에 대한 영상이다. 7분이 조금 못 되는 영상은 3∙1운동의 의미와 유관순 열사의 숭고한 희생을 말하고 있다. 국내외 홍보를 위해 영상은 한국어와 영어로 제작되었다.



유관순 열사는 3∙1운동 당시 이화여자보통학교의 학생이었다. 학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학교를 나와 고향인 충남 병천으로 내려가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전국에서 들불처럼 일어난 3∙1만세운동에 동참하기 위해 아우내장터에 운집한 3천여 명에게 태극기를 나눠주며 선두에서 만세를 외쳤다.



그 과정에서 부모는 일제의 총에 맞아 숨을 거뒀고 현장에서 잡힌 유관순 열사는 공주감옥으로 송치되어 3년형을 받았다. 하지만 일제의 모진 고문에 쇠약해진 몸을 회복하지 못하여 출소를 이틀 앞둔 1920년 9월 28일 서대문감옥에서 순국하고 만다.



유관순 열사의 마지막 유언은 다음과 같다.

“내 손톱이 빠져 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 밖에 없는 것만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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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가적 필요성이 무엇이냐, 국민의 이해가 어떻게 되느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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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한국 기업가들의 또 다른 특징 중의 하나는 애국심과 공인의식이 강하다는 것이다. 즉 사업을 통해서 국가에 보답한다는 사업보국 정신이 강하다. 한국의 기업가들에게 이러한 특징이 발생하게 된 이유는 식민지 경험이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이자 최초의 제약회사인 동화약방의 사시는 ‘우리 민족의 건강은 우리 손으로 지킨다.’는 것이며 회사 이름 ‘동화(同和)’는 ‘민족이 합심 하면 잘 살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일제 강점기에 조선의 기업가들은 독립운동에 지원을 했지만, 그것이 어렵게 되자, 기업을 일으켜서 나라를 부강하게 해야겠다는 사업보국의 신념을 가지고 기업을 일으켰다. 우리나라 최초의 화력발전소를 설립한 오치은, 경성방직의 김연수, LG그룹 창업자 구인회, 화신백화점의 박흥식, 강원산업의 박흥식 등이 그러했다.


삼성의 이병철 회장도 마찬가지이다. 그의 『호암전집』에 의하면 “삼성은 새 사업을 선택할 때 항상 그 기준이 명확했다. 국가적 필요성이 무엇이냐, 국민의 이해가 어떻게 되느냐, 또한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느냐 하는 것 등이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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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일생 벌어놓은 것을 다 투입하고 망하더라도 ......

..... 내가 놓은 디딤돌을 밟고 후대의 누군가가 성공하면 ........... ]



[아산 정주영 탄생 100주년]


"내가 망해도 꼭 해야 할 일…후대 디딤돌 된다면 보람"



2015-11-24


다시 보는 아산의 경영철학

결국 성공시킨 차 독자개발



2001년 3월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호 峨山·아산)이 타계했을 때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지(誌)는 ‘아산은 많은 사람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그 평가대로 아산은 대부분 사람이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역사를 현실로 만들어냈다.



한국은 연간 450만대를 생산하는 세계 5위의 자동차 대국이다. 하지만 아산이 자동차사업을 시작한 1968년만 해도 국내에 등록한 자동차가 3만여대에 불과할 정도로 제대로 된 산업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아산은 ‘자동차 독자 개발’을 선언했다. 미국까지 주한 미국대사를 동원해 아산을 말렸다. 그러나 그는 끝내 ‘자립 경영’을 관철했다.


아산은 “자동차산업이 없으면 진정한 산업화를 할 수 없다. 내 일생 벌어놓은 것을 다 투입하고 망하더라도 꼭 해야 한다. 내가 놓은 디딤돌을 밟고 후대의 누군가가 성공하면 나는 그것을 보람으로 삼겠다”고 주위를 설득했다. 아산의 자동차 독자 개발은 농업 중심이던 한국의 산업구조를 공업으로 바꿔 오늘날 제조업 강국이 되는 씨앗이 됐다.



건설업에 토대를 둔 아산은 공기(工期) 단축, 즉 ‘일의 속도’에 경영의 중점을 뒀다. 그는 이익을 남겨 소득과 고용을 창출하는 것이 진정한 기업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주어진 예산 안에서 공사나 생산 일정을 단축하는 것이야말로 이익을 창출하는 길이라 믿었다. 그것이 아산의 ‘속도 경영’이었다.



1968년 3월 첫 삽을 떠서 2년여 만인 1970년 6월 마무리지은 경부고속도로는 아산의 대표적인 업적이다. 조선소를 지으면서 선박을 동시에 건조한다는 발상을 통해 1972년 3월 조선소 착공, 1974년 6월 조선소 완공과 동시에 유조선 2척을 건조하는, 세계 조선사에 유례없는 기록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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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5112469351







[ ..... 생명을 건 희생적 노력을 ....... ]



박정희 제5대 대통령 취임사

1963년 12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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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사회에는 피땀 어린 노력의 지불 없는 진보와 번영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격동하는 시대, 전환의 시점에 서서, 치욕과 후진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오늘의 세대에 생존하는 우리들의, 생명을 건 희생적 노력을 다하지 않는 한, 내 조국, 내 민족의 역사를 뒤덮은 퇴영의 먹구름은 영원히 걷히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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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15cwd.pa.go.kr/korean/data/expresident/pjh/speech.html







[가까이에서 본 인간 박정희]


내 일생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조인스] 기사입력 2015.02.26

[J플러스] 김두영 전 청와대 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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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이 재임기간 중 역사적인 결단을 해야 할 순간에 “내 일생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라는 말을 하거나 휘호를 써서 본인의 각오와 결연한 의지를 표명한 경우가 있었다. 이 단문(短文) 속에는 목숨을 걸고 거사를 결행한 한 혁명가의 굳은 결의와 그가 걸어온 길과 가야 할 길의 비장함이 함축되어 있다. “내 일생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라는 말을 박정희 대통령만큼 당당하게 말한 지도자가 누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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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3196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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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시장의 주인공이 자식들을 잘 키우고 과거를 아름답게 회고할 수 있게 만든 사람들은 李承晩(이승만) 세대, 朴正熙(박정희) 세대이다. 이 위대한 세대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한미동맹, 중화학공업, 대기업, 중산층, 마이 카, 아파트, 민주와 복지 제도를 70년 만에 건설하는 데 그래도 최소한의 人命희생은 있었다.


주인공의 선배 세대는, 가난과 亡國(망국)과 戰亂(전란)의 시대를 살면서 마음 속 깊이 뭉쳐 두었던 恨(한)의 덩어리를 뇌관으로 삼아 잠자던 민족의 에너지를 폭발시켰다. 썩은 강물 같은 세상을 삼켜 바다 같은 새로운 세상을 빚어낸 사람들이다. 이 세대의 旗手(기수) 박정희가 가슴 관통상을 당하고도 "난 괜찮아"라고 내뱉었던 것은, '허름한 시계를 차고, 도금이 벗겨진 넥타이 핀을 꽂고, 해어진 혁대를 두르고 있었던 것'은, 그리하여 屍身(시신)을 검안한 군의관이 '꿈에도 각하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그런 세대였기 때문이다.



참을 수 없는 모욕과 온갖 인간적 비극을 당하고도 의연히 버티면서 '난 괜찮으니 너희들은 잘 되어야 한다'고 자신을 희생한 이 세대의 치명적 실수는 그들 자신의 이야기를 제대로 전하지 않아 자녀들이 풍요를 누리면서도 고마움을 모르고, 이 근사한 나라가 공짜로 생긴 존재로 알도록 방치한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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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둥이가 본 '국제시장'-좀 미안한 이야기

조갑제
2014-12-29
https://pub.chosun.com/client/news/print.asp?cate=C03&mcate=M1004&nNewsNumb=20141216273
2019-05-13 02:5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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